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추악한 인간

안톤 체호프

by 새벽창가
%EC%B6%94%EC%95%85%ED%95%9C%EC%9D%B8%EA%B0%84.jpg?type=w773



나는 인간의 모든 추악한 감정을 나로부터 배웠다. - 안톤 체호프 -




오래 전 대학로 소극장을 누비며 연극에 푹 빠져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때 우연히 <벚꽃동산>이라는 작품을 보게 됐는데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의 희곡이었다. 체호프는 자신이 쓴 모든 작품에 나오는 추악한 인간상을 스스로의 내면을 까뒤집어 완성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보다 인간을 더 잘 표현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남의 슬픔을 함께 슬퍼해주긴 쉽지만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주는 건 어려운 게 인간이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모르는 사람의 성공에는 기꺼이 박수치지만 가까운 사람의 성취는 작은 것이라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늘 우연히 몇 년전 글쓰기 강좌에서 썼던 필기노트를 펼쳐보다가 이 문장을 발견했다. "글을 쓰려면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그 옆에는 '인문학' '심리학' '뉴스' 등등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간인데 왜 인간을 배워야 하지? 그냥 날 대면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바로 자신이 없어졌다. 나의 민낯을 대면하는 건 공부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는 감추고 가면 쓴 모습만 보여주는 데 익숙한 나. 그 기간이 길어지니 이제는 어떤 게 진짜 나인지 나도 헷갈린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어렵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천 개의 눈을 가진 버딜론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