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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EGG 안티에그 Mar 26. 2024

존엄한
이별을 위하여

사망 인구 30만 시대
공장이 돼가는 화장장

#그레이

문화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합니다.



Edited by 현우주


“곧 화장이 시작되니 서둘러주세요.”


한 무리의 유족이 영정사진과 관을 들고 화장장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고인의 아내로 추정되는 여성은 아직도 남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양옆에서 유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흰 장갑을 낀 직원들이 바퀴가 달린 철제 트레이를 끌고 와 그들을 맞았다. 직원들 뒤로는 10개의 화로 입구가 벽을 따라 일렬로 설치돼 있었다. 직원들은 관을 트레이에 싣고는 빈 화로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유족들에게 남은 일은 관망실로 이동해 고인의 관이 화로로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관이 들어가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들이 관망실에 도착하기 전 화로 문이 닫혔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안 된다...”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유족들의 눈시울도 금세 붉어졌다. 문이 닫히자 대형 화로가 가동되며 9구의 시신을 태우기 시작했다. 안내판엔 ‘화장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떴다.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리네요” 유족들 중 한 명이 혀를 찼다. 화장은 그로부터 두 시간 뒤 끝났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그들은 수골실로 이동해 A4용지 한 장 만한 좁은 창구를 통해 유골가루를 넘겨받았다. 그들 뒤로 수골을 기다리는 긴 줄이 있어 유골함을 싼 보따리를 엉거주춤 들고 곧장 밖으로 나서야 했다.


올해 1월 인천의 한 화장장에서 펼쳐진 풍경이다. 정해진 시간에, 여러 시신을 한 번에 소각하는 이러한 구조는 인천 화장장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화장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많게는 하루에 100구 넘는 시신을 처리하기도 한다. 물론 국내 화장장들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건 아니다. 사망자 수가 늘고, 장례 문화가 변화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시신 처리 방식을 필요로 하게 됐고, 이에 맞춰 변화를 거듭해온 결과다. 본격적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화장장의 ‘공장화’는 더 첨예해지고 있다. 화장장마다 매년 화장로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화장 시설이 부족해 4일장, 5일장을 치르는 이들도 나오는 상황에서 “존엄한 이별을 보장해달라”는 건 뜬구름 잡는 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 세계의 화장 문화를 살펴보면 꼭 불가능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일본에서는 입로부터 수골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유족들이 직접 참여한다. 유럽에서는 화로 1~2구짜리 소규모 화장장들이 보편화돼있다. ‘님비(NIMBY)’라고 불리는 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화장장 수를 늘려 밀도를 낮춘다면 우리에게도 고인의 마지막을 충분히 배웅할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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