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계를 위해 마지막으로 학교를 다녀왔습니다. 방송업무를 맡았던지라 생각보다 인수인계가 오래 걸렸습니다. 장장 두 시간 동안 방송실, 강당, 시청각실 방송장비 작동법을 알려주고 방송부원들과 몇 번을 함께 연습한 후에야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과학실에서 근무했던 실무사님과 과학전담 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참 많이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두 분의 교감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올해 제가 근무를 못한다고 많이 섭섭해하셨습니다. 저도 만약에 제주도를 안 갔다면 당연히 여기서 근무를 했을 것입니다. IB 학교라 다른 선생님들은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기간제인 저는 크게 불편한 건 없었으니까요. 교감선생님들도 저를 잘 챙겨주셨고요. 어쨌든 시원섭섭하게 인사를 나누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기간제 교사를 한 이후로는 그래도 항상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저를 써 주고 함께 일하고 도와주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이젠 사회 물 좀 먹었다고 나름 눈치껏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기간제를 한 덕분에 겸손함도 배우고 사람 노릇도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교사를 그만두면서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가 계속 정교사였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꽤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은 더 재수 없고 조금은 더 거만한 사람이지 않을까요?
지금 저는 공항 대합실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창밖으로는 쏟아지는 저녁 햇살 아래 제가 탈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목적지는 제주도입니다. 이 날짜에, 이 시간에 저는 처음으로 제주도를 갑니다. 그리고 이번 학기를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새로운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업무를 준비하고 수업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내는 어젯밤 꿈에서 수업을 하는 악몽을 연달아 두 번이나 꿨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현실에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진 2월의 끝자락을 맞이하는 몸과 마음이 무척 가볍고 설렙니다. 저도 그리고 와이프도요.
앞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 인수인계를 받는 날이 올지 안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든 안 오든, 그 선택이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니 앞날을 상상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 상상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냥, 최대한 즐겁게,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살아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불안함이나 예측할 수 없는 변수는 어쩌면 우리가 꼭 안아야 하는 인생의 정수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건 정말 예측하지 못한 아주 크고 작은 사건들이니까요. 앞으로 그 사건들이 쌓여 저를 또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이동진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하루는 최선을 다하되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게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물살에 저항하기보단 그저 물살에 몸을 맡기는 거죠. 그래야 인생이 더 재미있고 덜 피곤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은 혹시 예상했던 모습이신가요?
전, 단 한 번도 예상하지 않았던 모습이네요. 그래서 참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