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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1), 성(바벨성)에 진심인 편(1)

왕의 접견실(STATE ROOMS), 앞마당에서 9

연짱이와 염개미는 시간 많고 매우 바쁜 관광객이어서 부지런히 바벨성을 향해 걸었다. 네비게이터 연짱이는 길찾기가 현지 주민급이다. 체류 이틀 만에 지름길이 어딘지, 어디로 나가면 어디로 통하고 어디로 더 빨리 갈 수 있는지 아주 훤히 안다. 말수없는 공대오빠 같은 신기한 생활과학도 연짱이. 


바벨성 올라가는 길. 

크라쿠프 도착 첫 날, 동유럽 짧은 겨울 해 때문에 무언가를 하기도 애매하여 구시가를 걷고 또 걷다가 우연히 접어들었던 곳이 바벨성이었다. 나는 이곳이 바벨성일까 의심하였지만, 연짱이는 바벨성인 것을 정확히 알고 걸었었다. 그 날은 날이 흐리고 가는 비 내렸지만, 오늘은 날이 화창하여 아름다운 바벨성이 잘 보인다. 


"관람 전 바벨성의 역사를 조금 살펴보자, 연짱이." 

"꼭 들어야 해? 들어도 곧 잊을텐데. 그리고 폴란드 오기 전 동유럽사 한 번 훑고 왔잖아."  

"그 동유럽사에 바벨성에 관한 건 없었잖아. 넌 퐁첵 한 개 먹고 돌아서면 먹은 것 금세 잊어버리고 또 사먹을 거면서 왜 자꾸 먹나. 일단 읊을테니 들어봐." 


바벨성(WAWEL CASTLE, Zamek krolewski na Wawelu)은 도시 남쪽 비스와강 상류에 위치하며, 성의 역사는 9세기초부터 시작된다. 카지미르 1세(CASIMIR THE RESTORER)는 바벨을 폴란드 정치, 행정의 중심지로 삼았고, 11세기 아들인 볼레스와프 2세(BOLESŁAW THE GENEROUS)는 두 번째 로마대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12세기 초 볼레스와프 3세(BOLESŁAW THE WRYMOUTH)가 완성하였다. 13세기 말 잠시 동안 크라쿠프와 함께 보헤미아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프레미슬리드(PREMYSLID) 왕조의 벤체슬라스(WENCESLAS) 2세가 그니에즈노(GNIEZNO) 성당에서 폴란드 왕위에 올랐다. 14세기 초 브와디스와프 1세(WŁADYSŁAW THE SHORT)는 역사상 최초로 바벨을 통치한 폴란드 통치자로 기록되었다. 그는 고딕양식 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는데, 흙과 나무로 된 성벽을 석조로 대체하였고, 바벨성당에 묻힌 최초의 왕이었다. 14세기 초, 중반 피아스트(PIAST)왕조의 마지막 왕 카지미르 3세 대왕(KASIMIR 3 THE GREAT) 시절 고딕 성당에서 카지미르 3세의 손녀와 신성로마황제 샤를 4세가 혼인하였다. 16세기 초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바벨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알렉산더와 그의 형제 지기스문드 1세(SIGISMUND THE OLD)는 고딕양식을 대신하여 1640년 아케이드 갤러리와 안뜰이 딸린 새 궁전을 완공하였다. 또한 지기스문드 1세는 피렌체 건축가인 바르톨로메오 베레치(Bartolommeo Berrecci)의 '지기스문드 대성당' 건축을 후원하였으며, 역시 그의 이름을 딴 '지기스문드 벨' 제작도 후원했다. 16세기 중반 야기엘론(JAGIELLON) 왕조의 마지막 왕 지기스문드 2세(SIGISMUND II AUGUSTUS)는 브뤼셀에서 제작된 태피스트리로 성 내부를 장식하였다.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 지기스문드 3세(SIGISMUND III VASA)는 1595년 성 내부 화재 이후 초기 바로크 양식으로 바벨성을 재건하였지만, 궁전을 바르샤바로 이전하였고 바벨성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흠, 이래서 지기스문드만 제대로 기억하라는 것이었군!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국을 분할한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가 바벨을 점령하였을 때, 오스트리아는 바벨성과 몇몇 건물들은 군병원으로 개조하였고, 성당 포함 나머지는 철거하였다. 그 후 오스트리아군은 바벨성을 군사 요새로 썼으며, 1905년과 1911년 사이 마침내 오스트리아 군대가 물러간 후 20세기 초 바벨성당은 철저한 복원을 거쳤으며, 수 십 년에 걸쳐 바벨성의 복원 역시 시작되었다. 1918년 폴란드 독립 이후 바벨성은 국가수반의 공식 거주지이자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 개의 기관이 관리를 나누어 맡았다.  


"다른 건 기억 안 나면 잊어도 되는데, 키 작은 브와디스와프 1세 -- 왕 이름을 왜 이렇게 지은거냐 -- 하고 지기스문드만 기억하면 되겠네. 단신왕이 처음으로 바벨성을 고딕양식으로 지었고, 지기스문드1세와 2세 때가 폴란드 크라쿠프 전성기라 문화적으로도 풍성했을 때니까. 화재 후 고딕양식의 바벨성은 1502년부터 1536년까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대요. 지금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궁전 기틀은 지기스문드 1세와 2세 때 건축되었다고 보면 되겠네. 황금색 돔으로 된 지그문트 대성당(KAPLICA ZYGMUNTOWSKA)은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물로서, 대성당 내부에는 폴란드 왕의 석관과 가치있는 예술품들이 있다고 해. 아, 불이 자주 났었나 본데. 16세기 말 화재, 18세기 초 가장 큰 화재에 약탈에, 19세기 초에는 분할 점령 중 오스트리아가 군사용도로 개조해서 쓰거나 부수고. 바벨성도 크라쿠프도 폴란드도 정말 파란만장했구나." 


성은 역시 성벽과 망루.  


연짱이는 성이나 교회, 궁전 관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에는 신기해하고 좋이했는데, 내가 지치지도 않고 성 관람 교회 관람 궁전 관람을 반복해서, 나중에는 그 성이 그 성 같고 그 교회가 그 교회 같아졌다고. 열혈 극성 엄마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그래서 바벨성 여러 섹션 중 볼거리 짱짱하다는 '접견실(STATE ROOMS)' 을 먼저 보고 아이 반응이 괜찮으면 '왕실사저 (PRIVATE ROYAL PALACE)' 를 보기로 하였다. 게다가 깍쟁이 연짱이는 건물 한 곳 한 곳마다 입장권을 구매해야만 입장 가능한 바벨성이 어쩐지 입 연 돈봉투 같아서 얄밉다고 싫어하였다. 


'왕실 대성당(ROYAL CATHEDRAL)'  

지기스문드 1세 때 세워진 왕실 예배당이다. 바벨성은 중세 고딕양식으로 유명하지만, 화재나 전란을 겪으면서 부서진 것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당대 유행 양식을 따라 보수 되었기 때문에, 이 건축물들은 한 자리에 오종종 모여있지만 세 가지 건축양식이 섞여 있다고. 뾰족탑, 뾰족지붕, 뾰족 박공에 좁고 기다란 창문이 내가 좋아하는 고딕양식이고, 동글동글 돔지붕이 르네상스양식. 그럼 바로크양식은? 


바벨성은 보급형 내 카메라 내 솜씨 가지고는 도저히 전경이 한 화면에 담기도록 찍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돔 천장으로 된 아치문은 바벨성 궁전 앞 마당으로 이어진다. 유럽 구시가에서는 전형적인 돌바닥. 


유럽 교회의 천장은 정교성당이든 카톨릭성당이든 전부 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리고 모두 엄청나게 화려하다. 어느 동유럽 도시를 가든 구시가 거리는 거의 대부분 돌을 박아 만든 돌길이다. 보기에는 운치있고 참 예쁜데, 캐리어 끌고 지나가면 한 번씩은 꼭 욕한다는 구시가 돌길. 하지만 우리는 눈 녹아 질퍽한 흙길 위로 캐리어를 끌어봤기 때문에, 구시가 돌길 쯤은 감사하며 걷는다. 


지기스문드 1세 때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바벨성 궁전 앞 마당. 


아치형 아케이드가 있는 긴 회랑은 유럽 궁전이나 성에서는 흔한 형태이지만, 나와 연짱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어서 궁전 안뜰에 들어서자마자 와, 감탄하였다. 게다가 오랜만에 보는 맑고 파란 하늘. 


지붕 받치는 기둥이며 벽 프리즈(FRIEZE) 장식, 그리고 범상치 않은 용 모양 물받이까지 예뻐서. 포인트 띠벽지 같은 벽 프리즈 장식이 참 예뻤는데, 처음에는 안뜰 쪽 궁전의 모든 벽이 프리즈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STATE ROOMS,' 왕의 공식 접견실은 이 문을 통과해 들어간다. 이곳에서 군주는 신하들을 접견하였고, 특히 이곳에는 지기스문드 2세의 콜렉션 중 하나인 금사로 짠 태피스트리가 있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가구 역시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을 때 르네상스 시대 스토브는 파괴되었지만, 이를 대신하는 후기 바로크식 타일 스토브가 있다고. 


궁전 관람이 못마땅하였던 연짱이는 엄마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느적느적 왕의 접견실(STATE ROOMS)을 돌아다녔다. 댓발은 나온 입을 사진에 담아뒀어야 했는데. 결국 부르퉁한 주둥이로 사진찍는 일을 보이콧하였다. 즉, 바벨성 외부 몇몇 사진과 실내 사진은 전부 염개미가 찍었다는 의미. 흔들리는 건 예사이고 각도며 모든 것이 엉망이지만, 사진은 지난 기억을 환기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니 어쩔 수 없이. 


자, 이제 접견실 접견하러 내부로 들어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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