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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의 헌신적인 육아 현장

by 삽질

주말 아침 아내와 아이와 함께 실내 놀이터를 다녀왔습니다. 아내가 집에만 있는 게 지루했는지 예약을 해놓았습니다. 10시 정각에 문이 열리고 저희 식구가 가장 먼저 들어갔습니다. 널찍한 공간에 여러 섹션이 나눠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것저것 하나씩 탐색을 하더니 큰 블록이 놓여 있는 곳에서 꽤 오랜 시간 시간을 보냈습니다. 놀고 있다 보니 점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더군요. 신기하게도 엄마들은 보이지 않고 전부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려와 놀아주었습니다. 아마도 평일 동안 육아에 애쓴 아내를 배려한 따뜻한 마음의 남편들일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눈물을 삼키며 아이를 끌고 나왔겠지요.


아이들과 놀고 있는 아빠들의 표정이나 텐션을 보니 아무래도 전자일 것 같습니다. 어찌나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는지 누가 일당이라도 주는 거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6살쯤 된 남자아이와 같이 온 아빠는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변조해가며 아이와 역할극을 야무지게 해주고 계시더군요. 4살 정도의 여자아이와 온 아빠는 달아나는 아이를 잡기 위해 무릎에 불이 나도록 기어다니고 계셨습니다. 엉덩이 골이 보일 정도로 흘러내린 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입니다. 일어나자마자 나오신 건지 머리가 산발인 한 아빠도 보였습니다. 반골 기질이 있는 저는 다른 아빠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더군요. 조금은 무심하게 아이와 블록놀이를 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육아하는 아빠들을 지켜봤습니다.


80년대 생인 저의 아버지와 비교하면 지금의 아빠들은 영화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고 집에 오면 티브이를 보면서 누워 계시거나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갑게 저와 놀아주는 건 고사하고 담배 심부름이라도 안 시키면 다행이었죠. 제가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늦게 오는 날에 잘못 걸리면 뚜드려 맞기 일쑤였고요. 이렇게 적고 보니 범죄 영화에 등장할 법한 악랄한 아빠같이 느껴지네요. 우리 세대 아버지들의 워라벨이나 가정에서의 지위를 고려하면 이 정돈 무난했던 집안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상남자 아빠를 경험했던 마지막 세대인 것 같고요.


반면에 지금의 아빠들은 어떻습니까?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들어와 아이와 애착 형성을 위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캠핑도 가고 놀이터도 가고 함께 공도 차면서 훌륭한 아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요. 때론 아이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아픈 아이가 혼자 귀가한다는 사실에 뚜껑이 열려 담임선생님을 아주 혼쭐 내주기도 합니다. 아이 문제로 화가 잔뜩 나서 학교로 찾아온 어머님들은 마지막 필살기를 발사하곤 합니다. "우리 집사람이 정말 많이 참고 있어요." 그만큼 육아에서 아빠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는 시대가 됐지요.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아이를 향한 아빠의 사랑이 얼마나 과열됐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빠가 자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애착을 형성하는 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이른 나이부터 기관 생활을 하면서 부모에 대한 애착이 또래집단에게 이전된다고 합니다. 부모와의 애착이 줄어들면서 부모가 가져야 할 권위도 함께 사라지고요. 점점 부모와 아이 사이에 미묘한 균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아이들이 기관에서 또래집단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요즘이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아빠는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과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보다 더 잘 놀아주는 아빠 덕분에 약간의 부작용도 생기는 듯합니다. 아이의 비위에 너무 맞춰 준다고 해야 할까요? 지니처럼 뭐든 말만 하면 들어주는 아빠가 곁에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주 수월하게 놀이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뭐든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되기 마련이지요.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너무 지나치면 아이의 삶이 너무 편해지기 마련입니다. 부모로서 아이가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견디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잘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실패, 힘듦, 고통 따위를 용인해 줘야 합니다. 아마도 딸을 가진 아빠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변에 딸을 가진 아빠들은 딸에게 아주 꼼짝 못 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나중에 아이에게 너무 휘둘릴 수도 있으니 조금씩 권위 있는 모습을 갖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딸을 갖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무조건 해야겠지만요.)


상남자 아빠와 지니 같은 천사 아빠의 중간 즘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아빠가 존재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살가운 아빠이면서 때론 엄격하게 훈육도 할 줄 아는 아빠인 것이죠. 아직 부족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의 길을 걸었을 때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갖고 오늘도 노력중입니다. 헌신적인 육아를 하는 우리 시대의 아빠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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