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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불편한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경험의 종말'을 읽고

by 삽질

저는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아주 애매한 MZ 세대입니다. 운이 좋게도? 저의 어린 시절은 꽤나 아날로그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점차 삶의 모든 것들이 최신화, 디지털화되면서 제가 향수를 느끼는 아날로그적인 경험들이 사라지게 됐습니다. 삶은 꽤나 편해진 것 같습니다. 굳이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고 몇 가지 앱만 있다면 쇼핑, 여행, 외식, 병원 예약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손쉽게 해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편리해진 요즘, 수많은 매개물(스마트폰, 소셜미디어, 앱, IT 기기 등)이 제 삶 속 깊은 곳까지 침투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루 종일 무언가 하고 있어야만 하는 환경이 된 것이죠. 똥 쌀 때조차도 제 눈은 유튜브 숏츠를 빠르게 훑고 있곤 합니다.


문뜩 나는 언제 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쉰다는 건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눈 뜬 상태로 잠이 든 것만 같은 상태를 뜻합니다. 총각 시절 저에게 마음먹고 쉰다는 말은 하루 종일 누워서 영화 보고, 스마트폰 보다 배달음식 시켜 먹는 일과 동의어였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제 눈과 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고 잠깐의 공허함과 지루함을 무언가로 채우곤 했었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휴식을 위해 여행을 가도 앱으로 스케줄을 짜고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근황을 올리고 있으니 이 또한 제가 말한 쉼과는 거리가 먼 행위인 셈이고요. 반면에 어렸을 적 가만히 선풍기를 켜고 누워 창밖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스르륵 잠이 들던 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것도 제 주의를 끌지 않았었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친구와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곤 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친구가 혹시라도 올까 봐 한 시간이 넘도록 한자리에 서 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진짜 서있기만 했던 것이죠. 혹시나 친구가 지나치진 않을까 걱정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이리저리 훑으며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다른 친구들을 따라 운동장에서 놀다 보면 기다리던 친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참 무식한 방법이지만 꽤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기다림, 걱정, 끈기, 행운, 기쁨과 같은 수많은 삶에 필요한 가치는 무식한 행동을 해야만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스타크래프트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 제가 주로 하던 놀이는 운동장에서 해질 때까지 노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떠나고 새로운 친구들이 오고 모르는 형들이 와도 어떻게든 다 같이 놀았습니다. 우당탕탕 놀면서 저는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삶은 불편하고 굴곡이 많았습니다. 지금이라면 비효율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행위들이 우리 삶에 넘쳐 났었죠. 사람을 '직접' 만나 데이트를 했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표정을 읽고 말투를 느끼며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써야만 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사람과 대화하는 법, 표정을 읽는 법 따위를 배울 수 있었죠. 필요한 정보는 책을 찾거나 관련 지식을 가진 선생님께 여쭤봐야만 했습니다. 맛집 정보가 없으니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식당을 묻고 그마저 안되면 눈에 보이는 새로운 식당에 과감하게 도전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공원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사람들을 구경하고 우연이라는 무작위적인 만남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살곤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가져야 할 상식과 인간미를 자연스럽게 배웠고 진정한 쉼도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향수를 느끼던 옛 모습들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이제는 제가 경험했던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행동과 경험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아이들은 매개물로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세상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종이책을 읽고 손글씨를 쓰기보단 전자책을 읽고 스마트 패드로 학습을 합니다. 아이들과 골목을 뛰어놀기보단 온라인으로 친구들과 소통을 하죠. 친구들이 옆에 있어도 시선은 스마트폰에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마땅히 받아들였던 불편함, 불확실성, 비효율성은 불필요한 삶의 걸림돌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틴더로 최적화된 사랑을 고르고, 비대면으로 문 앞에 놓일 음식을 주문합니다. 구글맵으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숙박시설과 식당을 미리 알아보고 평점을 확인 한 후에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합니다. 공원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스마트폰과 대화하고 화면에서 나오는 영상에 집중합니다. 여행을 가기 위해 모든 일정을 마이크로 매니징 하여 시간별로 관광장소를 둘러보고 모든 장소는 눈에 담기 전에 핸드폰의 사진첩에 저장되고 소셜미디어로 공유되곤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전부 소셜미디어로 공유되고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은 남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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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우리의 삶에 유례없는 평탄함을 제공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어린 시절 느꼈던 인간적인 감정, 삶의 무작위성이 던져주는 예기치 못한 즐거움처럼 인간미 넘치는 삶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 속에서 기술은 개인의 자유와 주도권을 빼앗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모습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은 각자의 알고리즘 속에 존재할 뿐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현실에서 함께 사랑하고 갈등하고 화해하고 이해하며 살지 않습니다. 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 대신 포기한 많은 직접적 경험과 가치는 어쩌면 절대 포기해선 안되는 삶의 본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본질은 숫자로 정량화하거나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가치로 환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복잡하고 심오하기 때문입니다. 제 삶이 조금 더 자연스럽고 사람 냄새가 날 수 있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삶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어떤 생활을 하셨나요? 손에 핸드폰을 쥐지 않은 채, 아무것도 시청하고 있지 않은 채,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은 채 조용히 쉬었던 시간이 있었는지요? 그늘에 앉아 새파란 하늘을 본다던가, 창밖에 내리는 비를 감상한다던가, 사진과 소셜미디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원해서 한 행동이 있었나요? 스마트폰 화면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보며 대화를 나눈 적은 언제였나요? 앱의 도움 없이 즉흥적으로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본 적은 있으신가요? 연필로 꾹꾹 눌러 정성을 담아 글을 쓰거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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