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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 PostModern Mar 15. 2024

상처에 관하여 : 상처를 대하는 나의 원칙

 “상처받았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신기한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본다. 내가 상처에 무감각하고, 무심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상처에 민감하고 예민한 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어렵게 느껴질 뿐, 비난하며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상처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을 뿐이다. 상처를 대하는 나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원칙 1. 내가 상처 주는 사람이다. “상처받았다”라는 말, 그런 어조로 하는 말은 자주 듣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라는 진심의 고백은 듣기 어렵다.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나는 상처 주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비하도, 열등감도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말, 표정, 행동 등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 곧 상처일 수 있음을 상기하는 것이다. 설령 ‘돕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해’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학에 가고, 인간관계에 진절머리가 날 때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며 어려웠겠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원칙 2. 상처를 상처로 받을 줄 아는 능력. 이 부분은 내게 결핍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처받을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상처를 상처로 받지 않으면 된다’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다. 상처받았다는 표현을 잘못됐다는 것으로 인식했다. 지금 생각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인간은 아픔을 느끼는 존재다.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상처를 주고받는 존재, 곧 나도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알아보지 못하면, 타인의 상처 또한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상처를 상처로 받을 줄 아는 능력은 ‘아파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아파하기만 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충분히 아파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원칙 3. 상처와 사람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기. 상처를 입은 입장이라면, 상처를 준 사람을 욕하지 않는 것. 상처를 준 입장이라면, 용서를 구하는 것. 상처를 입은 입장에서, 상처를 준 사람이 용서를 구해온다면 받아들이는 것. 상처를 준 입장이라면, 그 상처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상처가 상처로 남지 않는다’라는 것은 ‘상처가 관계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상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없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인간은 자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은 평생 고쳐야 할 병-그러나 고칠 수 없는 병-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파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아파하는 것이 ‘더 클 수 있음’을 인식할 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곧, 상처는 주는 입장이든 받는 입장이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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