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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 PostModern Mar 28. 2024

주체성 충돌을 넘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는 인간으로 존재하며 할 수밖에 없는 기본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중, 타인과 함께할 때 ‘듣기-말하기’는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간관계의 기초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초적인 행위에서 오해가 생긴다.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하며, 오해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일까. 왜, 말한 대로 듣지 않는 것일까. 

 듣기-말하기의 특징은 감각적이고, 자동적이며, 주체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능동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곧, 인간의 주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임을 듣기와 말하기를 통해 발견한다. 여기까지는 문제 되는 것이 없다. 잘못된 것도 없다. 주체성이 충돌하는 이유는 ‘내 입장’에서 ‘너’를 보기 때문이다. 말하는 입장에서 오해가 생기면, ‘내가 말한 대로 왜 듣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경우를, 반대로 듣는 입장에서 오해가 생기면 ‘내가 잘 들었는데, 네가 잘못 말한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자신의 주체성‘만’ 강조하다 보니, 타인에게 자신의 것이 ‘옳다’라는 문제로 끌고 간다. 주체성이 충돌할 때는 옳고 그름의 기준, 맞고 틀리다의 기준을 ‘절대로’ 적용할 수 없다. 주체성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히 상대적인 부분이다. 

 자신이 주체라면, 타자 또한 타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주체다. 쉽게 말해서 내가 중심이듯, 너도 중심이라는 말이다. 타인의 존재를 주체로 인정하면 대화할 때 충돌할 수 있지만, 서로를 인정하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주체로 인정하며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더 근본적인 전제를 설정하면, ‘인간의 대화는 불완전하다’라고 하고 싶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화를 통해 나를 나타낼 수 있지만, 나의 모든 부분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말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대 말하고 있을 때 생각은 반쯤 죽임을 당한다. 왜냐하면 생각이란 공중을 나는 새와 같아서, 말의 새장 안에서 날개를 펼 수는 있어도 날 수는 없는 법 1)” 언어, 대화는 ‘제한된 것’ 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대화는 불완전하지만 ‘인간의 존재 자체는 충분히 아름답다’라는 더 큰 전제를 갖는다면 대화의 불완전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 “경청에서 중요한 것은 전달되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 즉 타자가 누구인가다. 모모는 자신의 깊고 다정한 시선을 통해 타자를 그 사람의 타자성 안에 그대로 둔다. 이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닌 능동적인 행위다. 경청은 상대에게 이야기할 영감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사랑받는다고까지 느끼는 공명의 공간을 연다. 2)” 전달되는 것에 초점을 두면 인간의 행위가 중요하다. 그러나 존재에 초점을 두면, 대화는 행위의 차원을 뛰어넘어, ‘공간’의 측면으로 확장된다. 대화가 공명의 공간이 되는 것, 주체성의 공명이 일어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다. 

 잘 듣고, 잘 말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대화만큼 유익한 것도, 무익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말하는 입장에서는 듣는 사람이 더 듣고 싶게 하는 것, 듣는 입장에서는 말하는 사람에게 말할 영감을 주고, 더 말하고 싶게 하는 것이 ‘주체성의 공명’ 일 것 같다.





참고문헌 


1) 칼릴 지브란, 유시화 옮김, 『예언자』, 무소의 뿔, 2018, p.88.

2) 한병철, 최지수 옮김, 『서사의 위기』, 다산초당, 2023,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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