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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Apr 19. 2021

유치원에서 방귀 참는 아이

출처: dreamstime.com



“부부부부부부부부부북!!!!!!!!!!!”


또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벌써 두 주째였다. 아이 유치원 가방을 정리하던 나는 침착하게 화장실로 갔다. 아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던지고 화장실로 들어간 참이었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내 쪽으로 한 채 쉬를 하고 있던 아이가 날 돌아보며 씩 웃었다.     


“또 니가 방귀 뀐 거야?”

“응, 헤헤.”     


놀랍게도 이건 아이의 방귀소리였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땐 무거운 물건이 바닥에 떨어진 줄 알았다. 둘째 날은 옆집에서 드릴을 돌리는 줄 알았고, 셋째 날은 남편이 일찍 들어온 줄 알았다. 넷째 날이 돼서야 겨우 적응이 됐다. 그러고도 매번 신기했다. 과연 이게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꼬마의 방귀소리가 맞는가.   

  

평소엔 귀엽게 ‘뽕’ 하던 아이의 방귀소리가 폭발하듯 커진 건 유치원에 매일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머릿속에 퍼뜩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혹시 유치원에서 방귀 참니?”

“맞아, 헤헤.”     


아이가 또 민망한 듯 웃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아이는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좀 일찍 깨우쳤다. 채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엄마, 아빠 이외의 그 누구도 자기 똥꼬를 닦아주지 못하게 했다. 간혹 할머니 집에 맡겨놓은 날이면 그 어린놈이 할머니 앞에서 똥꼬를 내보이기 싫다고 똥을 참으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닌 친구들 앞에서 방귀를 뀔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아이가 안쓰러웠다. 무엇보다 얼마나 참았으면 저렇게 아우성치듯 방귀가 터져 나올까 싶었다. 웃긴 게 아니라 짠했다.     


“아들, 유치원에서 방귀 마려우면 참지 말고 뀌어. 아직은 그래도 되는 나이야.”     


나는 종일 참느라 힘들었을 아이의 배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정 신경 쓰이면 뒤에 아무도 없을 때 살짝 뀌라고 노하우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요지부동, 절대 뀌지 않겠다고 했다.     


어쩌겠는가. 아이는 나를 꼭 닮은 것이다. 친정 엄마가 매년 연례행사처럼 빼놓지 않고 말씀하시는 나의 일곱 살 이야기. 그 속의 나는 유치원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해 하루 종일 쉬를 참고 있었다. 나도 또렷이 기억난다. 너무 오줌이 마려워서 괴로웠던 기억, 집까지 발을 배배 꼬면서 걸어왔던 기억, 마침내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방광의 긴장을 놔 버리고 줄줄 쌌던 기억.... 뜨끈하게 허벅지와 종아리를 타고 내리던 오줌의 느낌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엄마는 한동안 복도를 흥건히 적신 내 오줌을 닦아내셔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가 나보다는 나은 것 같다. 유치원에서 화장실은 간다고 하니 말이다. 쉬는 해결하니 방귀쯤이야 뭐 어떠랴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답게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방귀가 나오면 그냥 뀌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그래도 되는 나이 아닌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그런 자유가 하나씩 사라질 텐데. 누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누려라, 아들아.


오늘은 아이가 유치원 갔다 오면서 “엄마, 나 오늘 유치원에서 방귀 뀌었다!”하고 자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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