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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이 싫다는 아이

by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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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아이를 3년 동안 가정 보육했습니다. 올해 만 3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아이는 기관을 다니기 시작했죠. 기관을 다닌 지 이제 5달이 됐습니다. 5달이면 충분히 어린이집을 좋아할 법도 한데, 아침에 종종 가기 싫다고 떼를 부릴 때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자기 나름의 드라마도 완성했습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 컨셉으로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죠. 처음엔 억지로 인사를 시켰지만 이젠 그 드라마의 조연이 되기 싫어서 무시하고 그냥 저희가 할 일만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다간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말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아이는 종종 내일이 무슨 요일인지 묻곤 합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어린이집을 안 가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요일을 확인하는 것이죠. 그리고 습관처럼 자기는 어린이집이 싫다는 말도 합니다. 아이가 하는 말의 많은 부분은 잡음이기에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욘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아이의 언어와 행동 중에는 정보가 있을 테니 이를 잘 살피려고 합니다. 나름 어린이집 생활을 잘한다고 선생님과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지만 분명 아이가 기관 생활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추측해 봅니다. 사실 저나 와이프 모두 사회생활할 때 주변 사람들 신경도 많이 쓰고 사람들한테 기 빨리는 유형이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엄마를 닮아 모범생 기질이 있어서 규칙도 잘 지키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지만 아마도 꽤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여유가 된다면 저희는 아이를 가정 보육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지라 아내도 돈을 벌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은 저희 부부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집에서 애를 키우면 부모도 힘들지만 아이도 집에 있는 게 지겹고 힘들 것이라고 느끼실 겁니다. 그리고 아이가 기관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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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된 부모님들은 아이가 크면 어린이집을 집보다 더 좋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조언을 해주시곤 하죠. 그런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먹이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모든 활동의 목표가 즐거움이 된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지겹고 재미없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즐거움을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일상의 무료함, 지겨움, 따분함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에 생긴 빈틈 안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천천히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극이 없이도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집의 다양한 프로그램, 행사, 키즈카페, 문화센터, 놀이 체험과 같은 활동들은 즐거운 자극을 위한 수요일뿐, 올바른 교육의 지향점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는 빨리 사회생활을 할수록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의 아이들은 지금의 아이들보다 사회성이 더 떨어졌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사회성은 또래집단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부터 학습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사회성 학습에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어른인 것이고요. 아이들의 모범이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어른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4세가 함께 모여있는 장소에서 서로에게 대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경험적으로 따져봐도 오랫동안 부모와 함께 어린 시절을 집에서 보냈던 아이들이 오히려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살에 처음 기관을 갔던 제 아내만 봐도 그렇고요. 많은 경험이 아니라 질 좋은 경험이 사회성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최근에 읽은 '아이의 손을 놓지 마라'라는 책은 아이들이 너무 빨리 또래집단 세계로 내몰리면서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와의 애착을 통해 마땅히 가져야 할 권위가 또래집단에게 이전되면서 올바른 성장에 필요한 삶의 나침반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성숙한 부모가 아닌 미성숙한 또래가 삶의 기준이 되는 만큼 아이들의 삶은 불안정해집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는 아이를 통제할 수 없게 되고 아이는 미성숙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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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당연한 요즘 시대에 이 행위 자체의 의문에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고파서 밥을 먹는데 밥을 왜 먹냐고 질문하는 것만큼 어리석게 느껴지는 질문이지요.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는 모습에 유별난 부모라고 눈총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다 겪었던 일이라며 별일 아닌 듯이 말하는 육아 선배님들의 여유 있는 눈빛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사는 데 그냥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보육기관이라는 효율적인 시스템은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이뤄진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전혀 유사하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게다가 보육기관이 생긴 이후에 생긴 많은 문제를 우리는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고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지만 이게 옳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여러 이유를 떠나 저도 학교에 가기 싫은데 아이는 오죽할까라는 마음도 드네요. 그래서 저희 부부의 방학과 함께 아이에게도 긴 방학을 주기로 했습니다. 어제부터 아이의 표정이 달라지더군요.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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