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초등)교사를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떠났을까?

by 삽질

2015년 경기도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뉴질랜드로 떠날 결정을 내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미친 짓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저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은 했는지 당시에 부모님께 휴직하고 유학 간다고 거짓말을 했죠. 그럼에도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 그리고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나라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게다가 저는 뉴질랜드로 떠나기 한 달 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많은 변화들이 한꺼번에 제 인생에 몰려왔습니다.


뉴질랜드로 가자는 생각은 전적으로 저로부터 나왔습니다. 제가 설득해서 아내를 데려갔던 것이죠. 다행히 아내는 사랑에 눈이 멀어 흔쾌히 따라와 줬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여전히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뉴질랜드로 떠난 이유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부분만 간략하게 적어보겠습니다.


교직에 대한 나의 태도, 염증 그리고 고충


저는 교대에 20대 중반쯤에 입학했습니다. 원래는 공과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당시에 취업하는 선배들을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그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엄청난 업무량, 회식 그리고 군대식 조직문화에 첫발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학과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는데 생각만큼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아서 힘든 면도 있었고요. 그렇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초등교사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사실 전 고3 입시 때 '교대'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이과생이었고 당연히 공과대학을 진학하는 걸 목표로 했었으니까요. 뒤늦게 초등교사를 알게 됐고 교사가 되면 안정적이고, 방학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여행도 마음껏 다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기 전에 다니던 대학교를 뛰쳐나왔습니다. 교수님들께 제 사정을 메일로 알려 드리고 바로 도서관에서 수능을 공부했죠.

2015년 3월, 늦은 나이에 경기도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는 학군이 별로 좋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사건 사고도 꽤 있고 아이들도 다루기 쉽지 않았었죠. 첫 발령을 받고 몇 주 뒤에 우리 반 자폐아가 저에게 달려드는 것을 막다가 새끼손가락이 반대쪽으로 90도 꺾여버렸습니다. 관리자나 선생님들은 대수롭지 않게 신고식을 치렀다며 웃으며 격려해 주더군요. 제 손가락을 보고 찡그리던 그 교감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중간에 돌봄 교실 담당자가 휴직을 하더니 제가 그 업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신규라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많은 폭탄들을 떠안았던 상황이었습니다. 분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원래 일이라는 게 힘든 것이지만 신규로서 교직사회에서 일이 처리되는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일을 분배하는 방식, 나이가 많다고 배려받는 문화, 관리자들의 비겁한 행동 등 신규로서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조직 문화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 저는 단단히 심사가 뒤틀려 있기도 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최대한 학교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컸었죠. 이미 학교에서 정을 뗄 구실만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그때 마음을 터놓고 누군가와 이야기했으면, 그리고 진실한 도움을 받았다면 제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갔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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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향형 인간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한 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발령 초기에 한동안 두통이 너무 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우울증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제가 생각했을 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학교에서는 너무 많이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수많은 과목, 비효율적인 일처리 체계, 수많은 회의 등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모를 것들이 '필수'로 정해져 있었죠. 저는 제가 납득되지 않는 것들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 당시 제 그릇이 작은 탓도 있었겠지만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많습니다.


애초에 제가 교사가 된 마음가짐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잘 지도해야겠다는 마음보단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교사가 됐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교직에 전혀 뜻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 마음에는 여전히 순수함이 있었고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지요. 하지만 주변에서 불어오는 풍파와 저의 이기심이 교사로서 꽃을 피울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분명 저보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좋은 교사가 되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잔바람에도 쉽게 꺾이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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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 반감이 있었습니다. 이건 약간은 맹목적인 혐오와 같았습니다. 꼰대들의 허례허식이나 거들먹거림이 싫었습니다. 조금은 삐뚤어진 감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저보다 나이가 많고 고지식한 말을 하면 우선 반감부터 가졌으니까요. 이런 한국의 문화에서 벗어나 더 평등하고 선진화된 문화 안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사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허무맹랑했습니다. 제가 봤던 몇 개의 글과 영상이 그 출처였기 때문이죠. 웃긴 건 사람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원하는 증거들만 찾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걸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저는 한국의 안 좋은 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의 기울기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한국에서 살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외국 살이에 대한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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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항상 외국 살이를 꿈꿨습니다. 아주 어렸을 땐 영화를 보면서 그런 환상을 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환상이 더 커졌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외국에서 사는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가족의 영향도 컸습니다. 저희 누나는 대학교 졸업 후 영국에서 유치원 교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여러 일을 하다 지금은 치앙마이에서 미국인 남편과 국제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누나가 항상 외국에 있고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부모님도 항상 그런 도전을 응원해 주셨고요.


그렇게 자유에 대한 갈망이 마음 한편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교사라는 직업이 자유가 많이 보장된 직업이지만 그래도 발이 묶여 있는 느낌이 너무 싫었습니다. 제멋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었죠.(제가 생각해도 좀 유별나긴 합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던져버리고 더 자유롭게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디 가서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죠. 아내와 함께 라면 뭐든 즐겁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뉴질랜드?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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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에 대해 알아보던 중 뉴질랜드가 눈에 띄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는데 그중 저는 뉴질랜드가 좋더군요. 캐나다와 호주는 너무 큰? 느낌이었습니다. 그 뒤로 뉴질랜드가 좋은 점들을 계속 찾기 시작했습니다. 확증편향이 또 시작된 것이었죠. 사실 뉴질랜드는 캐나다나 호주에 비해 임금도 낮고 시골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3개 나라 중에 아마 인기가 가장 적은 나라가 아닐까 싶어요. 그렇지만 그런 뉴질랜드가 '그냥'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이 좋아하는데 꼭 이유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이 판단을 하는 데 있어서 이성은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해요. 아주 짧은 시간에 감정이 모든 판단을 마치고 이성은 그 판단이 합리적인 것처럼 변명을 해주는 것이죠. 조련사(이성)가 코끼리(감정)를 조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련사(이성)는 코끼리(감정)를 따라갈 뿐입니다. 그렇게 저는 코끼리의 몸짓에 이끌려 뉴질랜드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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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께서 제게 뉴질랜드나 외국으로 떠나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을 말씀해 주십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그분들의 마음에는 어느 정도의 '결정'이 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증거'들을 수집하고 계시겠죠. 저라면 마음을 따라갈 것 같습니다. 다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정도가 있다면 더 좋겠지요. 저는 초등교사라는 자격증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하고 돌아와도 다시 기간제교사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이 직업을 택한 게 결과적으로는 매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모든 도전에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입장입니다. 생존할 수 있다면 도전해 보세요. 도전 없이는 아무런 경험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많은 도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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