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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광산(1), 꽃보다 성녀

비엘리츠카(WIELICZKA), 공주의 공주를 위한 공주에 의한 7

소금광산은 찾기 어렵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덕분에 초행이어서 넉넉하게 잡은 도착 예상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도착하였다. 


소금광산 입구. 

소금광산. 비엘리츠카(WIELICZKA). 코팔니아 솔리(KOPALNIA SOLI). 솔트 마인(SALT MINE). 모두 같은 말이다. 


온라인으로 예매한 표를 입장권으로 바꾸고 나와 연짱이는 영어 개인 관광객 줄에 서서 대기하였다. 추위에 떨면서 입구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일본인 언니가 영어 개인 관광객 줄 맞느냐고. 어떻게 왔니, 물었더니 버스 타고 왔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언니에게 여기까지 기차로 오는 방법도 있어서 어제 기차표 예매하러 갔더니 아침 6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철로 보수로 기차운행을 안 한다고 하여 우리 역시 버스를 타고 왔다고, 소금광산 투어가 12시 넘어서 끝날테니 그 때 기차 타고 가라고 말해주었다. 언니는 어쩐지 트램 운행을 안 해서 숙소에서 중앙역까지 버스 타고 오느라 고생하였다고 말하며 웃었다. 웃는 얼굴이 귀여운 언니였다. 나와 연짱이를 보고 안심이 되었던지 언니는 가방에서 빵을 주섬 주섬 꺼내더니 오물 오물 먹기 시작하였다. 그걸 보고 도로시는 배고프다고. 둘러보니 관광객들에게 성황리에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유일한 매점이 있어서 퐁첵이라도 사줄까, 물었더니 품질은 그럭저럭이면서 가격은 비싼 독점가게에서는 사먹고 싶지 않다고. 뭔가 까다로운 바른생활 어린이 연짱이. 


비 내린 후 추워져서 어제에 비해 바람이 매우 차가웠다. 추운 날 패딩도 아닌 코트 하나에 목도리도 없이 서 있느라 목에 소름이 잔뜩 올라온 아이가 안스러워서, 괜찮니 날이 많이 춥다, 하며 옷깃을 여며주니, 아이는 당황해하며 이곳 전에 아일랜드에 있었는데, 거기서 목도리를 잃어버렸다고. 연짱이는 엄마는 오지랖 넓게 왜 그래, 내게 핀잔을 주면서도 이렇게 추운데 목도리 하나 사서 두르지 감기 걸리면 어쩔려고, 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서른도 안 된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을 보니 어쩐지 그 아이 엄마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랬는데, 우리 연짱이 포함 어린 세대에게는 쓸데없는 참견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 


시간이 되어 개인 관광객 전용 입구가 열리고 소금광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가이드는 말이 빠르고 수다스러운 아줌마였고, 관광객들 말을 중간에 턱턱, 끊고 제 말만 하는 신기한 타입의 가이드여서 다른 의미로 인상 깊었다. 퀴즈는 왜 내며 관광객의 의견은 왜 묻는건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연짱이는 어쩐지 소금광산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부터 눈을 빛내며 들떠 있었다. 


"엄마, 인제 두 사람이 같이 손으로 펌프질 하며 이동하는 레일 트램 타고 들어가는거야?" 

"엥, 이 어린이 무슨 소리야?" 

"광산이라며. 그거 타고 가면서 광산 내부 보는 것 아니었어?"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었어? 19세기 광부도 아니고 그런 거 하면 힘들어서 관광객들이 오겠어?"  

"뭐야, 그런 거 안 하는 거야?  쳇, 난 또 엄청 기대하고 왔구만.  그럼 관광객 코스 말고 광부 코스에서는 해? 하지? 그거 하자 엄마." 


광부 코스에서 그런 노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독특하고 이상한 나라의 연짱이. 


소금광산으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은 슬몃 겁이 날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듯 보였다. 지하 1층까지 딛는 계단은 약 380개이며, 돌아올 때는 승강기를 이용하여 한 번에 지상으로 올라온다고. 염개미는 심폐기능이 매우 비루하여, 지하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대중목욕탕 탕 속에서조차 호흡에 저항감을 느끼는 터라, 사실 소금광산 예매하기 전 깊은 고민을 하였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쾌적한 관람이었다. 원래 소금광산은 뜨겁고 숨 막히는 갱도로 이어져 있었지만,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시원한 내부 시스템(17, 18도 유지)과 신선한 외부 공기 유입 등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막상 가보니 두 어 시간 내부를 돌아보는 동안 아무 문제 없었다. 1인당 거의 3만 5천원 정도의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말 그대로 관광하기 위해 들어오는데, 그래야지요. 


소금광산은 매우 광활해서 관광객은 전체의 겨우 2퍼센트만 보는 것이라고. 9층 깊이에 회랑은 245KM이고 가장 깊은 지점은 327M. 가이드 아줌마의 이런 저런 설명 후 맨 처음 도착한 챔버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챔버였다. 


1493년 소금광산 첫 방문자들 중 하나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를 기념하여 만든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챔버.' 코페르니쿠스 탄생 500 주년에 공개되었다. 준비물은 맑은 하늘 뿐이었던 중세에 이미 맨 눈으로 지구는 둥글다는 것을 아신 분. 저 동그라미는 뭐래, 했더니 지구를 들고 있는 거였네.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라고 발음하지만 폴란드에서 코페르니쿠스는 'MIKOŁAJ KOPERNIK' 이다. '미코와 코페르닉' 쯤 되려나. 


'야노비체 챔버(JANOWICE CHAMBER).' 

킹가공주 (ST. KINGA) 전설을 조각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사진 각도 봐라. 


"킹가공주는 헝가리 왕 벨라(BELA) 4세의 딸로 폴란드 볼레스와프(BOLESŁAW) 5세와 혼인하였는데, 지참금으로 분할받은 땅과 함께 소금광산을 원하였대요. 벨라 4세는 그녀의 지참금에 '마라무레스' 소금광산을 포함시켰어요.  능력자였던 킹가공주는 마라무레 광산에서 주문을 외우며 자신의 약혼 반지를 광산 구덩이 속에 던졌어요. 그 후 크라쿠프 근처 구덩이에서 수십 개의 소금 덩어리가 나왔고, 그 속에서 킹가공주의 반지가 발견되었다고 해요. 그곳에서 나온 소금은 폴란드 사람들이 먹을 만큼 충분한 양이었어요. 킹가공주는 소금광산의 수호성인이 되었어요." 


전설에 드라마틱한 요소는 풍미를 돋우어주는 좋은 양념이지. 마치 어떤 아줌마가 밭일을 하다가 결혼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몇 십 년이 지나 손자가 밭에서 쑥, 뽑아올린 당근에 결혼반지가 달려 있더래, 하는 얘기처럼. 참 재미있는 게 유럽 귀족 언니들이나 왕족 언니들은 혼인할 때 꼭 지참금 필수던데, 동남아시아는 예비 남편이 혼인하고픈 언니네 집안에 지참금을 들고 가서 혼인 허락을 받는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언니 집안이 유력하면 유력할수록 예비 남편의 지참금 액수도 커진다. 유럽 유력 가문이나 왕족들이야 정치적 동맹 등의 문제가 걸려 있어서 그러하였다고 하지만, 더운 나라의 경우는 노동력 때문일까. 더운 나라에서는 온갖 집안일이며 생계꾸리기는 언니들 몫인 게 일반적이어서, 남자들이 한낮 티숍(우리식으로 말하면 다방)에서 시간을 죽이며 빈둥거리는 동안, 언니들은 뙤약볕에서 얼굴 그슬리고 구슬땀 흘리면서 남자들이 할 대부분의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린다. 21세기 동시대 대한민국을 사는 염개미의 관점에서는 둘 다 낯설다. 


킹가공주님은 사랑없는 정략결혼을 원망하며 권력이나 사치를 휘두르는 맛에 살았던 공주님도, 몇 십 겹 이불 아래 슬쩍 끼워넣었던 콩 한 알도 배겨서 못 주무시는 종류의 공주님도 아니었다. 남편이 죽은 후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1292년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생활하였다니, 성인(성녀)로 추앙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스팔로네 챔버(SPALONE CHAMBER)' 


깊이 판 땅굴 속에는 메탄가스가 가득하다. 메탄은 무색 무취 가스지만 너무 많이 농축된 메탄가스가 공기와 접촉하면 폭발한다. 그러한 폭발을 막기 위해 가스를 태워버리는 사람들은 꼭 필요하였다. 그들은 폭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젖은 옷을 입고 몸은 낮게 숙인 채 광산 내부를 돌아다녀 '회개하는 사람들' 이라고도 불렸다고. 그들은 횃불을 들고 돌아다니며 메탄가스를 연소시키는 일을 하였다. 


와, 저 시대에 생명수당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겠지만, 설령 있었다고 한들 생명은 하나 뿐인 소중한 건데. 목숨 걸고 한다는 말 쉽게 하는 사람들은 이걸 꼭 봐야 한다. 


나는 로라 잉걸스 와일더가 쓴 '초원의 집'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그녀가 쓴 여러 권의 시리즈 중 '초원의 집' 에는 로라의 가족이 큰숲인 미국 서북부 위스콘신에서 나와 서부라 불리는 네브라스카 초원에서 정착하기 위해 통나무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개척지를 일구는 과정이 매우 서정적으로 그려져있다. '초원의 집'에는 로라의 아버지가 우물을 파들어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는데, 구덩이의 깊이가 깊어지면서, 아직 물이 나오지 않은 깊은 구덩이에 들어가기 전 매 번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켜서 밤 새 우물 바닥에 고인 유독가스를 날리는 번거로운 과정이 설명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일도 없는데 매 번 다이너마이트 폭파하는 일이 번거로웠던 로라의 아버지는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하고 다이너마이트 폭파 과정 없이 깊이 판 구덩이로 내려간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로라의 아버지는 작업 시간이 지나도록 우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말그대로 안전불감증의 무서운 결과. 로라의 아버지와 함께 우물을 파던 동료는 위험을 무릅쓰고 유독가스로 가득한 깊은 우물로 내려가 다행히 아버지를 구한다. 


무색무취.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으니 천천히 젖어들고 스며들어 서서히 죽어가도 모르고 있다가, 결국 위험을 알아차렸을 때는 너무 늦는 무형의 것들.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죽는 줄 모르게 시나브로 중독되는 것이 비단 육체 한정은 아니어서 내게는 오래도록 몸에 밴 느른하고 게으른 생활습관, 그리고 깊은 사유 없는 일상이 그러하다. 그런 매일의 삶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는 것. 더 늦기 전에 아니, 너무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카지미르 대왕(CASIMIR THE GREAT) 챔버'의 14세기 카지미르(CASIMIR ) 3세의 조각상. 

폴란드를 부국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대왕(GREAT)" 칭호를 받은 유일한 폴란드 왕이며, 소금광산법 중 소금채굴 관련 문제들을 규제하였다. 이 왕은 폴란드 최초의 대학인 크라쿠프 아카데미(KRAKOW ACADEMY)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목재 기초 국가 폴란드를 결국 석재 폴란드로 만든 왕이라고 칭송받는 분. 우리나라로 치면 집현전 세우신 세종대왕 님 쯤 되려나? 


소금광산에 염천이 흐르는 것을 보여준다. 


전설에 따르면 소금광산에는 소금을 지키는 요정들이 살았다고. 그들은 물로부터 소금을 보호하고 광부들에게 위험을 인지시켜주었다고 한다. 소금광산의 요정 퀸은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탈 소금이 가득한 방에서 살며 절대로 늙지 않는다고. 그래서 소금은 물건을 보존한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연짱이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300년도 더 전에 소금광산에서 화재가 있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어떤 챔버는 아니었고, 갱도 내 나무 버팀목들을 따라 걸으면서 들은 설명이었던 것 같다. 


조금 지루해지려는 순간 소금광산의 백미라고 말 할 만한 킹가공주 예배당에 도착하였다. 와! 정말 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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