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tipode Nov 10. 2022

104동 아지트 건설 작전

[West] 어디서도 아늑하고 평화로운 장소는 절대로 찾을 수 없다는 것

104동 아지트 건설 작전



예닐곱의 나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시간이 되면 거실 소파 앞에 앉아 채널 7번을 틀었다. 저녁거리를 하나씩 꺼내어 손질하는 어머니의 칼질 소리가 집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걸 들으며, 아직 집에 오지 않은 아버지를 매일 다른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 무렵 지상파에서는 <원피스>나 <탑블레이드> 같은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는데, <디지몬 어드벤처>는 그중 하나였다. 이른바 ‘104동 아지트 건설 작전’은 바로 이 디지몬에서 촉발되었다. 세상을 구하겠다며 숱한 싸움을 반복하던 주인공에게 또 하나의 지독한 시련이 닥친 에피소드가 있다. 작은 체구의 주인공은 뒷산 어느 동굴에 몸을 숨긴 채 고독한 하룻밤을 보낸다. 거센 비가 세상을 모두 흘려보낼 듯이 내리는 동안 동굴 안에선 회복이 이루어진다. 아주 안전하고 평화로운 비밀의 공간. 비바람뿐 아니라 자기 존재를 공격하는 무수한 적으로부터 피한 그는 비밀의 공간에 몸을 숨긴다. 어떤 서글픔이나 불안으로부터 혹은 그러한 감정을 초래한 사람들에게서 종종 도망치고 싶었던 내게, 디지몬 세상 속 아지트는 하나의 커다란 로망으로 각인되었다. 나를 감춘 채 조용히 숨을 쉴 수 있는 장소. 나만의 아늑한 그곳을 찾고 싶었다.


형을 찾는 초인종 소리가 울린 날, 평소 같지 않게 우리형의 등 뒤를 따라나섰다. 쫄래쫄래 따라 나온 나를 의아하게, 못마땅히 여기는 몇몇의 표정을 읽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아파트 곳곳을 누비며 한바탕 놀고 난 뒤, 입술을 검붉게 물들이는 포도맛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그들에게 난 ‘아지트’ 얘기를 꺼냈다. 어른들이 절대 찾지 못할 우리만의 공간을 갖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하나 둘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게 곧 놀이였던 무렵에 ‘아지트’라는 말은 매력적인 놀잇감이었고, 우리형과 나를 포함한 5명의 멤버는 그날부터 무리 지어 후보지를 물색했다.


첫 번째 후보지는 아파트 단지 제일 끝동의 뒤편, 지붕 없는 단층 건물이었다. 회색 벽돌로 단단한 외벽까지 쌓여 있어 아지트로 아주 적합해 보였다. 문제는 커다랗게 쓰인 ‘보안시설(관계자 외 출입금지)’이라는 팻말이었는데, 그 문구를 무시하고 한참 어슬렁거리며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비아저씨 순찰에 딱 걸리고 말았다. 출입금지라는 말이 안 보이냐며 일렬로 서 꾸지람을 들은 후에 이곳은 그대로 후보지에서 아웃되었다. 뒤이어 재빠르게 찾은 두 번째 후보지는 옆 아파트 지하에 있던 ‘태조공판장’이라는 마트의 창고였다. 적당한 어둠과 적당한 빛이 드는 창고에는 물건을 꺼내고 버려진 상자만 한 가득이었다. 크기도 괜찮고 오가는 사람도 적어서 괜찮을 줄 알았지만, 누군가의 일터를 함부로 침범하여 소유하려는 건 응당 제지되어야 할 생각이었고, 주의를 요하는 아파트 안내방송과 함께 두 번째 후보지 역시 금세 제외되었다. 연이어 터가 좋은 정자는 이미 무서운 형아들에게, 천변 옆 굴다리는 시큼한 냄새와 벌레들에게 자리를 빼앗겨 줄줄이 X표가 그어졌다.


슬슬 모두 열의를 잃어가던 찰나, 누군가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했다.

 “이럴 바에 차라리 굴이나 팔까?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는 거 아냐?”

용감했다. 단 한 명의 반대 없이 5명 모두 다음날 각자의 집에서 도구를 꺼내 모였다. 어떤 형은 자기 몸보다 커다란 삽을 끌고 나왔다. 내게는 형들이었지만 다들 기껏해야 초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적당한 도구만 있으면 땅을 파서 공간을 만드는 것쯤은 쉬운 일이라 여겼던 것 같다. 무게를 이고 지고 땅을 고르고 골라 마침내 정한 장소는 104동 놀이터 수풀 뒤였다. 지하주차장 환기시설이 높게 -물론 우리의 시선에서-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좋았고,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땅이 무른 편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굴을 파내려 갈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드디어 몸을 숨길 곳을 가지게 되는 걸까 설렜고, 그렇게 환장의 서막이 올랐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따금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나를 나란히 세워본다. 그런 날은 20층 높이 빌딩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힘에 부치는 날이거나, 누구 하나 물음 없이 날 선 시선으로 앞만 향해 내달리는 거리의 인영이 문득 버거운 날이거나, 자꾸만 올라오는 신트림에 작은 빵집 앞 테라스에서 좋아하는 바게트나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싶은 날이다. 그렇게 여전히 혼자만의 속도와 깊이로 숨을 편히 내쉴 공간을 갈망한다. 몸집은 더 커지고 무게는 더 비대해져 대개의 장소가 옹색하게라도 내 존재를 숨길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멈추지 못한다. 단지 예닐곱의 나이였기에, 디지몬이 신기해서, 따라 하고 싶어서, 재밌어서 아지트를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매일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는 적에 맞서, 꽤나 품이 드는 싸움을 마치고 오는 한 사람의 아우성이었다. 늘 간절하고 진실된, 그리고 번번이 꺾이는.


104동 수풀 뒤에서 다섯 아이들은 꽤나 많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파트 근처 땅은 그리 약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이미 1m 넘게 자란 아이들이 들어갈 크기의 굴을 파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때의 우리는 다 같이 힘을 모아 파고 파고 또 팠다. 다음 날과 다음 주가 되어도 우리가 파내려 간 땅의 깊이는 채 50cm도 되지 못했다. 언젠가 가벽을 세울 때 사용하겠다며 한쪽에 미리 모아둔 두꺼운 상자들은 몇 번의 낮과 밤을 지나 새벽 공기를 잔뜩 머금었다. 이내 고꾸라졌다. 힘없이 꺾인 상자들 전부 버리고 돌아오던 길에 한 명이 말했다.

 “야, 안 돼, 안 돼. 너희 이거 계속할 거야?”

고개를 가로젓던 그는 깔끔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여태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장소를 물색했던 시간들이 무안할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헤어졌다. 첫 번째 이탈은 남은 이들의 마음을 들쑤셨고, 진척 없이 울퉁불퉁해진 게 전부인 땅을 바라보던 다른 형들도 순서대로 흩어졌다. 결국 내 곁에는 우리형 한 사람만 남았다.


세상의 여느 가족과 다름없이 우리집에도 여러 사건이 존재했다. 우리형과 난 비슷한 듯 다른 유년기를 보냈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절을 흘려보내며 최선을 다했다. 그에 수반하는 감정 역시 둘 각각의 몫으로 감내하며 자랐다. 그럼에도 곁에 서로가 있어 든든했고 버틸 수 있었다. 104동 아지트 건설 작전은 그 기억 한가운데 자리한다. 덩그러니 둘만 남은 공터는 모래장난 한 판 거하게 치른 흔적 정도로만 보였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좀 더 같이 해볼까?”

그때의 형을 움직인 동력은 무엇일까. 형은 어떤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려 했을까. 알 수 없었지만 아직 우리 형은 내 옆에 있었고, 그건 간절한 바람을 현실로 만드는 게 마냥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추위로 더욱 딱딱하게 굳은 땅을 무르게 만들기 위해 집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와 언 땅에 부었다. 다시 구한 상자들은 테이핑을 마쳐 환기구 틈 사이에 끼워두었다. 대단하진 못하더라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땅을 파는 작업은 속도가 났고, 새벽 한기도 상자 사이에 스며들지 못했다. 어느덧 종아리까지 들어갈 정도로 파낸 굴은 작은 보자기를 펼칠 면적은 되어 보였다. 이대로만 가면 드디어 아늑한 우리만의 장소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날 밤 <디지몬 어드벤처> 속 화면처럼, 주인공에게 닥친 시련과 고난을 의미하던 모진 비바람처럼, 우리의 세상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는 늦은 장마 같았다. 지독하게도 이어졌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있던 놀이터들은 위치를 가리지 않고 전부 다 흙탕물로 가득 찼다. 변한 모습은 동네 목욕탕에서 제일 큰 온탕을 방불케 했다. 104동 놀이터에 차오르던 빗물은 보도블록 높이까지 차올랐고, 우리가 헤집어놓은 수풀 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틀 내내 내리던 비는 삼일 째 오후에야 겨우 그쳤다. 형과 내가 아무 말 없이 서둘러 우리의 아지트를 확인하러 갔을 땐 물웅덩이라고도 부르기 민망할, 작은 구렁만이 남아 있었다. 며칠은 자주 그곳을 찾았고, 며칠은 부러 104동을 지나지 않고 먼 길을 돌아갔다. 놀이터에 가자고 친구들이 이끌던 날에는 한참 돌아가야 하는 109동 근처까지 굳이 발을 움직여 놀았다. 어느 시점부로 형도 나도 우리의 아지트를 기억에서 지웠다. 지웠다기보다는 끄집어내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아지트 건설 작전은 막을 내렸다.


물이 찬 웅덩이의 모습은 숱하게 반복되는 갈망과 실패의 표상이 되어 남아있다. 삶의 반경이 달라짐에 따라 외형과 위치는 바뀌어갔지만 퍽 자주 ‘아늑하고 평화로운 그곳‘을 찾아 헤맸다. 중학생 시절에는 등나무로 휘감긴 스탠드 아래 작은 체육창고가, 고등학생 때에는 족구장 옆 빈 교실이 짧은 시간이나마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꽤 많은 날들은 어떤 타인의 품에서 안식을 찾았다. 왜 이리도 자주 숨고 싶고 또 숨을 일은 많은지. 때로는 지나온 시간의 부끄러움을 가려야 했기 때문이고, 때로는 뱉을 수 없는 마음의 신음을 삼켜야 했던 탓이다. 하지만 언제나 복병은 나타났고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 시도들은 실패했다. 다시금 호흡이 가빠지는 순간이면, 승강장 7-4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내와의 신경전이 끝날 때면, 지리멸렬한 나의 삶에 어뜩 의문이 차오를 때면 안식처에 기대 몸과 마음을 추스르려 할 것이다. 온전히 나의 회복을 이룰 공간과 그것을 기다려줄 시간은 어디에도 없다 해도. 또다시 다다를 수 없는 그곳을 바라보며 응달진 물웅덩이를 되새김한다.



Fin.

From the West.

작가의 이전글 센트럴파크를 떠난 오리들이 모이는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