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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Jul 30. 2018

프랑스에서 동양인 여자로 살기 III

feat. 여기는 서울, 서울은 맑음.

  서울이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장마, 그러고는 바로 폭염이다. 몸에서 체력을 이루고 있는 어떤 것을 쭈욱 짜내는 것 같은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5월까지 전기장판을 끼고 살면서 추위를 유난스레 타는 나는 이제 더위도 유난스레 타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이 더위가 너무나도 유난스럽다. 파리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내린 지 한 달이 넘었다. 스무 해가 넘게 태어나서부터 쭈욱 살아온 동네는 변함이 없는 듯 보였지만 낡은 우리 집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이제 수명이 위태로워 보이고 집 앞에는 맛있는 밀크티를 파는 카페가 새로 생겼다. 친구들은 이사를 가기도 하고 직장을 옮기기도 했다. 작년에 만난 어린이 친구는 키가 부쩍 컸다. 엄마는 담배를 끊었고 매일 저녁 산책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빠는 여전히 이차 세계 대전사를 성경처럼 반복해 읽는다. 물리적 거리가 주는 영향은 꽤 힘이 세다. 익숙하던 스트라스부르의 길거리들이, 조금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대성당과 꽃이 만개한 강가 따위가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오늘은 스트라스부르 집에 잠깐 들르는 꿈을 꿨다. 비현실적인 꿈에서 나는 그 비현실성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의심은 하지 않고, 그래서 늘 초조하다. 나는 서울에서 잠깐 버스 타고 홍대에 가듯이 스트라스부르의 세 명이 나누어 쓰는 아파트에 들렀다. 보고 싶은 갈색 태비 고양이들을 쓰다듬으면서 너무 초조했다. 서울에 나는 일 년에 겨우 두 달 있을 건데, 그 시간이 아까운데, 여기서 보낼 수는 없는데. 그런 비현실성 때문에 조급해하다 눈이 번쩍 떠졌다. 서울 아파트의 내 방 천장이다. 안심되고 슬펐다. 아, 이제 여기에서도 이 꿈을 꾸는구나. 보통 이런 꿈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서울에 가는 버전으로 끝없이 반복되었다. 서울 집에서 너무 편하고 안심되면서도 내가 왜 여기 있지? 다음 주에 시험 있는데? 왜 여기 있지? 하다가 깨고 보면 항상 같은 스트라스부르 한 구석 내 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팔천 킬로미터를 이동해온 내 무의식을 깊게 원망하면서 무너지는 마음이 든다. 나는 여기에도 저기에도 그리운 것들을 잔뜩 만들어버렸고 결코 어느 한쪽으로만 만족하면서 살 수 없게 되었다. 

  뉴스, 뉴스가 문제다. 뉴스가 비추는 이 세상이 문제다. 이번 서울 체류에서 나는 제법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좋은 친구들을 잔뜩 만나 그들이 주는 좋은 에너지를 차곡차곡 모아둘 셈이었다. 가족들이 제공하는 끈끈한 안정감과 인정 속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빛처럼 몸에 스며들었다. 나는 이 기운들을 아끼며 잘 모아 두고 험난한 날들이 오면 버틸 힘으로 쓸 셈이었다. 프랑스 국경 옆 도시에서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하면 머리가 띵하고 진절머리가 났다. 길거리를 걸으며 어디서 튀어나와 내 하루를, 혹은 며칠을 망가뜨릴 비열한 인간들을 경계하면서 지냈는지 기억이 났다. 너무 힘들었어. 깊게 체감도 못 했던 것 같은데 여유가 생기자 그 기억들이 마구 몰려와 발목을 잡아당겼다. 그래도 버틸 요량이었다. 그렇게 좌절하고도 결국 나는 학년을 올라가게 되었고 프랑스어도 제법 능숙해진 것 같았다. 한국의 다들 너무 바쁘고, 너무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낯설기도 했다. 느긋하게 각자의 리듬대로 사는 프랑스의 분위기가 그립기도 했다. 그리고 뉴스를 들었다.

  여자의 몸을 남자들이 어떻게 소비했는지에 대한 뉴스였다. 어떻게 서술해야 할까? 어떤 여자들은 죽었고 어떤 여자들은 떠났다. 몰래 찍은 영상들을 올린 남자들이 큰돈을 벌었고 그 영상을 지워준다며 또 큰돈을 벌었고...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 걸 보면서 욕망했을 남자들이 너무 많아서 전부 잡아넣으면 거의 모든 이들이 범죄자가 될 지경이라고 했다. 지긋지긋했다. 무섭기도 하고 역겹기도 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일 년 중 고작 두 달 남짓 이 나라에 머물러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여자들은? 아니, 도망가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도망치지는 말자. 어떤 식으로든 함께 싸우자. 공들여 모은 기운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파리의 한 펍이 한국인 유학생에게 저질스럽게 인종차별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몽파르나스 인근에 있다는 가게 평을 남겼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사랑하고 어쩔 수 없이 증오하는 그 나라가 그랬지, 친절하게 웃는 서버가 젓가락 필요하냐는 농담을 했지. 니하오 거리면서 쫓아오고 원숭이 흉내를 냈지. 그 모든 일들을 이야기했을 때 그럴 리가 없다고 다들 손을 내저었지. 여자인 것도, 한국 여자인 것도 아무것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그런 이유로 내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무너지고는 했다. 나는 자주 혼자 울었고 팔천 킬로미터 떨어진 가족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울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에는 화장실 불법 촬영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불안을 잠재우려고 항불안제를 먹고 항우울제를 삼키고 억지로 잠을 잤다. 

  우울증 치료에서 첫 번째 단계는 우울을 촉발시키는 환경(학대하는 애인, 가족, 혹사시키는 직장)을 바꿔보는 거라고 한다. 나의 우울을 촉발시키는 환경은 이 세상 모든 땅이다. 먼지 한톨 같은 내가 여기를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계속 싸우거나 피하거나 연대하고 약을 바꿔먹으며 버티듯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완전히 나가떨어져 링에서 질질 끌려 나가기 전까지 계속 일어나서 얻어맞으라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정말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발붙인 땅들에서 벌어진 끔찍한 역사와 사건들과 그에 따른 분노와 불안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토하기 직전까지 몰려서 쓴 글 말고 좀 진정하고 감정에서 거리를 두고 다른 글을 써보고 싶다. 그렇지만 오늘은, 오늘도 결국 구토를 한다. 일단 이것들을 다 토해낸 다음에야 다른 것을 먹거나 소화시키거나 아무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우울과 분노와 불안에 끝이라는 게 있다면. 만약에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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