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크라쿠프(2), 성(바벨성)에 진심인 편(2)

왕의 접견실, WE ARE ALWAYS WATCHING 10

'STATE ROOMS' 왕의 공식 접견실 내부로. 가기 싫어 입 댓발 나온 연짱이, 가자. 


1층에 있는 세 개의 방 중 하나. 크라쿠프 주지사가 스위트룸으로 사용하였으며,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르네상스 시대 목재 천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침구색이 너무 무거워 보이는데, 주지사 님은 상관없으셨을려나. 


2층 손님을 위한 객실. 창문 옆 스토브가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을 때 파괴된 르네상스 시대 스토브를 대신하는 후기 바로크식 타일 스토브. 예쁘기도 예쁘지만, 매우 화려해서 무엇인지 몰랐다가 가까이에 가보고서 스토브인 것을 알았다. 


예쁜 스토브는 좀 더 가까이. 천장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원래 천장은 1702 년 화재로 피해를 입었고,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점령 기간에도 피해를 입었다고. 


무심히 걸려 있는 태피스트리나 그림들은 한 점 한 점 모두 귀한 그림들이고, 그 중에는 폴란드 왕실 초상화도 있다. 가구들은 16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가구. 타일 스토브 보이지 않는 옆면에 유명한 태피스트리 'GOD SPEAK TO NOAH' 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그것만 피해서 찍었니. 


염개미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 인본주의 가치를 좋아한다. 내가 생각하는 르네상스는 낡은 이전 시대의 '몰락'이라기보다 움츠려 있던 자유로운 인간의 정신과 의지가 어두운 골방에서 나와 다시 빛을 보는 듯한 느낌이고, 학문이나 문화 모든 면에서의 고전적 가치가 '부활'하면서 새로운 것들과도 어색하지 않게 잘 마주하는 

그런 느낌이어서. 자연을 인간이 통제하고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본 것은 싫지만, 오백년 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과 21세기 동시대인인 나의 자연은 간극이 매우 클테니. 


"엄마는 뭔가 앞 뒤가 안 맞아.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은 그렇게 좋아하면서 막상 살고 싶은 집은 창문이 크고 밝은 집이잖아. 고딕성에서 당장 살라고 하면 안 살 거면서." 

"엄마가 성에 사는 여왕님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그래. 그리고 상, 하수도 시설 갖춰져 있고, 따뜻한 물 나오고, 책 읽을 수 있게 전기불 들어오면 당연히 고딕성에서 당장이라도 살지, 왜 못 살아." 

"이거 봐, 이거 봐. 온수시설과 전기설비까지 다 되어 있는 중세 성이 어디 있어. 게다가 성이 고딕성만 있어? 바벨성만 해도 그래.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축된 건물이 얼마나 예뻐." 


성 관람하기 싫어서 쭈욱 나온 네 입에서 나온 말이라 수긍하기 싫어진다, 연짱이. 


그래. 창문이 넓고 커서 햇살 잘 들어오니 참 좋기는 하다. 마치 띠벽지 같은 벽 프리즈(FRIEZE) 장식도 잘 보이고. 가치를 메기기 어려운 저런 고퀄의 띠벽지라니. 


'ENVOYS' ROOM.' 

'UNDER THE HEADS ROOM' 이라고도 하는데, '사절단의 방' 쯤 되려나. 1540년에 만들어진 목각부조이며, 19세기 초에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가 20세기 초반 재건되었다고. 목이 아파서 매우 세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꽤 다양한 신분의 남과 여의 머리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장에 박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30개(원래는 194개)의 머리라니.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천장 중 하나라는데, 내가 예술적 소양이 부족해서인지 모르지만, 직접 본 소회는 아름답다기보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왕은 200개 가까이 되는 머리들이 내려다 보는 방에서 다른 국가의 사절단을 만나고 신하들을 접견했을텐데, 어떤 기분이었을까. 늘 대하는 것이라 무덤덤하였을까. 모르긴 해도 왕에게나 신하와 사절단에게나 이 머리들은 무언의 압박은 아니었을까 싶다. "늘 지켜보고 있다(WE ARE ALWAYS WATCHING)"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군주나 신하, 사절단은 독재자이거나 간신배이거나 국익이야 어찌 되었든 내 배만 부르면 족한 배덕한이었을테니. 


포인트 띠벽지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고퀄인 벽 프리즈가 예뻐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 풍속을 담아내었다. 


왕실 예배당(ROYAL CHAPEL). 못 찍은 사진이어서 느낌이 훨씬 덜 할 뿐, 실제 펼쳐진 제단화는 그저 지나칠 수 없는 엄숙함이 스며 있었다.


연짱이 말이 맞다. 이곳이 완벽 고딕 궁전이었다면 창문이 좁아서 자연광이 이토록 충분히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딕 공간에서는 비쳐드는 자연광에 지금처럼 관람 중 잠시 발을 멈추고 바쁜 숨을 고르며, 이 오랜 공간 자체를 고즈넉히 누릴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몇 백 년 동안 한결 같이 이 시간이면 비쳐들었을 비스듬한 오후 햇살도, 햇살과 함께 공기속을 가만 가만히 부유하였을 먼지조차도 참 좋았었다. 


"혹시 이곳도 할로윈 분위기라고 할거야?" 

"나를 뭘로 보는거야, 이 엄마는. 르네상스 공간에서 웬 할로윈을 찾아. 무슨 조명만 호박빛이면 다 할로윈인 줄 알아." 

"오, 넋놓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설명은 열심히 듣고 있었나보네, 연짱이." 


북쪽 건물의 인테리어를 제외하면 대부분 르네상스 양식이라고 하였으니, 천장화는 르네상스화일 것이다. 


'SENATOR'S ROOM' 이라니 '의원실' 혹은 '원로원실' 쯤 되려나. 

바벨성에서 가장 큰 방이며, 이곳에서 궁중행사, 예식, 왕실 결혼식, 연극 공연 및 무도회가 개최되었다고. 그래서 이 방의 다른 이름은 '대연회장(BALLROOM).' 왕의 접견실을 설명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지기스문드 2세의 태피스트리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지기스문드 2세의 태피스트리는 성경적인 장면이나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문장을 묘사하고 있다. 왕의 접견실 중 이 방이 가장 화려하게 느껴졌는데, 아마도 금사로 짜여져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는 태피스트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왕과 신하들이 모여 대관식 같은 왕실 제례도 거행하고, 연회도 하고, 무도회도 즐기고, 연극 공연도 관람하고. 평소에 온갖 점잖은 체는 다 하던 사람들이 또 온갖 치장은 다 하고 와서 여기서 놀며, 남 뒷담화도 하고, 누구 모함할 뒷공작 같은 것도 하고, 뭐 그랬다는 것이구만. 그래. 온갖 암투가 난무하는 궁중에서 살아남으려고 엄청난 공작과 음모와 배신의 중심에 있어야 했을 중세 여왕님의 꿈은 접는 걸로. 엄마는 이상한 시대극을 너무 많이 봤어, 연짱이가 한 마디 보탠다. 뭬야? 


여기서부터는 관람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연짱이가 찍었다. 다시 궁전 앞 마당으로 나왔다. 아치형 아케이드가 있는 긴 회랑은 다시 봐도 예쁘다. 


궁전으로 들고 나는 아치문 입구. 바르톨로메오 베레치(Bartolommeo Berrecci)가 이끄는 석공 그룹이 궁전의 모든 부분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각하였다. 


조각이 예뻐서 연짱이에게 크게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 꽃들도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당시 크라쿠프 국화이거나, 당시 왕조나 유력 가문의 상징화 같은 것일테지. 


왕실 대성당. 

입장하려니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 하는데다 날도 거의 저물던 터여서, 연짱이가 그냥 가자고 얼마나 성화를 하던지. 


바벨 왕실 대성당은 사 백 년 동안 폴란드 왕들의 교회였으며, 거의 모든 왕이 이곳에서 대관식을 치렀다고. 1320 년 폴란드를 통일한 단신왕 브와디스와프 1세(WŁADYSŁAW THE SHORT)의 대관식부터 폴란드 왕족의 대관식, 결혼식, 침례 및 장례식과 같은 중요한 국가 예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소금광산과 궁전관람을 같은 날 하여서 너무 지쳤던 터라 대성당 포함 바벨성 관람을 더는 하지 않았는데, 이곳만큼은 보고 올 것을. 후회는 늘 늦되다. 


왕실 대성당은 역사 유적일 뿐 아니라 여전히 일요일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성당이기도 하다. 뾰족탑, 뾰족지붕, 계단식 뾰족박공, 고딕양식 사랑해요. 동글동글 돔지붕, 르네상스 양식 사랑해요. 


사진이 여러 장인 것을 보니 대성당에 미련이 엄청 많았구나. 저 출입문으로 들어갔다가 입장권 구입 알림글을 보고 연짱이가 화를 냈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여행자의 시간과 주머니는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아낌없이 열리고 할애되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는데도. 


입장했었어야 했어. 흑흑. 


다시 구시가로 걸어나왔다. 날은 청명하고 맑았지만, 바람 불고 추운 날이었다. 하지만 미세먼지 한 줄기 없는 폴란드여서 귀국하는 날까지 호흡기 약한 염개미는 기침 한 번 하지 않았다. 차고 명징한 폴란드의 하늘과 대기가 몹시 그립다. 


크라쿠프 구시가 거리. 


날이 맑아서, 날이 흐려서, 비가 와서, 추워서 크라쿠프에서의 모든 날이 다 좋았다. 사진 오른쪽 멋진 고딕 건물이 마리아 대성당. 마리아 대성당이 있어서 빛나는 크라쿠프 구시가 중심 광장이다. 어떤 날, 어떤 각도로 봐도 멋있는 마리아 대성당. 


엄마가 이 성당을 너무 좋아하니 연짱이가 가까이서 크게 한 장 더 찍어주었다. 원래 고딕 성당이었던 이 성당 역시 개보수를 거치면서 여러 양식이 혼재되었다. 그런들 원 바탕은 고딕이다.  


오늘의 관람을 모두 마치고 부지런히 걸어 숙소로 돌아가던 중, 따뜻한 와인이 마시고 싶어져서 갤러리아 앞 가판에서 와인 한 잔을 주문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알콜 든 음료를 따뜻하게 덥혀서 마시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구마는, 그게 익숙한 청주 아닌 와인이라서 그랬던 건지, 와인과 함께 호록, 들이마신 코 숨으로 기화된 알콜 기운이 훅, 들어와 울컥, 기침이 나오는 바람에 입에 물었던 와인을 다 뿜고 말았다. 다행히 옷에 묻거나 튀지는 않았지만, 대신 얼굴에 와인이 온통 튀어 뜻하지 아니하게 호러영화 엑스트라가 되는 결과를. 연짱이는 매우 당황하였고, 나는 당황을 넘어서서 황당하였다. 사람 많이 오가는 갤러리아 쇼핑몰 마당에서 그것도 통근 시간에 예기치 않은 와인뿜기쇼를 다 시전하시고! 그런 횡액을 치르며 마신 따뜻한 와인은 언 몸을 녹이는데는 최고였지만, 안타깝게도 풍미는 크게 없었다. 


"엄마, 이모한테 사람 붐비는 쇼핑몰 마당에서 사람 왕래 제일 많은 퇴근시간에 엄마가 와인뿜기쇼 했다고 톡했어. 근데 한 동안 톡이 끊겨서 왜 그런가 했더니 이모가 너무 웃느라 답을 못했대. 다음부터는 돈 받고 뿜으래."


흠 . . . 괜찮겠는데. 여행하면서 돈도 벌고. 하지만. 


"엄마가 챙피해."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연짱이 때문에 그냥 여행만 하는 걸로. 

이전 09화 크라쿠프(1), 성(바벨성)에 진심인 편(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