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I don’t wanna die without any scar
검은 옷을 입은 그녀를 만난 건 냄비 뚜껑에서 비롯되었다.
‘토마토가 어느 정도 물러졌을 때, 달걀을 넣어야 할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그날 저녁, 덮밥을 포장하러 가던 길에 <특란 세일> 문구에 이끌려 식자재마트로 발을 돌린 순간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달걀 6알로 무얼 만들지 고민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토마토볶음밥이 눈앞에 그려졌다. 시큼짭짜름한 그 맛을 상상하니까 단번에 침이 고였다. 채소 코너로 가서 확인한 토마토 가격, 망할, 너무 비쌌다. 하지만 이미 메뉴는 무조건 계토볶으로 결정된 후였다.
- 다 해서 9,800원입니다.
계산을 마치자 곧바로 통장잔고 알림이 울렸다. 역시 4,500원짜리 덮밥이 나았으려나…. 법대 후문 반지하방에 가까워질수록 계토볶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오늘의 난 엉망인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이 메뉴를 고른 게 잘못된 선택이 되고 만다면 눈물 한 방울 퍽 옹색하게 고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손에 쥔 패는 몇 개 없는데 졸업학기는 시작되었고, 가능한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져가고 있었다. 한동안 네다섯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며 전전긍긍, 빠듯한 일정 속에 살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내게 남은 건 무엇이지?’ 하는 공허함과 ‘그래서 나는 무엇을 이루어 가고 있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캠퍼스를 갈으면서도 문득 조급해지는 시간의 연속이었고 정말이지 그래서, 계토볶은 맛있어야 했다.
한 번도 계토볶을 직접 만든 적은 없어서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레시피를 찾았다. 토마토를 볶으면서도 계속 달걀을 넣을 최상의 타이밍을 검색했다. 블로그 하나를 들어가며 냄비 뚜껑은 잠시 개수대 모서리에 올렸다. 엄마가 봤더라면 분명 한 마디 했을 법한 자리였다.
‘아? 이거 좀 위험한데?’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찍혔을 땐 돌이킬 수 없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냄비 뚜껑은 산산조각이 났다. 유리파편은 한 칸짜리 방바닥을 온통 뒤덮었다. 그중 엄지손톱만한 조각 하나가 왼쪽 발등에 꽂혔다. 너무도 똑바르게 꽂힌 탓에 조심히 일자로 뽑아내면 아무 일 없을 것 같았지만, 착각은 자유였고, 곧이어 바닥은 흐르는 피로 흥건해졌다. 생각보다 심한 상처를 닦아내다 별안간 화가 치밀었다. 왜 이 모양이냐, 이것도 못 하냐, 얌전히 덮밥이나 먹었으면 좋을 걸 무슨 계토볶을 해먹겠다고 설쳐 가지고…. 씩씩거리는 것도 오래지 않아 그저 낮은 한숨을 뱉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맛도 식감도 엉성하게 완성된 게토볶을 입에 욱여넣고서 몸을 뉘었다.
다음 날 학교를 가기 전, 상처를 꿰매러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가 말했다.
“유리 파편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네요?”
“네? 뭐가 있긴 한가요?”
“아니, 사진을 보면 여기 이거 보이죠? 뭔가 보이긴 하는데…, 이게 유리인지는 모르겠어요.”
설마 유리가 박힌 채로 꿰맨 거냐고 되물었지만, 의사는 꿰맬 때 한번 보긴 했다며 걱정 말고 기다려보랬다. 하지만 며칠 시간이 지나도 상처 부위의 이물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밥을 푸른 뒤에도 환부에 자극이 가면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는 느낌이었고, 이따금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다른 병원에서 재차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그곳에서도 어렴풋하게 뭔가 보이긴 하나 확인하려면 다시 상처를 째야 하고, 만약 유리파편이라면 더 큰 통증이 나타날 테니 지켜보자고 했다. 미상의 조각은 그렇게 내 몸에 남았다. 언젠가 그것이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망칠 것 같았다.
계토볶과 냄비 뚜껑, 알 수 없는 유리조각은 친구 J에게 전해지며 그녀로 이어진다. 우연히 캠퍼스에서 J에게 마주친 날, 심란한 졸업예정생의 에피소드를 몇 개 풀었고 한 꼬집의 해학을 더해 계토볶 사건을 얘기했다. 내 입이 더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한 J는 한 가지를 제안했다.
“혹시 요즘 너무 생각이 복잡하면, 내가 예전에 도움을 받은 선생님 한 분 만나볼래?”
컨설팅 같은 거라 짐작했다. 그때의 난 무수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중이라고 믿었지만, 사방으로 장력이 작용한다면 그건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조금 자각한 시기였다. 누군가의 조언이 간절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J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J는 그날 이후 3-4일 간격으로 그 ‘선생님’과의 연락 상황을 공유해줬다. 괜한 부담을 준 건가 싶었지만 J는 자신이 메신저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게 도리어 좋을 뿐이라고 했다. 선생님이라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연락처나 직업 같은 것도 전달받지 못한 채로 J의 문자만 기다리고 있자 조금 불안이 일기도 했다. 이거 이상한 거 아냐? 하지만 가능한 시간을 ‘긴박하게’ 알아보고 있다는 J의 메시지를 보며 이 무해한 친구의 노력을 폄하하지 말자 다짐했다. 만남은 성사될 뻔하다 어그러지길 반복했고, 난 점점 더 절실히 선생님을 기다리게 되었다. 눈 코 뜰 새 없이 많은 곳의 부름을 받는 선생님을 만날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조급함이 일었다. 마침내 학동역 어느 카페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땐, 조금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약속 당일, 어떤 것들을 준비해 가야할지 묻자 J는 ‘편안하게 진심을 말하면 돼’라며 본인도 동행함을 알려줬다. 그 자리까지 나온다는 J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커져갔고, 이 자리가 끝나고 나면 도움 여부를 떠나 J에게 꼭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름대로 그간의 활동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 페이지로 정리한 걸 가지고 카페에 들어섰다. 1층 가득 고소한 빵 냄새가 풍겼고 2층을 향해 한 칸씩 계단을 오를 때마다 긴장이 더해졌다. 이윽고 2층 구석 창가 자리에서 손을 흔드는 J가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을 만났다. 설겁게 쪽진 머리를 한 선생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앞니를 보이지 않은 채로 웃으며 그녀는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특별한 행동이나 말없이도 일종의 위압감을 형성하고 있었고, 거기에는 유독 검은 눈동자가 한몫했다.
‘아, 혹시 이거 좀…, 잘못 온 건가?’
약속을 조율하며 설마 싶었던 쎄함이 거세지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J에 대한 의심과 실망감이 차올랐다. 머릿속 스치는 상상이 맞다면 꽤 좋아했던 친구를 잃겠구나. 상황을 관망하다 최대한 빨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과 ‘내게 진짜 필요한 자리일 수 있다’는 한 스푼의 기대를 부여잡은 채 착석했다.
그녀는 지금 기업 교육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종종 이것처럼 개인 코칭도 병행한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원래 이런 코칭은 시간당 페이가 매우 높으며 J가 나를 좋게 말해준 까닭에 특별히 어렵게 시간을 냈다는 그녀의 농담은,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왜 나를 찾았는지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볼까?”
그녀의 물음에 난 입을 열었다. 부지런히 살아온 시간과 그것들이 낟알로 흩어지는 느낌에 대하여, 그리고 실패한 계토볶이 안겨준 서러움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취업준비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불안을 그녀가 알아주길 바라며 준비해온 노트를 꺼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진단을 부탁드리며 앞으로 어떤 부분을 채우는 게 중요할지 조언을 구했다. 알 듯 말 듯한 미소한 짓고 있던 그녀는 짙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금의 버거움에 대해 답을 얻고, 그 다음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야기보다 조금은 본질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정말로 네가 어떤 사람이고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게 뭐지?’ 순간 당황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동했다. 그러게. 나는 어디서부터 왔고 그래서 무얼 하며 밥을 벌고 시간을 쓰며 살아갈 인물인가. 그녀의 얘기가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몇 개월 뒤, 어느 면접장에서 ‘본인을 한 문장으로 정의 내린다면?’이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아픔에 민감한 사람’이라 답했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그 말 덕분에 나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 무렵 나는 자신을 잘 몰랐고, 어떠한 기준 같은 것들 또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도와줄게.”
그녀는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 도움이라는 단어에서 처음 이 만남을 통해 얻고자 했던 진로나 취업 같은 얘기와는 결이 다른 자리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어쩌면 내겐 정말로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난 그녀의 말처럼 본질적인 이야기를 위해 조금씩 과거로, 과거의 나로, 거슬러 올라갔다. 영화와 소설, 세상의 어느 그림자 속 이야기. 닿지 못한 말 한마디에 주목하며 자주 그 주변을 맴돌게 된 계기. 국문과 진학을 결심한 날과 다채롭던 학창 시절의 꿈과 해프닝들, 그리고 어렸던 시절 일어난 어느 가해와 피해까지도.
그녀가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어서였을까. 오히려 친한 이들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던, 굳이 꺼내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냈다. 중간중간 어물쩍 넘어가려던 이야기를 캐묻거나 회피한 문장을 콕 집어 그녀는 질문을 건넸다. 꽤 많은 이야기를 단시간에 꺼냈다는 게 나도 잘 이해되진 않는다. 형용하기 어려운 그녀의 말투나 눈빛이 이끌어 낸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녀는 실력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와의 대화 끝무렵에 난 그녀가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네 이야기를 해줘서 정말 고마워. 얘기 듣던 것처럼 또렷하고 특별한 애구나.”
특별이라는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그땐 개의치 않았다. 자연스레 다음 만남을 기약했고 그 자리에 J는 오지 않기로 했다. 스케줄 조율 후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말하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네가 선생님을 만나서, 선생님이 너를 도와주겠다고 하셔서 정말 다행이야."
선생님과 잠시 얘기할 게 남았다며 인사를 건네면서 J는 싱긋 웃었다. 좋은 분을 소개해줘 고맙다고, 조만간 맛있는 밥을 먹자고 화답했다.
얼마 뒤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다. 과제 하나와 만날 장소/일시가 적혀 있었다. 과제는 지금까지의 삶을 복기해 보라는 미션이었다. 약속한 날을 기다리며 나는 착실하게 A4 용지 한가득 내용을 채웠다. 어쩌면 반복되던 갈등과 고민의 상당 부분을 그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약속의 날, 남성역 근처 한 스터디카페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이런 곳에도 스터디카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골목을 지나 도착한 스터디카페는 아주 좁고 어두웠다. 환기와 채광, 조도마저 스터디카페라는 이름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그녀의 이름을 대자 카운터의 아르바이트생은 C룸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C룸은 2인실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폭이 좁은 방이었다. 상대방의 입김이 얼굴에 닿을 것 같았다 C룸에서 유일하게 빛이 드는 구멍은 천장 가까이에 붙어있는 작은 창문 하나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지난번과 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채로 빙긋 웃으며 들어왔을 땐 조금 숨이 막혔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검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가 부탁했다.
“불은 잠시 끌까? 어차피 창문으로 빛이 드니까.”
차라리 단호하고 무서운 말투였다면 반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녀의 목소리가 한없이 부드러워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냐고 재차 묻는 그녀의 눈은 어느새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은 방이었던 탓일까. 세 뼘 남짓한 거리에서 바라본 그녀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다 보면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로 함께 뛰어들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지난번에 내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판단이 섰고, 시간이 부족한 와중에도 ‘아무 대가 없이, 그것도 무료로' 나를 만나러 온 건 애정이 필요하다는 걸 그녀는 넌지시 어필했다. 내가 준비한 A4 용지 속 삶의 조각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던 그녀가 입을 떼서 말하기 시작한 건 본인의 삶이었다. 그동안 마주했던 버거움과 장애물, 고군분투했던 시간들과 불현듯 찾아온 각성의 순간까지.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애기처럼 잘 울지도 않았고, 딱히 무언가를 갖고 싶어 떼를 쓴 적도 없으며, 시답잖은 놀이를 하자며 웃는 아이들을 보면 어떤 환멸감마저 들었다고. 끔찍했던 어떤 하루에는 비웃음 섞인 시선에 더해진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마치 도로 위 오토바이나 웅성이는 소떼 무리의 그것과 다름없이 들렸다고. 그 순간 못 견디게 괴롭고 정말 버틸 수 없었다는 그녀의 묘사는 진실돼 보였다. 이야기가 지닌 열기에 비좁던 C룸은 더욱더 후텁지근해졌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타인들. 그 안에서 끊임없이 다투고 분주하게 움직였을 그녀의 각성은 스스로를 남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이외의 존재와 선을 그으며 이루어졌다.
“나는 우리가 비슷하다고 생각해. 남들과 조금 다른, 그래서 특별한."
그녀가 말했다. 난 느닷없고 불편했으며 다소 생략된 부분이 많은 것 같던 그녀의 이야기를 더 캐묻진 않았다. 다만, 그 안에 얽혀있는 어떤 감정의 부침이나 불편한 힘에 대한 민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일부 비슷한 면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도달한 다름을, 아니 특별함을 긍정하기는 어려웠다.
"난 너와 조금 더 오래 보면서 너의 다름과 특별함을 키워주고 싶어. 물론 이대로 네가 멈추고 싶다면 괜찮아. 평범한 사람이 되어 이름 없는 누군가에 섞여 살아가겠지. 널 이해하지 못하거나 네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속에 조금 힘이 들 테고.“
그녀의 목소리에서 꽤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홀로 외롭게 투쟁했을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어떤 관계들이 유추되었고, 쉽사리 그것들을 떠올리는 나에게도 놀랐다.
"난 다치기 싫었고, 배제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매일 도망치는 기분이었어."
잠시 숨을 멈추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도 그런 기분을 알 것 같지 않으냐고.
초등학교 입학 전, 또래 아이들과 놀면서 내 운동능력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같은 팀이 된 아이들은 싫은 티를 숨기지 않았고 자연스레 종종 혼자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어느 동네든 흔히 있을 일이었고, 차라리 뻔뻔했더라면 오히려 더 가열차게 공을 차고 소리나 질렀을 텐데. 난 배짱이 부족했다. 사실 운동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나는 꽤나 많은 부분에서 조금 독특한 특질을 가진 애였다. 돌연변이 같은 형질을 들키고 싶지 않아 가만히 앉아 책이나 영화 보는 걸 더 좋아하기 시작했고, 솔직히 성향에도 퍽 잘 맞았다. 초등학교 입학 후 쉬는 시간이면 학급문고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그중 하나는 어떤 공주의 이야기였다.
그 책장을 넘기지 말았어야 했나, 여러 번 생각했다. 지금보다 성에 따른 역할이나 행동의 구분이 더 심했던 시기였던 탓일까. 허옇고 조용하던 남자애가 어떤 공주 이야기를 읽은 행위는 꽤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상하게 변주되고 각색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남을 놀리고 괴롭히는 걸로 웃음을 만들던 몇몇은 조금씩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지우개를 잘라 던지는 것에서, 날카로운 물체로 맞추는 것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등에 커터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이어졌다. 선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아프게 체득했다.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한 채로 몰래 저금통을 뜯었다. 피아노학원에 가기 전 점심을 먹지 않고 용돈을 모았다. 피로 물든 하얀 내의를 하천변 BYC에서 산 새것으로 갈아입던 수차례의 하굣길은 아직도 어지럽다. 그녀가 말한 그런 기분이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녹지 않는 잔여물처럼 내 몸 곳곳에 남아있다. 누군가 그때의 기억을 건드릴 때면 숨이 잠시 가빠오기도, 가슴부터 목까지 붉은 얼룩이 생기기도 한다. 재현된 기억에 어두운 방 안의 기묘한 열감은 도무지 옅어지지 않았다.
"난 네가 다치지 않으면서도 너를, 너의 특별함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싶어."
다시 돌아간다면 한 번쯤은 나의 무엇이 그렇게 특별했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나를 돕겠다는 건지도. 모든 존재는 다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고유함과 특별함을 헷갈려서는 안 된다고. 본래부터 가지고 있어 특유하다는 뜻의 고유함과 보통과 구별되게 다르다는 뜻의 특별함. 그녀가 자신의 삶을 지켜온 방식, 내게서 애정과 동질감을 느낀 이유는 곧 특별함이었다. 대답을 구하는 듯 뚫어지게 날 바라보는 그녀에게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날 괴롭히던 갈등과 불안이 그녀가 말한 특별함의 보존으로 해소될까. 내가 그녀를 만나러 온 까닭이 이건 아닌데, 왜 난 주저하나. 난 특별한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나. 나의 독특한 특질을 고유하다가 아닌 특별하다로 말할 수 있나. 온갖 생각이 엉켰고, 그녀는 그걸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강 시간이 곧 끝나므로 다시 학교로 가야겠다고 말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 그런데 말야, 혹시 달걀이 어떻게 부화하는지 아니? 달걀이 알을 깨고 닭이 되기 위해서는 기적이 필요해. 알 속 병아리가 제대로 된 생명체가 되도록 돕는, 조금도 이르거나 늦지 않은 타이밍이. 알 속 병아리는 혼자만의 힘으로 알을 깨뜨리고 나오기엔 너무 약하거든. 안쪽에서 그 작은 부리로 알을 깨고자 하는 순간, 바깥에서 어미닭이 콕- 찍어서 함께 알을 깨뜨려줘야만 세상 밖으로 무사히 나올 수 있어.”
그녀가 말을 이었다.
“때를 놓치면 병아리는 알 속에서 발버둥 치다 죽어. 반대로 병아리가 아직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미닭이 너무 일찍 바깥에서 쪼아버리면, 또 그 병아리는 그대로 흘러내려 죽지. 그래서 아주 정확하고 절묘한 타이밍이 필요해.”
그녀가 일어섰다.
“그래서 난 너를 재촉하고 싶지 않아."
그녀가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너, 내가 필요할 것 같지 않니?"
나는 그 만남을 끝으로 더 이상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독특한 범주의 사람, 또는 위험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라 짐작했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아직도 그녀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부침을 겪으며 자아고찰을 거듭한 진짜 멘토였을 수도, 아니면 얘기를 듣자마자 혀를 내두르던 친구의 추측처럼 요주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두 차례 만남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기회가 되면 다시 뵙자는 내 문자에 그녀는 아무 회신을 하지 않았다. 의문은 남았지만, 그녀의 정체나 의도는 중요치 않게 된 후였다. 유리조각이 박힌 날 계토볶이 내겐 중요한 일이 되었던 것처럼, 그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서울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그런 일이 되었다.
C룸에서 빠져나와 지하철 개찰구로 들어간 순간까지 수만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문제에서 촉발된 불안을 집어던지고 싶었고, 그녀와의 만남에 재차 열상을 입은 기억이 그녀가 필요하다고 종용하는 것 같았다. 발이 닿지 않는 수심의 못에 빠진 사람처럼 종종 삶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자꾸만 떠올랐다. 아주 솔직히는 특별함을 말해주는 그녀에 기대 두 눈을 가린 채 구원을 바라고 싶기도 했다.
열차에 몸을 싣자 일상의 작은 소음들이 귓가를 때렸다. 멍하니 그녀의 말과 눈빛을 곱씹으며 맞은 자리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둠 가운데 멀건 내 얼굴이 보이다- 지상으로 올라오는 열차에 연녹색 잎이 보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가 보이다- 꽉 막힌 도로 위의 차들이 보였다. 저 멀리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타워까지 눈에 들어왔다. 창 안으로 쏟아지는 세상의 움직임에 무언가 목에 걸렸다. 내내 곱씹던 그녀의 말들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아니었다. 그녀가 연거푸 얘기한 특별함의 발견과 보존은 내가 앓던 문제들과는 정말이지 무관한 것이었다.
살아오며 해결하고 싶었던,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특별함이 인정받거나 보호받지 못해서 빚어진 것들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엔 함께 공을 차거나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누지 못해서 힘들었다. 이후에는 그럴 수 있는 마음과 여유를 잃은 사람이 되어버릴까봐 무서웠다. 업에 대한 고민의 기저에도 '보편적인, 하지만 숭고한 노력이 뒤따르는' 일상을 영유할 가능성을 갖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그렇게 대체로 나의 슬픔과 불안은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무수히 많은 보통의 문제를 헤쳐나가며 때론 상처받고 때론 고통스럽겠지만, 선을 긋고 특별한 존재를 나를 규정하며 그것을 피하고 싶진 않았다. 나의 고유함을 지키면서도 제대로 삶을 살아낸 사람이 되는 것에 그녀가 강조하던 특별함은 필요치 않았다. 창을 통해 쏟아진 햇살 같은 삶의 단면 덕분에 생각을 정리한 순간, 그렇게 되었다.
달걀이 알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두 개의 부리가 부딪히는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건 그녀와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열차가 학교 앞 지하철역에 다다랐다. 이름 모를 이들의 뒷모습과 함께 줄을 이뤄 캠퍼스 안으로 가는 계단에 올랐다. 여전한 발의 통증이 느껴졌다. 멈추지 않고 걸음을 디뎠다. 어디선가 껍데기에 작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Fin.
From the W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