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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l 22. 2021

1년 내내 40도 폭염에 시달리는 직장(ft.자이언티)

출처 : The Economic Times



올해 여름은 날씨가 정말 미쳤나 보다. 장맛비도 찔끔 오다 말고 7월 초부터 기온이 35도를 넘나들더니 이제는 급기야 37도를 육박한다. 기록적인 무더위라고 뉴스에서 연일 난리다. 하지만 소현에게 이 정도 온도는 일상이다.     



소현이 일하는 선박의 기관실 온도는 기본 40도를 넘나든다. 각종 기기들이 24시간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기본 열기가 엄청나다. 아침에 출근해서 작업을 하려고 기관실 문을 열면 열기가 훅 끼치면서 사우나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선종과 항해 지역에 따라 50도를 넘어가는 배도 많다. 여름의 선풍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삼복더위에 종일 선풍기를 돌리다 보면 선풍기 자체가 열을 받아서 불 같이 뜨거워진다. 1년 365일 24시간 기기가 돌아가는 기관실이 딱 그 상황이다.     



휴우--     



소현은 오늘 아침도 거울 속 자기 얼굴을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인 스물다섯에 비비크림 하나 바르지 않은 허여멀건한 민낯이 유난히 안쓰러웠다. 처음 배를 탈 땐 멋모르고 화장품을 챙겨 왔었다. 직장인이 으레 그렇듯 단정한 외모는 사회인의 기본 매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관실의 열기를 미처 계산에 넣지 못한 오판이었다. 사계절 내내 삼복더위를 불사하는 기관실에서 일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어차피 화장을 해도 다 번지고 지워져서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소현은 오전 8시부터 약 한 시간 반 가량 Day work(기관실 작업 시간)을 마치고 ESCR(Engine Sub Control Room : 기기 관리실)로 들어갔다. ESCR은 기기를 총괄하는 공간으로 온도가 높아지면 제어 장치들이 고장 나기 때문에 배 안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에어컨이 돌아간다. 그래서 휴식은 이곳에서 취한다.      



1년 365일 40도 폭염에서 일하다 보니 기관사들의 불쾌지수는 장난이 아니다. 기관부 작업 특성상 혼자 하는 일은 별로 없고 몇 명이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운 와중에 문제라도 발생하면 서로 기분 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반드시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진다. 휴식 없이 계속 일하면 기분 문제를 떠나서 건강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쉬고 싶지 않은 사람도 무조건 쉬어야 한다. 물론, 이 무더위에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소현은 땀범벅이 된 몸을 소파에 털썩 내던졌다. 이제 아침 루틴 겨우 한 텀 돌았는데 속옷까지 펑 젖었다.



https://youtu.be/eqcte1r3aiQ

자이언티 No Make up (노메이크업)



넌 모를 거야 / 자다가 일어나 살짝 부은 얼굴 얼마나 예쁜지 / 넌 모를 거야 / 자기 전 세수한 니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 아이라인 없이 웃는 예쁜 너의 눈 / 메이크업 베이스 지우면 빛나는 니 얼굴 / 자꾸 거울 보지 마 / 넌 그냥 그대로 너무 예쁜 걸 / No Make-up일 때 제일 예쁜 너~~~~~~     



가수 자이언티는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화장을 하지 않은 니 얼굴이 훨씬 예쁘다고. 소현은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맞은편 거울에 비친 얼굴을 봤다. 노메이크업 수준을 넘어선 처참한 몰골이었다. 화장은커녕 더러운 검댕이 얼굴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묻어 있었다.     



그래, 난 그냥 이대로도 너무 예쁜 스물다섯이야.    


 

마인트 컨트롤을 위해 열심히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데 옆에서 남자 기관사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 머리 너무 길었는데 니가 좀 잘라주라. 다음번엔 내가 잘라줄게.”     



이 말을 하는 3기사의 머리카락은 커튼처럼 눈과 귀를 뒤덮은 상태였다. 육지에서는 발에 차이는 미용실이 망망대해를 떠가는 배 위에는 있을 리가 없었다. 승선 기간이 짧으면 그나마 버티겠지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내리지 못하니 머리를 안 자르고 놔두면 본의 아니게 자연인이 된다. 물론 육지에 내릴 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 지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배 안에서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표류된 톰 행크스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길게 기르고 다니는 사람을 간혹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른다. 외모도 외모지만 안 그래도 더운 기관실에서 머리까지 길면 더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미용사가 없는 배 위에서 머리를 자르는 방법은 딱 하나. 서로 잘라 주거나, 자기가 자르거나. 소현이 타는 배는 체육관 한쪽 구석에 바리깡, 미용 가위 등을 놓은 이발소 비슷한 공간이 따로 있어서 선원들은 이곳을 이용한다.







머리를 잘라줄 여자 동료가 없는 소현은 자기 머리를 자기가 자른다. 뒷머리는 너무 길면 고무줄로 질끈 묶고 앞머리만 손으로 휘어잡고 뭉텅 자른다. 목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뭉텅이가 땀에 달라붙어서 자꾸 신경을 거스르는 바람에 홧김에 뒷머리까지 싹둑 잘라버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꼭 영화 속 스파이가 된 기분이다. 적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누추한 모텔에 숨어들어 정체를 숨기기 위해 외모를 바꾸는 미모의 여자 스파이.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결심한 듯 커다란 가위를 한 손에 잡고 머리를 싹둑 잘라 버린다. 영화에서는 대강 잘라도 마치 일류 헤어 디자이너처럼 멋들어진 커트컷이 나오지만 소현의 미용 실력은 안타깝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기관실 열기를 아직 씻어내지 못해 꾀죄죄한 얼굴에 쥐 뜯어먹은 것 같은 앞머리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울고 싶어진다.     



일을 위해 미美를 추구할 권리를 잠시 미뤄둔 스물다섯 꽃청춘은 오늘도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육지와 달리 배 위에선 아무리 기다려도 시원한 가을이 오지 않지만 그래도 청춘의 열기로 뜨거운 기관실의 온도를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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