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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Oct 22. 2019

글쓰기 마라톤 - n2

공통주제 : 키워드로 이야기 만들기

발 엽서 커피 술 뒷걸음질 틈



사후세계.


시영은 그런 것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죽으면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겪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이른 편이기도 했다. 시영은 크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한 편이었고, 주변 사람들도 무난한 삶의 궤도를 따라 살았다. 아주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그 외에 주변인의 죽음을 겪은 적도 없었다. 죽었다, 고 생각한 지금에도 시영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쪽팔렸는지에 가장 먼저 신경이 쏠렸다.



-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고, 오래된 신화도 있지 않나?


낯선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 때였다. 목소리라고 하는 게 옳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시영의 머릿속에 음성신호로 입력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았다. 시영은 그것을 들렸다고 생각했지만, 읽었다보다 들렸다에 가까운 감각이었을 뿐, 그 목소리에 대해 목소리가 말한 내용 외에 어떤 정보도 없었다. 시영은 실질적으로 가수면 상태에 빠진 것처럼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 사이 틈을 비집고 삐져나오는 사고를 불연속적으로 이어갈 뿐이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마지막 순간의 죽겠다, 라는 선명한 느낌 뿐이었다.


그제서야 시영은 죽음 이후에 대해 유구하게 인류가 골몰해온 많은 이야기들을 듬성듬성 떠올렸다. 선악의 판단을 한 후 보내지는 곳이라든가, 생전에 대한 판결이라든가, 절대자라든가. 이 목소리는 그런 개념에 가까운 어떤 것일까. 목소리는 질문에 가까운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그게 시영에게 묻는 말인지,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에 시영의 의식 바깥에서 온 것이기는 할까? 대답을 할 수는 있는 걸까?


- 느긋한 편이구나. 그리고 살면서 ‘이 부분’에 대한 상상은 많이 하지 않았나봐. 아주 깔끔해. 이런 편이 오히려 편하지.


목소리는 시영의 의식 이곳 저곳을 품평하듯이, 둘러보듯이 말하는 것 같았다. 시영은 혼란스러웠지만 어쩐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잠든 중에 꿈이라는 걸 인지한 후에도 의식이 마음대로 지배되지 않듯, 시영의 의식은 마구잡이로 아무 방향으로나 뻗어나가 이 생경한 감각에 오롯이 머무르려 하지 않았다.


- 그래. ‘꿈’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꽤 본질적일 수 있겠지. 하지만 이런 상태면 더 진행하기는 좀 어렵겠는 걸. ‘여기’ 말고 ‘너’에게 좀 더 집중해 봐.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감각이 돌아오도록 해보아라.


영문을 알 수 없는 건 그대로였지만 시영은 사람들이 말하던 절대자가 이런 목소리라면 생각보다 두렵거나 절대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사고의 흐름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자 점차 의식을 제어하기가 수월해졌다. 시영은 평소에 의식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몸을 하나하나 감각하는 데에 집중했다. 발끝까지, 거기에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쯤 있었다고 짐작하며 감각하고 나자 시영은 정신이 또렷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시영은 무언가 보거나 만지거나 들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흐린 필터를 끼운 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느릿하고 불성실하게 생겨나는 것에 가까웠다.


눈 앞의 풍경은 병원의 진료실 같았다. 동네 내과보다는 번화가의 세련되고 신경써 인테리어를 꾸민듯한 그런 전문의 진료실 같은... 두꺼운 책장이 있고, 멀끔한 책상과 푹신한 의자 같은 것들이 놓인 좁지도 크지 않은 방. 거기에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 아주 현대적인 감각인걸. 이런, 나는 그래도 중년 남자인가? 지겨운데.


목소리는 어느새 ‘중년 남자’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 주인은 책상 뒤편에 앉아있었다. 평범하고 조금 고지식하게 생긴 의사처럼 보였다.


“여기는...”


가까스로 시영이 입을 열었다. 공간과 목소리의 주인이 점차 또렷해질 수록 시영은 거의 평소처럼 움직이고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여기는, 틈입니다.


“틈이요?”


- 틈새죠. 시영씨는 술에 취해 전 남자친구와의 사진을 sns에 올리고 낯간지러운 말을 남긴 후, 라이브 방송을 키고 걷다가 찻길에서 발을 헛디뎌 죽었습니다. 기억하시죠?


“....... 네.”


꿈은 아니군. 이미 죽었다는 판정을 들은 셈인데 죽고 싶어졌다.


- 발을 헛디뎌 떨어진 공간, 그 틈새. 이렇게 말하면 될까요?


“그러니까... 사후세계 뭐 그런건가요?”


- 여기는 ‘세계’는 아니죠. 그 무수한 ‘세계’의 상상들과도 별로 가까운 공간은, 아닌 것 같군요.


그의 진료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익숙한 듯 처음 보는 듯 공간을 여기저기 살피며 말했다.


- 종교적인 신앙심이 있는 사람들은 진료실을 떠올리지는 않죠. 종교적인 상상이 오래되고 흔한 편이고. 시영씨는, 흠. 정신분석과 관련된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그는 오래된 고전 심리학자인 누군가를 닮은 듯도 해보였다.


- 아, 싫은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그의 외형이 언뜻 시영이 떠올린 책의 표지 속 인물에 좀 더 가까워졌다.


“그러니까... 제가 상상하는 대로 변하시는 건가요? 여기도?”


- 그렇게까지 마음대로 되지는 않고요. 하지만 어느 정도 시영씨의 사고가 제한을 걸기는 하죠.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이렇게 권위적인 인물에 가까워지고, 그런 말투를 사용하게 되는 것도.


“왜... 여기서 뭘 하는 건데요?”


- 그건, 어디 봅시다. 작가가 여기까지만 생각했다고 하니 나로서도 아직 확답을 주기는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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