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매력에 빠지다

-장미의 계절에 대한 소고

by 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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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일정이 있어서 대전역으로 향하는 길.

차를 주차하고 가다가 멍하니 한 곳에 눈길이 쏟아졌다.

드디어~~!!!

오랜 담벼락 위로 피기 시작한 넝쿨장미...

예쁘다.

더불어 담벼락과도 잘 어우러진다.

일반 장미보다는 덜 화려하지만 겹겹의 장미꽃이

이렇게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루니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옆 담장엔 쏟아질 듯 쌓아 올린 고철 아래로 담쟁이의 잎이

청춘마냥 푸르고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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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빗방울 머금은 장미가 나를 부른다.

조금은 무거워보이는 물방울을 머금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장미가 흐릿한 가로등 아래에서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내일을 위해 장을 본 손이 무거워도 내 그대를 어찌 그냥 지나칠까.

끙끙거리며 내려놓고 그들을 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본다.

그런들 어떠리. 난 너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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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창한 아침이 밝았다.

게으름으로 조금 늦은 출근을 하는 아침 차를 달리다

다시 멈췄다.

늘 해마다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이들을 담기 위해.

올해도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장미.

어떤 배경에도 그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미소를 짓게 하는 그들이다.

허물어진 담장도 마다하지 않고 주변과 어우러지는 장미를 난 사랑한다.

화려함은 때론 주변의 배경을 잠식하고 홀로 튀는 경향이 있는데

유독 넝쿨장미만큼은 그렇게 보이지 않음은 나의 배려인가. 그의 배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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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쭈뼛 나는 넝쿨장미 담장을 따라 걷는다.

올해도 피었을까?

아~~ 드디어 발견~!!!

붉은빛 넝쿨장미 사이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민 노란 장미.

햇살에 부시도록 빛나는 노란 장미...

갈수록 그의 개체수가 줄어들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 주어 반가울 따름이다.

햇살에 더욱 빛나는 장미와 넘치도록 싱그러운 초록 잎사귀.

그들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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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떠올리는 얼굴.

아. 버. 지...!!!

당신의 정원에도 이렇게 꽃이 피었겠지요?

정원이라기엔 소박하지만 내 나이만큼 나이를 먹은 중년의

아버지 꽃밭.

정갈하기 그지없는 그 꽃밭에도 아버지의 사랑을 지금껏 머금은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하겠지요.

때론 그들의 사랑이 지나쳐 그 사랑을 시기하던 딸이 해마다 이맘때면

아버지를 떠올리며 장미 연가를 부르니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나 봅니다.


아버지의 꽃밭과 담장에는 이젠 예전처럼 화려한 그들이 피지는 않지만

변함없는 충복처럼 노구를 이끌고 고운 꽃 피워내는 장미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 사랑이 농축된 꽃이라 생각을 하곤 한답니다.

우리 집 담장을 휘덮은 넝쿨장미 덕분에 인근이 모두 장미향이 넘친다고

사람들이 얘기할 때마다 그들의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질투하던 딸마저도

마치 나의 공인 양 그 소리가 듣기 좋았는데...

다섯 자식 모두 떠난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주는 그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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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녹아든 장미는 언제 어느 곳을 가든

그 아버지의 피를 타고 자란 내겐 아버지의 또 다른 투영이다.

흐드러지게 그들이 피면 그 장미 사이로 장미 사랑을 열정적으로

펼치던 아버지가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춘다.

평생을 농군으로 사시던 아버지가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검은 탄을

얼굴에 묻히고 광부가 되었을 때도 장미 사랑은 식지 않으셨었다.


그 아버지의 그 딸이 되어서인가.

어느 곳에 가도 장미는 내 아버지처럼 반갑고 사랑스럽다.

어느 무엇과 어우러져도 어울림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장미는 그 자체로

사랑이며 배려의 꽃이다.

그들이 가진 가시는 그들의 어우러짐에 방해를 놓는 이들을 향한 경고일까.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해가 넘치도록 부신 날에도

무너져가는 담장이든, 차갑도록 뻣뻣한 철색 담장이든 상관하지 않고 피는

장미는 사랑이다.

그 사랑처럼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5월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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