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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광산(2),할로윈? NO, 채플!

킹가공주의 예배당, 그리고 인생은 늘 변수, 호흡이 아니라 폐소 8 

조금 지루해지려는 순간 킹가공주 예배당에 도착하였다. 계단에 서서 예배당 전경을 내려다보는데 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이 공간 하나만으로도 소금광산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질 만큼 소금광산 내 모든 챔버들 중 단연 압권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나무 버팀목이나 조명을 위한 시설 말고는 딛고 다니는 바닥서부터 모든 곳이 다 소금이라고. 


'킹가공주 채플(ST KINGA'S CHAPEL)' 

이 예배당은  요제프 마르코프스키(JóZEF MARKOWSKI), 토마쉬 마르코프스키(TOMASZ MARKOWSKI), 그리고 안토니 비로덱(ANTONI WYRODEK) 세 사람의 광부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상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고. 새로운 세대의 광부들이 기존의 조각들 위에 계속 덧붙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요제프와 토마쉬는 10살 터울의 형제이며, 예배당 벽면의 예수님 일대기는 동생 토마쉬가 시작하였다. 예배당 벽면 조각 중 가장 걸작인 '최후의 만찬'은 안토니 비로덱이 만든 것이라고. 1978년 UNESCO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샹들리에 연결고리나 전기등 같은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소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연짱이가 성의 없이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다. 


소금 샹들리에가 하도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았었다. 


엄청 아름다운데 . . .  짜겠지? 


킹가공주의 예배당. 

제단 가운데 조명으로 밝혀진 조각상은 킹가공주 동상으로 1914년 요제프 마르코프스키가 만들었으며, 동상 뒤의 공간은 소금결정으로 장식되어 있다. 킹가공주 동상의 양 옆으로 성 요셉(ST JOSEPH) 동상과 성 클레멘트(ST CLEMENT) 동상이 보이는데, 각각 킹가공주와 같은 소금광산 수호성인(성 요셉)이며 비엘리츠카 교구 수호성인(성 클레멘트)이다. 또한 예수님이 못 박혀있는 십자가상은 폴란드 내 네 곳의 소금광산 즉, 비엘리츠카(WIELICZKA), 보흐니아(BOCHNIA), 크워다바(KłODAWA), 그리고 시에로쇼비체(SIEROSZOWICE)를 상징한다고. 

폴란드에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외에 다른 소금광산도 있구나! 이곳에 오기 전 내게 소금이란 곧 염전에서 생산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뿐이었던 터라 신기하였다. 


가이드가 둘러볼 시간 여유를 많이 준 것은 아니어서 연짱이와 잠깐 멈춰 기도한 것이 다였지만, 수 백 년을 품은 이와 같은 공간에 나와 연짱이가 서 있다는 자체가 마음 뭉클하였다.  


"엄마, 여기 채플실 맞지?" 

"어, 옆구르기 하면서 봐도 예배당이잖아. 왜 연짱이 눈에는 다르게 보여?" 

"음 . . . 왜 나는 할로윈이 떠오르지 자꾸?"  

"뭐어?" 


연짱이는 애거서 크리스티 할머니 광팬이고 팀 버튼 감독 찐팬이기도 해서, 크리스티 소설전집은 당연하고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역시 연짱이 표현으로 고구마 구간이 긴 '빅 아이즈'와 잔혹극 '스위니 토드'만 빼고 모두 DVD로 소장하고 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좋아하지만, 특히 '크리스마스 악몽'은 5살 때부터 보고 또 봐서 영화 전반에 나오는 대화들을 영어로 줄줄 따라 읊을 정도. 그래서 그런거니, 연짱이? 


그 때는 연짱이 반응이 재밌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럴 만 하다는 생각도 든다. 장소가 지하여서 어둑한 호박빛 조명이 그런 느낌을 주기 충분했을 것이고, 공간 자체가 암염으로 이루어진 곳이어서 고딕스럽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도 한몫하였을테고. 


예배당 벽면 부조는 예수님의 탄생 장면을 비롯한 성경 속 이야기들이 조각되어 있다. 


계단 벽면 부조. 가나의 혼인잔치와 출애굽과 같은 성경에 언급된 사건들이 묘사되어 있다. 


예수님 태어난 마굿간 풍경으로 보인다. 마굿간 밖에는 동방박사 세 사람. 킹카공주 예배당 오른쪽 벽면에는 예수님 탄생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미에츠와프 클리젝(MIECZYSŁAW KLYZEK) 작. 


위쪽은 십자가 메고 언덕 오르시는 예수님 모습. 

아래쪽은 노새 위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와 노새를 이끄는 요셉. 


성경 속 한 장면. 


역시 성경 속 한 장면.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 안토니 비로덱(ANTONI WYRODEK) 작품. 


계단 벽면 부조. 사진 각도 봐라. 


소금광산 내 여러 챔버들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역시 킹가공주 채플실이라고 꼽을 만큼 아름답고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킹가공주 채플실을 나와 계단을 좀 더 내려가니 소금호수가 나왔다. 굳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소금농도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예상 쯤은 어렵지 않았다. 사해 같은 느낌이려나 하였는데. 


'베이마르 챔버(WEIMAR CHAMBER)' 의 소금호수.


소금호수 중 하나로 깊이가 9m이다. 거대한 소금 기둥이 호수 바닥에서부터 버티고 있는데, 호수는 소금이 더는 녹지 못하는 과포화 상태여서 소금 기둥이 녹지 않는다. 소금광산에는 여전히 많은 염천이 흐르고 있으며, 호수로 모여든 그 소금물을 지상으로 끌어 올린 후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다고. 지상으로 올라오기 전 기념품점에서 음식에 넣어 먹을 소금과 입욕제로 쓸 소금을 선물용도로 구입하였는데, 아, 그래서 비엘리츠카는 여전히 소금을 생산해내는 소금광산이라고 가이드가 그토록 자랑하였었나 보다. 오늘날 소금광산의 가장 큰 위협은 내부로 새어들어오는 누수라고. 그래서 현재 소금광산에서 광부들이 하는 주요한 업무들 중 하나가 누수 점검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배를 타고 이곳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이 소금호수 때문에 죽었는데 왜 죽었게?" 

가이드 아줌마의 퀴즈. 

"답은 숨막혀서 죽었어." 

보기보다 호수물이 엄청 깊어서 물에 빠져서 숨 막혀 죽었다고. 


이 가이드 아줌마는 어쩐지 'CHOKED' 는 알면서 'DROWNED' 는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태국인 아저씨인지 영국인 커플 중 남자였는지 "익사?" 라고 대답하니 아니라고. 물에 빠져서 숨을 못 쉬어 죽는 것을 '익사' 라고 하는 것 아니니? 숨 막혀 죽는다고 할 때, 목이 졸리거나 무언가가 기도를 막아 숨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져서 숨 막히는 건 '익사' 라고 아줌마. 어느 쪽이든 이를테면 간수에 빠졌으니 당연히 죽었겠지. 순수 소금이 녹아 흘러서 고인 간수는 독극물 중 최상위급 독극물이니까. 


듣기로는 이곳이 연인들에게는 프로포즈 장소로 유명하다던데, 다른 방문객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염개미와 연짱이는 이 소금호수가 매우 음산하게 보여 가까이 가기 싫었을 정도로 무서웠다. 더는 소금이 녹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농도의 간수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 육안으로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탁한 물에서 기인한 공포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방이 막힌 지하공간에 고인 물이라는 그로테스크함 때문이었는지도. 


요제프 피우수드스키(JOZEF PIŁSUDSKI) 터널. 

요제프 피우수드스키가 집권 중이던 때 만들어진 터널이어서 그의 이름을 땄으며, 깊이 5m 소금물 길이 있어 배를 이용하여 오갈 수 있던 곳이었다. 오스트리아 분할 점령시기이던 1915년 어느 날, 신분이 높은 많은 이들이 비엔나에서 이곳을 방문하였다가, 제한 인원을 초과하여 그들을 실은 배가 뒤집어져서 7명이 죽었다고. 그 뒤로 배 타는 것은 금지되었고, 물의 깊이도 낮아졌다.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 체코 사제이시다. 


보헤미아 국왕이자 로마의 왕이었던 바츨라프(벤체슬라우스) 4세에 의해 블타바 강에 내던져져 익사를 당하였다. 1459년에 토마스 에벤도르퍼가 작성한 '로마 순교록(Chronica regum Romanorum'에 의하면, 성 요한은 보헤미아 왕비의 고해신부였는데, 벤체슬라우스 왕은 왕비의 고해신부인 네포무크의 요한을 불러서 왕비가 그에게 무슨 고해를 했는지 말해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요한은 왕의 요구에 “성스러운 고해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엄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처럼 명하신 것을 순종치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이에 왕은 격노하여 즉시 병사들에게 명하여 요한을 붙잡아 갖가지 고문을 가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요한이 끝끝내 고해 비밀을 누설하기를 거부하자, 결국 그의 두 손을 뒤로 결박시키고 카를교 다리 위에서 강물에 던지게 하였다고 한다. 


1471년 파울 치덱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벤체슬라우스 왕은 자신의 왕비가 정부를 가졌을 거라고 의심하였다고 한다. 왕비가 네포무크의 요한에게 자주 고해성사를 받곤 하였기 때문에, 그는 요한에게 왕비의 정부의 이름을 대라고 명령하였지만, 요한에게서 끝내 자백을 받아내지는 못했다고. 그리하여 네포무크의 요한은 고해성사의 비밀을 준수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최초의 순교자이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받은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또한 그는 강물에 빠져 익사하였기 때문에 홍수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저 분이 왜 뜬금없이 이 지하소금광산에 계시는가 하였더니 뱃놀이 중 익사한 사람들 때문이었구나. 강물도 아니고 지하광산에 고인 간수에 빠져 익사하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우리 엄마 정여사 님 말씀대로 사람 목숨이나 인연 만큼 모질고 질긴 것이 없지만, 참 덧없고 허무하고 뜬금없이 끊어지는 것도 사람 목숨이구나 싶었다. 


소금광산에서는 미사나 결혼식을 수용하기도 하고 음향효과가 좋아서 콘서트도 열린다고. 킹가공주님의 채플실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콘서트에 참석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안 되었다. 


관광객 루트 관람을 마친 뒤, 도나와 베니아, 토비어멈에게 줄 먹는 소금과 소금 입욕제 몇 가지를 사고 슬라이드 영상을 보고 나오니 오전 11시 반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소금광산으로 내려갈 때는 수 십 번의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갔는데, 올라올 때는 좁은 승강기 -- 라고 말하면 너무 호화롭게 들리는 -- 에 갇혀 단 번에 슝, 지상으로 올라왔다. 염개미는 가벼운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그보다 심각한 폐소공포증이 있다. 서 너 명 들어가면 꽉 차는 얼기설기 나무상자 같은 승강기 속에 들어가 지상으로 올라오는 잠깐 동안, 숨이 막히고 아무 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완벽 암전상태를 겪어 괴로웠다. 몇 십 초니 참는 것이지 몇 분 지속되었다면 나는 공황상태에서 드러누웠을 것이다. 초딩으로 보이는 어린 딸내미 둘을 데리고 함께 탑승하였던 폴란드 인 엄마가 내 옆에 서 있었는데, 지상으로 올라가는 내내 내 등을 쓸어주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정말 고마웠다. 소금광산 예매 때 호흡기에 대한 고민만 잔뜩 하였지, 폐소공포증 때문에 이토록 무서울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하였는데. 예상도 하지 못하였던 변수가 있는 것이 인생이구나. 반 백 년 넘어 산 아줌니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것이 우리네 삶인 거다. 


안타깝게도 연짱이는 소금광산이 별반 재미가 없었나 보다. 여행 중 사진찍기는 거의 다 연짱이의 몫이었는데, 사진 각도며 흔들림 정도가 해당 관광명소(TOURIST ATTARCTION)에 대한 연짱이의 흥미 정도를 말해준다. 더 심한 경우 아이는 아예 사진촬영을 보이콧하기도 한다. 소금광산 가이드가 많이 무례했던 탓도 있었지만, 아이는 소금광산 자체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던지 설명도 듣는 둥 마는 둥, 사진도 찍는 둥 마는 둥 설렁 설렁. 


"그래서 내가 연짱이인 거야, 엄마. 모든 일에 대충이 없고 열심만 있는 염개미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연짱이는 그래." 


그렇다는데 어쩔 수 있나. 연짱이는 염개미와 달리 감정 기복이나 말수가 거의 없는 아이이고 감흥 표현의 폭도 적은 편이어서, 연짱이가 아직 많이 어렸던 초딩 저학년 시절에는 내 양육방식이나 교육방식 잘 못 된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였었다. 하지만 이 십 년 되도록 연짱이를 양육하면서 내가 보고 깨달은 것은 표현이 적다고 해서 감흥이나 깨달음 역시 적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수 적은 나의 아이는 울적하거나 가슴 아픈 장면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보다 눈물을 흘리고, 화가 나는 사회구조나 현상을 목격하면 조목조목 논리를 세워 따진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경우, 논리를 넘어선 엄마의 공감과 격려를 바란다. 모든 엄마는 아이에 대하여 늘 초보일 수 밖에 없다. 내가 키우는 내 아이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유니크한 존재여서 누구에게 물어도 어떤 경우든 백퍼센트 맞아떨어지는 일은 없다.  그저 비슷한 경우에 대입하여 생각하거나, 이제껏 봐왔던 기존의 아이의 패턴을 고려하여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아이가 울면 엄마도 울고 싶다. 같이 울거나 같이 당황하면 아이는 더 패닉에 빠지니 태연한 척 포장할 뿐이지. 내게 깊이 있는 사유가 꼭 필요한 이유 중에는 나와는 많이 다른 아이를 찬찬히 헤아리려는 이유도 크다. 


비엘리츠카 정류장에서 무사히 버스를 타고 30분 여를 열심히 졸다가 종점인 크라쿠프에서 하차하였다. 버스정류장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려고 사진기를 꺼내들었는데, 버스에 앉아 넋놓고 나와 연짱이를 관찰하던 남자 어린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너무 머쓱해하길래 웃으며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 주니, 안 그런 척, 다른 곳 쳐다보는 척하며 손을 흔들어주는 게 하도 귀여워서 박장대소하였다. 아이는 나와 연짱이를 따라 쑥스럽지만 환하게 웃었다. 지금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 간직하며 성장하기를. 


하루의 반을 광산에서 보냈으니 나머지 반은 성에서 보내기로 하고 바벨성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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