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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Sep 03. 2019

100일 글쓰기 마라톤 -7-

자유주제 : 오늘 입 털었다 내일 돌아온다

  이것은 사실 딱히 무언가 쓰려고 구성한 주제는 아니다. 어제 마감에 지각한 글쓰기 마라토너님을 놀리는 단톡 방에서 놀리는 흐름에 끼지 않으려고 한 말이었다. 지난 자정 마감 당시, 나는 약 한 달을 미뤄온 원고를 앞두고 미리 마라톤 원고를 먼저 끝내 1등으로 마감한 참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넘게 머리를 싸매게 한 원고를 새벽을 불태워 해내고 나면 필경 내일(어제 기준으로, 즉 오늘.)은 마라톤 원고가 정말 하기 싫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지금 놀림받는 마라토너님을 보며 웃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심경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 입 털었다가 (그 부메랑이) 내일 돌아온다'라고 썼는데, 그 직전에 마침 텐더님이 자유주제 글이지만 주제(제목)는 공유하자는 말씀을 하셨다(다른 마라토너분들은 원고를 했다는 것만 알 수 있게 원고 창 위에 블러를 해 올리신다.). 그래서 내 여섯 번째 원고 제목이 '오늘 입 털었다 내일 돌아온다'라고 생각하신 다른 마라토너 여러분이 강렬한 제목이라고 평하셨고 내친김에 '내일은 그럼 그걸로 쓰죠 뭐!' 해버린 것이다…. 입을 함부로 털지 말자. 어제의 주제인 <구여친 클럽>은 꽤 야심 차게 결정한 거였고 강렬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묻혀서 조금 슬프다. 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일 내가 지각자가 될 것 같다는 예감 또한 현실이 되어 지금은 오후 11시 18분인데 나는 이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어제 함부로 입을 털었다가 오늘 부메랑을 맞는 일이야 사실 누구나 했을 법한 경험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도 그런 종류의 일이다. '입조심'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해 온갖 끔찍한 서사를 동반해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널리고 널린 주제지만. 이를테면 <올드보이>가 있었다. 원작이라는 만화는 읽은 적이 없고 박찬욱의 영화는 봤다. 입을 한 번 잘못 놀린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 당해 어딘지 알 수 없고 텔레비전만이 유일한 사회와의 소통 매체인 방에 갇혀 군만두만 먹는 신세가 된다. 복수를 다짐한 주인공은 방 안에서 홈트레이닝으로 무술의 고수가 된다. 가능한 일일까? 홈트레이닝은 나쁘지 않은 운동이지만 부상이나 자세를 교정해줄 전문가도 없이 혼자 운동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근데 주인공은 다치거나 아팠던 적이 없었나? 자연 치유된 거였나? 모르겠다. 아무튼 군만두만 먹고도 몸짱이 된 주인공은 당장 건강검진을 받지도 않고 생낙지를 먹다가 만난 일식집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스포일러 주의) 이 젊은 여자는 주인공의 잘못된 혀 간수로 누나를 잃은 납치범의 계략의 핵심이었다. 바로 주인공이 납치 당해 어렸을 때 밖에 보지 못한 주인공 본인의 딸이었던 것이다. 근친상간의 비밀을 털고 다닌 자 근친상간하라, 뭐 이런 복수였던 것이다. 딸 뻘이고 가족 없이 혈혈단신의 젊은 여자를 보고 발기한 주인공이 미친놈이다. 딸과 그 어머니는 무슨 죄지? 아무튼 불쾌한 영화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어린 여자를 보고 발기한 주인공에 대한 혐오보다도 딱 한 번 말을 잘못해 온 인생을 통째로 말아먹는다는 내용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사람이 입조심하고 살아야겠다, 라는 교훈도 얻었다. 물론 여기 등장한 남자들이 다 나쁜 놈들이지만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이 분명 있으니 여전히 새겨 마땅한 교훈이기는 하다.

  웹툰 <신과 함께>에는 입조심을 잘못 못한 자들이 가는 지옥이 나오는데, 이 지옥에서는 염라대왕의 명으로 혀를 길게 늘여 거기에 밭을 간다. 엄청나게 기상천외하지만 분명히 아플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지옥이 있다면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떠들썩하게 이혼을 한다며 수작질을 부린 남자 연예인을 신나게 욕했다. 입으로 한 건 아니니까 손가락을 늘려야 하는 건가. 아무튼 이것도 굉장히 본능적으로 공포를 연상하게 해 입 간수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매일 마감을 하면서 최대한 글을 일기처럼 쓰지 않게 하자는 다짐을 나누었지만 오늘은 정말로 글을 쓰기 위해 뇌를 가동하기에는 너무 피곤하기에 이렇게 아무 말을 쓰게 되었다. 괜히 분량 생각해서 더 길게 쓰면 오히려 더 망할 것 같으니 그럼 이만. 책이라도 읽으며 내일은 더 멋진 주제를 가져올 수 있기를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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