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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재정의

강릉 영진해변 2박 3일 여행기

by 삽질

강릉 영진해변으로 2박 3일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햇볕에 그을린 어깨와 등이 따끔거리네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뽀얀 속살이 많이 나약해졌나 봅니다. 영진해변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곳입니다. 에어비엔비로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았고 해변이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는 말에 덜컥 예약을 해버렸죠. 그 해변이 바로 영진해변이었습니다. 극성수기 휴가철인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붐비지 않았고 날씨도 너무 좋았습니다. 눈치게임에서 승리한 기분이 들더군요. 누군가에게는 별 볼일 없는 해변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처에 식당도 별로 없고, 딱히 핫한 느낌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희 가족에게는 너무나 잘 맞는 장소였습니다. 놀멍 쉬멍 하며 잘 쉬다 왔습니다.


<첫째 날>

집에서 9시에 출발해 3시간 조금 안 걸려 영진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영진해변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체크인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 서점에서 휴가 동안 읽을 책을 한 권 샀습니다. 2시에 체크인을 하고 나서 바로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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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만 날씨가 그런 건지 아니면 강릉 날씨가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바람, 온도, 습도가 정말 완벽했습니다. 유럽의 좋은 해변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니스 해변이 떠오르더군요.) 오랜만에 온 여름휴가라 미쳐 날뛰는 도파민이 현실을 왜곡했을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여유, 햇볕의 따뜻함, 바람의 시원함, 바닷물의 상쾌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굵은소금 같은 모래의 서걱거림과 모레가 뿜어내는 알록달록 반짝이는 빛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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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정도 정신없이 해변에서 놀고 숙소에서 씻고 밥 먹기 위해 다시 나왔습니다. 영진해변은 크기가 크지 않아서 근처 식당도 몇 개 없더군요. 전부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라 더 좋았습니다. 끌리는 식당(팍스 버거)에 그냥 들어갔습니다. 맛은 아주 좋더군요, 아들 녀석은 그새를 못 참고 잠들어버렸습니다. 한참을 자다 일어나길래 햄버거 한 개를 시켜주니 저 커다란 햄버거를 거의 박살 내듯 먹더군요. 많이 배고팠나 봅니다.


밥 먹고 해 질 녘이라 바로 앞 방파제로 노을을 보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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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짜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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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 하냐? 올라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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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녀석, 올라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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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짜 예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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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노을을 참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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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참 노을을 좋아했는데, 이날 밤 노을은 특별히 더 좋더군요.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방파제를 가족과 함께 걷고 있으니 이만하면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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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해뜨기 전에 일어나 베란다에서 일출을 보며 명상도 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아내의 인기척 소리에 잠깐 일어나 함께 일출을 봤습니다. 멍하니 잠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다 다시 잠자리에 돌아가 더 잤습니다. 그리곤 아들놈과 느지막이 일어나 다시 게으른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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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빨리 수영하러 가요."


일어나자마자 튜브를 챙기더니 빨리 나가자고 재촉합니다. 어제 참 재미있었나 봅니다. 아침으로 근처 빵집에서 간단히 빵을 먹고 해변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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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이대로 정신없이 모래놀이를 하고, 저는 모래에 누워있다 더워지면 수영하길 반복했습니다. 아이가 수영하고 싶다고 하면 튜브에 태워 한참을 수영 시켜주고, 아내는 서점에서 사 온 책을 읽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냈습니다. 저희는 꼭 해야 할 일이이나 일정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저 몸과 마음이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그 시간을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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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영진 해변 근처에서 라멘도 먹고 저녁으로는 주문진 시장에 가서 생선구이와 물회도 먹었습니다. 후식으로 초당옥수수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먹었습니다. 늦은 밤 영진해변으로 돌아와서는 한참 동안 물고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꽁치 새끼 3마리와 작은 게 2마리를 잡았습니다.(저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날에도 수영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아이를 차에서 재우면서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너무 늦잠을 자기도 했고 제 어깨와 등이 너무 빨갛게 익어 도저히 햇빛을 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해 점심을 먹고 집으로 바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근처에 식당도 많이 없고 강릉까지 왔으니 경포대 쪽으로 나가보기로 합니다. 한적했던 영진해변을 벗어나니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는 원래 제가 예상했던 강릉의 모습이 보입니다. 벌써 피곤해집니다. 마땅히 주차할 장소를 찾기도 힘들어 그냥 운전하다 주차장이 비어있는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집이더군요. 뭐, 중국집 실패하기가 더 어려운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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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 짜장면, 차돌순두부짬뽕 맛있게 먹고 근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그렇게 저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던 한적한 영진해변을 벗어나 집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너무나 만족했던 이번 여행이 아쉬워 저희 부부는 방학이 가기 전에 다시 여행을 가자고 계획 아닌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희는 과연 어디로 또 떠날까요? 과연 떠나긴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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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의미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휴가는 너무 바빠 보입니다. 휴가의 모든 일정은 여름방학 계획표처럼 시간 단위로 정해지곤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해야 할 일과 먹어야 할 음식들이 스케줄 표에 빼곡하게 차있습니다. 바쁜 스케줄에 맞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수많은 사진을 남길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쉼은 사라지곤 합니다. 저도 그런 적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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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여행을 다니면서 우연히 서양 친구들과 가끔 동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두 장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탈리아 남부의 포지타노였고 하나는 태국의 꼬리빼라는 섬입니다. 포지타노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남매와 스웨덴에서 온 여자 한 명과 함께 카프리 섬에 놀러 갔습니다. 보통 섬에 간다고 하면 목적지도 있고 들려야 할 관광지도 있을 테지만 그 친구들은 그런 게 없더군요. 좋은 해변을 찾아가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구글맵 따위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저 해변'으로 가자고 하더니 무작정 그쪽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아주 작은 해변에서 수영과 태닝을 번갈아 하고 오는 길에 사 온 빵과 햄, 치즈 그리고 술을 곁들이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당시엔 아무런 계획이 없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쉼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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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면 섬 전체를 다 돌 수 있는 꼬리빼라는 작은 섬에서도 지루할 정도로 비슷한 행위를 하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 종일 바다에서 쉬고 놀면서 밤이 되면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 게 일상이었죠. 바쁠 것도 없습니다. 있고 싶은 만큼 섬에서 편하게 쉬다가 질리면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니까요.


일상만큼 바쁘고 효율적인 휴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고 어쩌면 불편한 현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는 게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죠. 이유야 어떻든 간에 휴가를 통해서 각자 진정한 쉼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은 깊게 고민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을 따라 하거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마음의 소리를 먼저 들어보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점점 자신만의 즐거운 휴가를 완성해 나가면 더 뜻깊을 테니까요.


운이 좋게도 이번 휴가를 통해서 저희는 정말 잘 쉬다 온 것 같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쉼'을 영진해변에서 보낸 3일간의 짧은 시간이 잘 정의한다고 느꼈습니다. 저희만의 쉼을 찾은 것 같아 무척 기쁜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휴가에서 어떤 쉼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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