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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Mar 31. 2019

요가 1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작년 거의 박해 수준의 추위와 달리 올해 포근한 겨울이 지나갔다. 내가 요가를 시작한 계기는 추위와 5~6여 년 전에 시작된 목의 통증 때문(덕분?)이다. 규모가 꽤 큰 한방병원에서 사진을 찍고 추나요법, 물리치료 등의 꾸준한 치료 덕분에 어느 정도 버틸만하다 다시 몇 년 전부터 통증이 목에서 어깨로 이동되어 또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이번엔 치료의 차도가 보이지 않아 지방의 한 병원(그러고 보니 병원의 위치는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으로 옮기게 되었고, 한두 달에 한번 KTX를 타고 내려가 진료를 받았다. 명의라는 플라세보 효과인지는 몰라도 과잉진료 없이 친절한 설명 덕에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 치료에 매진하였다. 소위 명의라고 불리는 의사들의 치료 설명에는 운동치료사 못지않은 운동 용어를 꿰차고 있고, 직접 환자 앞에서 Blance Exercise를 시연할 정도로 열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의사의 역할은 거기까지, 여전히 사라질 듯 말듯한 통증은 환자의 몫이다. 꾸준한 치료 속에서도 체념이든 포용이든 완벽한 완치는 없다는 중립적인 시각이 뇌리에 인식될 무렵 요가를 만났다. 예전 막연히 하고 싶은 운동은 몇 가지 있었다. 수영, 골프, 테니스 그리고 요가 정도인데 차일피일 미루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근접성이 어려운 요가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편측 운동인 골프나 테니스는 물 건너갔고 이제 수영 정도가 나의 버킷 운동 리스트로 남게 되었다. 지난봄 어느 날 우연찮게 남성반 One Day Class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평소 같으면 생각만 하고 있다 잊히는데, 그날은 무슨 용기인지 전화로 문의하니 마침 내일 수련이 있으니 와보시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요가에 합류하게 되었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처음 요가를 시작한 한두 달은 따라 하기 바빴다. 집에 와서 생각나는 동작이 거의 없었다. 호흡으로 동작을 늘이라는 선생님 말씀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고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게 솔직한 표현이다. 명상-호흡-동작의 삼위일체는 아직도 버겁다. 복장은 어떻게 하지? 개인 매트가 있어야 하나? 비용은 적당 한 것인가? 초기의 잡념이 지나간 후, 다치지 않을까? 이동작이 나한테 맞는 건가? 요가는 유산소만 있고 근력운동은 없나? 또다시 번뇌가 지나가고 이런저런 잡생각에서 벗어나 오로지 평정심으로 수련에 몰입하다 보면 온전한 자신만의 요가를 만나게 된다.


무엇이든 처음 하는 것은 낯설고 적응하는 동안 어려움이 있다. 비록 1년이지만 꾸준히 요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다른 요가 선생님에게 배워보지 못해 비교할 수 없지만, 선생님에게 요가는 인생 그 자체인듯하다. 하고 싶은 일은 찾아지는 게 아니라, 찾아온다고 했는데, 선생님에게 요가가 그렇게 찾아졌든 찾아왔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처음 요가를 배우러 가서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입장에서, 요가를 하고 나서 동작의 의문점이나 느낌의 수련 일지를 일방통행식으로 전달했다. 무례하거나 귀찮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들 때마다 다행히 선생님은 일일이 정성스럽게 답변을 주셨고 요가의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히 이끌어 주셨다.

선생님이 처음으로 내게 책을 추천하셨다. 관심이 가는 대상에는 무엇인가 찾게 되고 배움을 갈망하게 된다.

나의 주된 탐독 대상은 활자이다. 그러고 보면 요가 용어는 낯설고 어려워서 한 번쯤 서적을 찾아 읽어볼 만도 한데 아직 제대로 된 탐독을 하지 않았다. 요가의 이론이 학문 수준이라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 시도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요가의 입문이 통증에서 기인된 것이라 이론을 쏙 뺀 동작만 배우고 결실 없는 노력에 만족하겠다는 것인가 의문을 가졌으나, 통증이 없던 시설 막연한 운동 리스트 중엔 엄연히 요가가 있었던 점을 보면, 둘 다 아닌 것 같다. 결국 요가는 나에게 가히 폭발적인 열성의 대상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은 치유가 목적이지 병원이란 장소가 feel을 받아,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병에 대해 알아가고 연구해서 극복해 가는 것이 환자의 개별적 소임이듯이, 그 열성의 흐름에 변화를 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처음엔 좋아했던 것이 이제 싫증 날 수도 있고 처음에 별로였던 것이 점차 좋아질 수도 있다.

병원에 가면 동작 테스트 후 호전 상태를 파악하고 초음파로 검진 후 주사치료 진행 등 일련의 의료행위가 전(前)자라면, 협진의 제2진료과가 내 마음이라는 의식이 후(後)자인 것이다. 그래서 후자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다음의 것을 의식 속에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첫째, 인지 부조화, 즉 동작은 되는데 아프다는 것, 동작이 되는 것은 호전을 의미하고 아프다는 것은 호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애매모호한 이 부조화를 용이하게 합리화하는 방법은 되는 동작의 호전에 비중을 두고 여전한 통증을 위로하는 것이다.

둘째는 반 취약성, 가혹한 상황에서 오히려 이윤이나 상황이 개선되는 현상인 안티프래질(anti-fragile), 즉 우리의 몸은 낮은 스트레스와 자극에 오히려 더 건강해지려는 몸의 건강성을 따르는 것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안, 걱정, 무기력, 지루함의 낮은 능력 수준보다는 안정, 몰입, 자신감의 높은 능력의 수준을 지향하려는 몸의 본성에 충실이 이행하는 것이다.


'요가를 하는데 마음의 장애가 없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책을 권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세 번째로 언급한 불안, 걱정, 무기력 등은 밥벌이처 곳곳에 도사리는 심리적 통증의 근원이다. 통증으로 시작한 요가이지만, 어느덧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는 통증과 더불어, 마음 언저리 틈 사이로 솟아오르는 보이지 않는 통증의 치유로서 나의 요가는 진행 중이다.

먼저 가본 사람만이 손을 내밀수 있고, 내민 손을 잡을지 말 지는 오로지 가고자 하는 사람의 몫이다.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다 본 것 같다.


수련에 몰입하다 보면 땀을 한 바가지로 흘리게 된다. 땀을 흘려야 정신이 맑아진다.

여름이 기다려진다.


-2019년 03월 31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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