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됩니다. 청춘이 빛나던 시절 제게는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눈앞에 다가와 있네요.
고등학교 시절까지 참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남들이 하라는 대로 그렇게 살았었죠. 학교를 가라고 하니 갔고, 공부를 해야 한다니 했습니다. 적당한 수능성적을 받고 적당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참 재미있더군요. 멋도 부리고 술도 진탕 마시고 연애도 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처음이어서 많이 삐걱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것들이 많더군요. 깊은 성찰이 없이 관성에 따라 사람들을 대하고 새로운 일들을 겪다 보니 쉽게 속아 넘어갔습니다. 제 삶의 기준선이 없으니 너무 많은 선택지들이 낯설고 버거워지더군요. 균형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점점 세상이 어렵고 무섭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20대에 늦은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몸은 훌쩍 자랐지만 정신은 한참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죠. 늦은 사춘기인 만큼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 더 심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공부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사랑은 무엇인지와 같은 심오한 질문에 파묻혀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직업처럼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숨통이 조여오더군요. 고민 끝에 다니던 공과대학에서 뛰쳐나와 수능을 다시 준비하면서 어머님께 여쭤봤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어떻게 살아남았냐고요. 그만큼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날이었습니다. 머릿속에 TV가 켜진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계속 소리가 들렸었죠. 수능 보는 날에도요.
당시에는 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보듯이 좁은 시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경험이 너무 부족한 탓이었겠죠.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서 길을 찾기 힘들었고요. 게임처럼 선택에 따른 수많은 결과를 눈앞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캄캄한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이지요. 빨리 감기가 안 되는 세상이 야속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리숙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느낌에 쫓기듯 조급해했었죠. 조급함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조급함은 눈앞을 흐리고 정신적인 고통만 주기 때문이죠. 결국 시간이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20대 중반에 교대에 들어가니 서서히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더군요. 1학년 때는 자아성찰의 관성이 남아있던 탓에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과 공부도 열심히 했었죠. 꾸역꾸역 철든 어른의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요. 술 마시고, 놀고, 운동하는 철없는 대학생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걱정이 사라지니 본능에 지배당하더군요. 그런 모습으로 꽤 오래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발령받아 지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돈 쓰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만 생각하면서 살았죠. 생각이 점점 단순해지면서 제 인간성이 고약해지더군요. 내면보단 외면을, 인류적 가치보단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고 남들과의 비교가 늘다 보니 점점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뾰족하고 못났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힘들고 괴로운 시기에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 아내였습니다. 운이 정말 좋았습니다. 제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던 때, 아내 덕분에 제게 부족했던 인간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었죠. 짧은 연애를 마치고 아내와 결혼해서 곧바로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신혼을 보냈습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한국에서 보지 못한 삶에 필요한 상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괴롭힌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을 버릴 수 있었죠. 그 당시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돌이켜보니 제 삶에 필요한 기준선을 서서히 그려 가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한없이 흔들리던 제 삶에 무게추가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었죠.
뉴질랜드에서 돌아와 저희 부부는 곧바로 아이를 가졌습니다. 동시에 다시 본 임용고시에서 불합격을 했죠.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에 처했던 시기였습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두 감정이 얽히고설켜 몸과 마음을 어지럽게 했습니다.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합니다. 바쁘고 힘든 상황에 처하니 초인적인 힘이 나더군요. 갓난쟁이를 키우면서 저는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틈틈이 공부하고 운동하고 많은 것을 시도하면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기간제를 하는 학교에서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쉬는 시간마다 책을 봤습니다. 아이를 재울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요. 힘들지 않더군요. 제가 원하고 궁금해서 하다 보니 저절로 몸이 반응했습니다. 이걸 내적동기라고 부르면 될까요. 환경과 상황이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따라가야 할 기준선이 점점 진해져 갔습니다.
최근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서 저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도 느껴지지만 어쨌든 매우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조금은 즐기고 싶습니다. 내년엔 다시 새로운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는 본능적으로 경고등을 켜고 살아갈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겠죠. 그러면서 조금은 더 성장하고 세상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라는 새로운 장소, 목수라는 새로운 일이 제게 어떤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져줄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됩니다.
2005년도에 처음 대학생이 된 후로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성인으로 지냈던 시간이 청소년으로 지냈던 시간보다 많으니 살아온 시간이 더 길게만 느껴집니다. 성인으로서 조금은 진취적이고 성숙하게 살아왔다면 좋으련만 참 오랜 시간 방황하고 시간을 낭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낭비가 있었기에 뭐라도 경험하고 배웠다고 믿습니다. 효율성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원래 비효율적이고 편향투성이인 나약한 존재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위로와 칭찬을 해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온 기간 동안 제가 잘나거나 실력이 좋아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님을 절실히 느낍니다. 제 주변의 도움과 운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를 생각하면 그동안 오만했던 제 모습이 부끄럽고 때론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상어에 쫓기는지 모른 채 파도를 타는 모습을 나중에 화면으로 확인한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께 더 감사합니다.
젊었을 때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컴컴한 터널을 지나기 위해 밝은 전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안타깝게도 여전히 밝은 전등을 얻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제 앞날을 알기 어렵지요. 하지만 그런 불확실함, 불안감은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어둡고 긴 터널을 더듬더듬 가다 보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때론 다치고 넘어져도 너무 위험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제가 가장 사랑하는 팀원이 둘이나 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롭지 않습니다. 청춘과 함께 했던 무모함과 반짝이는 얼굴은 사라졌지만 깊게 팬 주름살만큼 삶을 살아가는 지혜는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마흔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