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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Aug 30. 2019

100일 글쓰기 마라톤 -3-

공통주제 : 티켓

  A는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의 체중계 화면을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23kg 제한은 너무하다. 겨울 유럽 여행 짐만 싸더라도 23kg는 우습게 넘어버린다. 하물며 A는 최소 6개월 이상 체류를 목적으로 출국하는 길이다. 아무리 삶을 줄이고 축소해도 23kg 안에 삶의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를 쏟아 넣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커다란 항공 우편 소포를 하나 보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더럽게 비싼 항공권 기본 옵션인 23kg 수하물에서 무게가 초과되면 또 더럽게 비싼 추가금을 내야 한다. 그럴 여유는 없었다.


25.4kg


‘망했다.’


A는 절박한 눈으로 항공사 직원을 바라보았다. 직원은 익숙하다는 듯이 ‘돌아오는 티켓은 아직 안 사셨네요. 비자 있으신가요?’ 하고 물었다. 냉큼 출국 날짜 직전에 촉박하게 받은 비자를 내밀자 직원은 비자 유효기간을 확인하고는 ‘어학연수인가요?’ 하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별 말없이 수하물 스티커를 여행 가방 손잡이에 붙인다. 그제야 A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 비행기, 새벽까지 짐을 줄이고 또 줄인 보람이 있었다. 유학생이면 1, 2kg 오버는 보통 넘어가 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이야기를 많이 봐서 초조했던 탓이다. 기내 수하물 가방 무게를 재보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이 직원은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티켓을 발권하고는 파란색 색연필로 출발 게이트와 좌석 번호에 동그라미를 쳐 주었다.


“45번 게이트로 가시면 됩니다.”


A는 고개를 다시 한번 끄덕이고는 티켓을 받아 들고 다시 불러 세울 새라 열심히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인천 공항은 주말, 평일,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북적거린다. 전혀 무겁지 않은 척 멘 가방에도 사실 열심히 짐을 눌러 넣은 탓에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위탁 수하물이 통과된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꼼꼼히 위탁 수하물을 챙길 때 넣으면 안 되는 물건을 몇 번이고 체크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A는 얼른 출국 게이트를 지나서 엑스레이 검사대로 향했다. 어느 줄 할 것 없이 대기가 길었다. 날씨는 초가을에 접어들어서 아침은 제법 쌀쌀했다. 카디건을 입었기 때문에 일단 어깨에서 천근만근 무거운 가방을 내리고, 카디건을 벗어 한쪽 팔에 걸친 뒤 가방을 뒤져 노트북과 태블릿 PC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A는 공항 짐 검사에 항상 겁을 먹는 편이었다. 간이 작은 편이라 면세 담배 개수 넘기는 것에도 겁을 내면서 크게 걸릴 게 뭐가 있다고, 핸드크림 같은 액체류를 꼼꼼히 챙겨 넣은 지퍼백까지 꺼내놓고 A는 허둥지둥 가벼운 몸을 팔랑팔랑 통과했다. A의 커다란 가방과 카디건과 노트북 등등등이 통과하는 엑스레이 상자는 조용했다. 드디어 출국 심사를 전부 마친 것이다. 긴장을 해서 열이 올랐는지 카디건을 다시 입기에는 조금 더웠다. A는 전자기기를 열심히 배낭에 쑤셔 넣고 카디건은 팔에 든 채로 면세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살 건 별 것 없었다.


‘카페인...!’


비행기 탑승 시간은 아직 한 시간도 더 넘게 남아 있다. 탑승 전까지 어디에서 눈을 붙이기도 애매했다. 긴장이 풀렸다고는 하나 A는 원래 장거리 여행 전에 잠을 못 자는 체질이라 몹시 피곤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불편할 정도로 두근거렸고, 혹시라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출국 심사까지 마치고 비행기를 놓치면 그런 황당한 일이 없지 않은가. A는 무거워서 질질 끌리는 다리를 겨우 옮겨 차가운 카페 라테를 테이크 아웃해 받아 들었다. 면세 담배까지 한 보루 사고 나자 더 이상 볼 일은 없었다. 빨대가 전해주는 차가운 카페인에 감사하며 흡연실에서 느긋하게 담배도 한대 피웠다. 공항 흡연실에서는 언제나처럼 지옥 같은 냄새가 났다. 잠깐 머무른 걸로 옷에 냄새가 배이진 않겠지만 면세 향수 코너에서 슬쩍 머리 위로 아무 향수나 뿌려놓고 출발 게이트를 찾아 천천히 걸었다.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게이트 앞에는 한 무더기의 관광객 무리와 바쁘게 노트북을 두들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A가 향하는 도시는 관광지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성수기가 비껴나간 지금도 관광객은 항상 붐비는 모양이었다. A는 자기 몸만 한 배낭을 털썩, 옆자리에 내려놓고 약간 몽롱한 정신으로 주저앉아 다시 한번 티켓을 확인했다.


서울을 떠난다. A는 지금까지 살았던 곳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아침 열한 시. 비행기를 열 시간 정도 탈 테지만 내렸을 때 도착지는 아직 해도 저물지 않은 오후일 것이다. 시차가 나니까. 지금 발붙인 곳과는 다른 시간에서, 전혀 다르게 생긴 도시에서 A는 다시 피곤한 다리를 구슬려 움직여야 할 것이다.


아직은 실감 나지 않았다.


A는 원래 긴 줄이라면 포기하고 제일 마지막에 서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무조건 비행기에 빨리 타고 싶었다. 일부러 창가 자리를 예매한 것도 빨리 타서 기절하듯 잠들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휴대폰 연락처를 훑었지만 연락을 할 곳이 많지는 않았다.


To. 엄마

비행기 타요


짧은 메시지를 전송하고 A는 재빨리 티켓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이코노미 좌석의 의자는 결코 편하지 않겠지만 지금 당장은 다리가 쉴 수 있으면 족했다. 아직은 티켓을 집어넣으면 안 돼. 승무원이 좌석이 어딘지 한 번 더 물어볼 테니까. 짐이 한가득 달린 팔을 불편하게 엉거주춤 움직여 핸드폰과 여권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생각했다.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일은 이다지도, 이다지도 번거롭구먼. A는 간이로 설치된 통로를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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