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사로 4년을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기간제 교사로 4년째 근무 중입니다. 정교사를 그만둘 때 초등교사를 다신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습니다. 제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초등교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산더미처럼 찾기도 했죠. 그 후로 뉴질랜드 이민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본 임용고시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기간제로 일을 하면서 겸손함을 배울 수 있었고 현직 선생님들을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얻었습니다. 업무와 학생관리에 대한 부담이 줄면서 교사 생활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고요. 전화위복이 된 셈입니다.
지금 기간제로서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많은 혜택을 받고 있죠. 육아시간, 방학처럼 편하게 가족과 보낼 시간을 눈치 보지 않고 보장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만한 복지를 받을 수 있는 회사는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기간제라는 직업을 꽤 오래 할 생각을 가졌습니다. 미래를 예측할 순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한 10년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딱 10년만 하면서 아이도 키우고 제가 살 길을 모색할 생각이었죠. 그동안 돈도 꽤 모을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꽤 괜찮은 선택 같았습니다.
아내에게도 제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이러더군요. 다른 일할 거면 빨리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따져보니 저는 언젠간 교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거라고 '결정'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결국에 교사를 하지 않을 거라는 건 기정사실화된 것이었죠. 사실 교사로 나이 들어가는 건 제가 원하던 삶의 모습은 아닙니다. 교사란 직업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교육과 제 교육철학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교육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곧 마흔이 되는 데 다른 일을 하기 위해 10년을 기다리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옳았습니다.
제가 기간제 교사를 계속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안락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제 인생에 어떤 변화도 주고 싶지 않을 만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2019년에 결혼하면서 지금까지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 이민, 임용고시, 육아까지 하면서 한 해도 허투루 살지 않았죠.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함에 젖어 제가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간제라는 직업은 보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구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살길을 찾아야 하죠. 그럼에도 제가 앞으로 10년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던 것입니다. 안락함이 제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
뉴질랜드에 갔을 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제 마음속에 늘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바로 '목수'입니다. 작년에 일을 쉬면서 저는 반년 정도 주말마다 목공방에서 가구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루 종일 서서 몸을 쓰고 톱밥을 뒤집어쓰며 일하면서 오랜만에 몰입이란 걸 경험했죠. 즐거웠습니다. 목공방 선생님께 목수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도 많이 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뒤로 아무런 변화 없이 지냈습니다. "천천히 언젠간 목수가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요. 결국에 제가 했던 목공방 체험은 도전하는 시늉에 불과했던 것이죠.
목수는 가치 있는 직업이고 제가 즐길 수 있는 직업이라고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수라는 직업이 갖는 사회적 편견에 겁을 먹었던 것이죠. 그리고 당장 교사만큼 돈을 벌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고요. 말로는 원하는 직업은 뭐든 해도 된다고 쿨한척하면서 정작 저는 그 일을 할 자신은 없었던 것입니다. 기간제를 하면서 직업에 대한 편견을 많이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많이 안 변했나 봐요. 제가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직업에 과감히 뛰어들지 않는다면 저는 평생 이 편견에 갇혀 살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저와 제 아내는 꿈이 생겼습니다. 그 꿈 때문에 목수를 할 용기가 다시 생겼습니다. 바로 제주도에 직접 집을 지어보는 것이죠. 신축을 짓지 않더라도 구축을 저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소하게 가구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굳이 돈도 안 되는 주택에 살아보려는 생각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경험했던 주택에서의 생활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연과 집이 연결되는 느낌, 우리만의 색깔과 가치관이 묻어나는 '집'의 냄새가 좋았습니다. 그런 집에서 저와 제 아내가 작업실을 갖고 일하는 모습을 아이가 지켜보며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롭게 집 안팎을 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도 그립니다. 주말이 되면 제주도의 오름을 오르고 해변에 나가 수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꿈꿔 봅니다.
내년에는 교사를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목수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항상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입니다. 경험상 부딪쳐보면 결국엔 길이 있긴 하더군요.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길이지요. 현실적인 어려움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나이도 있고 몸 쓰는 일을 하려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처음엔 어렵겠지요. 하지만 옛날보다 더 뻔뻔해지고 근성도 생겨서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고요. 실패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도전으로 얻는 경험과 지혜에 비하면 실패로 인한 손해는 아주 작아 눈치채기 어려울 테니까요. 위험을 걸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