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트르코프스카 거리, 안녕 우치 3
유럽의 겨울은 습하다. 유럽은 겨울이 우기래, 하는 말을 오래 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당황하였었다. 추운데 . . . 그 두터운 외투가 비에 젖는다고? 사시사철 비를 좋아하는 나지만, 그 비란 게 집 안에 가만히 앉아 두 손에 막 내린 진한 커피 한 잔 또는 김 모락모락 올라오는 카모마일 차 한 잔 감싸쥐고서 촤르륵, 빗물이 차바퀴에 감기는 아련한 소리 듣는 게 좋은 것이지. 그 날카로운 비가 울코트에 비스듬히 내려 꽂혀 두툼한 옷을 꿉꿉하게 만들고, 신발 속으로 들어와 발을 질척이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젖은 발과 손과 얼굴과 외투를뻣뻣하게 얼리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 도시의 보도나 갓길 한 켠에 생긴 작은 비 웅덩이 속 함부로 밟혀 구겨지고 찢어진 낙엽 만큼 겨울날 음울하고 시린 풍경이 없는데, 내 눈에는. 그런데 유럽의 겨울이 온통 그런 풍경일 거라니. 하지만. 같은 우기라도 동유럽은 비 대신 눈이 내릴 것이고, 내리면서 얼어붙겠지. 그래서 폴란드 오기 전에는 내심 그저 눈 내려 쌓여 얼어붙은 백색 도시이겠거니, 했었다.
"엄마, 밖에 또 비 와."
"응, 유럽은 겨울이 우기라고 하니까. 추적추적 내리니까 슬슬 다니자."
"좀 우울해, 엄마."
"그러네."
내일 우치를 떠나야 하므로 체류 중 매일 들렀던 마누팍투라 INFO 아저씨에게 인사차 들렀으나, 오전 10시가 채 안 된 이른 시간이어서 아저씨는 출근 전이었다. 마누팍투라에서 이런 저런 관광명소 가는 교통편이나 가는 길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길 잘 못 들까봐 일부러 INFO 밖으로 나와 손짓까지 해주었던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저씨에게 많이 고마웠던 연짱이는 아쉬워하였지만 어쩔 수 있나. 숙소 돌아갈 무렵 다시 들러보기로 하고, 메인거리에도 INFO가 있으니 그리로 가보는 것으로 -- 라고 쓰고 메인거리의 퐁첵 맛집에 들러보기로, 라고 쓴다 -- 하였다. 연짱이 선정 우치 퐁첵 맛집에 들르니 어제의 언니가 아닌 웬 오빠가 있었다. 연짱이가 하도 좋아해서 나도 하나 사먹어봤는데, 달지 않고 식감도 부드럽고 참 맛있었다.
어제 찾다 기어코 못 찾은 '뎅트카' 위치를 물어보러 메인거리 INFO 에 들렀는데, 그곳 INFO 오빠가 매우 박식하였다. 그 덕분에 '뎅트카' 는 겨울에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개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유대인 묘지는 매우 아름다우나 토요일에는 개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결론은 토요일 우치에는 갈 만 한 곳이 없다는 것. 슬퍼하는 우리를 위해 INFO 오빠는 유대인 교회를 추천해주었는데, 교회는 행사가 있을 때만 열지만, 미사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는 부연설명도 해주었다. 우치에도 매우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나치 이후 그 규모가 매우 축소되어 지금은 정말 작은 커뮤니티만 존재한다고. 그의 말대로 제 2차 세계대전 이 전 우치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그래서 '우치 게토' 라고도 불리는 '리츠만슈타트 게토(LITZMANNSTADT GETTO)' 에는 당시 2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게토 바로 옆에는 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라데가스트 역(RADEGAST STATION)이 있었다. 우치를 여행동선에 넣을 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여행 초반부터 그 비참한 역사를 마주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아서 가보지는 않았다. 염개미는 원래 감정이입이 매우 잘 되는 유형의 사람이어서 여행 내내 정서가 완전히 가라앉은 채 다니게 될까봐 몹시 두렵기도 하였고, 크라쿠프 체류 중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과 비르케나우를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 때까지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비축해두기로 하였다. 지금의 유대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이지 일말의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건 지금 얘기고, 그들이 나치정권에 당한 일들은 실제 역사적인 비극인 것은 분명하므로.
가는 비 내리는 우치는 추웠고 온통 회색이었다. 동유럽의 겨울이 음울하다고 말하는 건 낡고 보수되지 않은 건물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도 있지만, 많은 부분 이러한 날씨 때문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으며 다시 메인거리로 돌아왔다. 내일은 우치를 떠나야 해서 메인거리 동상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곰돌이 이름은 미스 우샤텍(MIS USZATEK). 곰돌이 우샤텍.
폴란드 TV 애니메이션 캐릭터란다. 연짱이는 곰돌이의 접힌 귀가 너무 귀엽다며 한참을 쓰다듬었다. 오동포동하고 짧막한 팔 다리와 뽈록 배가 예뻤다. 우리 연짱이도 불과 십 년 전에는 저랬는데.
율리안 투빔(JULIAN TUWIM).
'오들렌(OLDLEN)' 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알려진 폴란드를 대표하는 유대계 폴란드 시인이시다. 1935년 폴란드 계관시인으로 임명되었으며, 도회적 일상생활을 일상적인 언어 -- 다른 말로 속어 혹은 지역 사투리 -- 로 쓴 시와 풍자시가 대표적이라고. 묘지는 바르샤바에 있다. 그의 시 중 쉬운 것을 골라 한 편 읽어보았다. 나는 폴란드 말을 모르니 할 수 없이 영어로 된 2차 번역본을 읽어야 한다.
안경
Glasses
율리안 투빔
by Julian Tuwim
Mister Hilary runs and screams:
“Where on Earth could my glasses be?”
힐러리 씨가 뛰어 다니며 소리질렀어:
"도대체 내 안경은 어디간거야?"
He checks in his pants and in his frock,
In his shoes, and in his socks.
바지 속도 프록 코트 속도 살펴보았지
신발 속도 양말 속도.
Closet? Upturned, in a sorry shape,
He pats his robe, already patted his cape.
서랍? 뒤집어봤지 볼품 없었지만,
가운을 두드려보고, 망토는 벌써 해 봤어.
“A scandal!” he yells, “it’s beyond belief!
To have my glasses—stolen by a thief!”
"남부끄럽기도 하지!" 그는 외쳤어, "믿을 수 없어!
내 안경을 가져가다니--도둑이 훔쳐간거야!"
Under the couch, on top of the seat,
Everywhere he pries: wheezing, beat.
소파 밑, 의자 위,
온갖 데를 다 샅샅이 뒤졌어: 씩씩거리는 심장고동.
He looks in the oven, and up the chimney,
In mouse holes and between piano keys.
그는 들여다 봤어 오븐 속도, 굴뚝 위도
쥐구멍도 피아노 열쇠 사이도.
He'll rip up the floor, piece by piece,
Already he wants to call the police.
마루바닥을 뜯겠지 한 쪽 한 쪽씩
벌써 경찰을 부르고 싶어하잖아.
Then suddenly he peeks into the mirror…
He can’t believe it… He draws nearer.
그러다 갑자기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 . .
세상에 . . . 더 가까이 다가가네.
Eureka! Though who would ever suppose,
His glasses are on his very own nose.
유레카! 누가 생각이라도 했겠어,
그의 안경이 바로 그의 코 위에 있었다는 걸.
Okulary
Julian Tuwim
Biega, krzyczy pan Hilary:
"Gdzie są moje okulary?"
Szuka w spodniach i w surducie,
W prawym bucie, w lewym bucie.
Wszystko w szafach poprzewracał,
Maca szlafrok, palto maca.
"Skandal! - krzyczy - nie do wiary!
Ktoś mi ukradł okulary!"
Pod kanapą, na kanapie,
Wszędzie szuka, parska, sapie!
Szuka w piecu i w kominie,
W mysiej dziurze i w pianinie.
Już podłogę chce odrywać,
Już policję zaczął wzywać.
Nagle zerknął do lusterka...
Nie chce wierzyć... Znowu zerka.
Znalazł! Są! Okazało się,
Że je ma na własnym nosie.
CHILDREN'S CLASSIC에 실린 시라니 아이들 동요처럼 읽히는 시인가 보다. "그렇게 찾아헤매었던 안경이 내 코에 얹혀 있었네 그려." 등잔 밑은 늘 어두운 법이고, 그보다 더 흔한 건 무슨 일이든 무조건 남탓하는 것이겠고.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WŁADYSŁAW REYMONT).
1924년 'CHŁOPI(THE PEASANTS 농민)'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님이시다. 문학이나 글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집안 출신이어서, 젊어서는 그냥 그런 재단사로 먹고 살다가 그런 삶이 싫어 유랑극단으로 도망쳤으나,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다시 돌아와 철로 건널목지기로 먹고 살기도 하고, 독일인 강신술사와 함께 다니며 영매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고. 그의 전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도덕(MORAL).' 이 분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던 해에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작가들이 정말 후덜덜한 수준. 토마스 만(THOMAS MANN),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막심 고리끼(MAXIM GORKY) 같은 쟁쟁한 이들을 제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니, 어휴. 얼핏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생활을 하였던 것은 레이몬트나 고리키나 비슷해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국가, 어떤 민족, 어떤 상황에서도 천재는 태어나는구나 싶다. 토마스 만은 결국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여행을 하면서 폴란드가 좋았던 이유들 중 또 하나가 이처럼 문학가, 사상가, 음악가, 과학자들을 골고루 배출하였다는 점이었다. 저력있고 근면하며 똑똑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여행 내내 했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숙소 주인들 중에는 국가관이 음울해보이는 사람도 있어서 좀 안타깝기도 하였다. 많은 자부심을 가져도 돼, 폴란드 언니, 오빠들.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
미국으로 귀화한 우치 출신 피아니스트다. 이거 봐. 문학이면 문학, 예술이면 예술, 과학이면 과학, 어느 한 곳으로 치우지지 않고 골고루 똑똑한 민족. 폴란드가 배출해 낸 불세출의 음악가는 쇼팽만 있는 것이 아니다. 쇼팽을 너무도 사랑하는 폴란드 사람들은 바르샤바공항이름도 '프레데릭 쇼팽공항' 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만약 우치에 공항이 있다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공항' 이라고 이름 지었을지도. 아,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공항' 이라고 지었으려나?
이 사진은 사실 인고의 기다림을 통해 얻은 것이다. 연짱이는 사람을 부르는 행운의 아이여서 아이가 사진을찍으려고 다가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어댔다. 그렇게 몰려든 사람들이 계속 먼저 끼어들어 밍기적거리면서 오래 앉고 서고 온갖 포즈를 다 잡으며 사진을 찍는 통에 연짱이는 분통을 터뜨렸었다.
근데 루빈스타인은 얼굴이 코 밖에 없나. 사람들이 코만 만져서 아주 반짝반짝. 코가 반짝이면 출세한다는데 여윽시 루빈스타인 오빠.
악보 좀 보는 어린이 연짱이가 넘겨드릴 수 없는 딱딱한 악보. 문득 궁금해진다. 저 악보 한 페이지에 그려진 곡은 그의 수 많은 곡 중 어떤 것이었을까.
높은음자리표 의자는 보기에 예쁜 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앉기만 하면 루빈스타인 같은 어마어마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마법의 의자다. 훗, 거짓말이다.
도대체 식수대에 꼭 이렇게 어린 아가들을 앉혀놔야 했을까나. 볼 때 마다 만날 때마다 마음 불편하였다. 이 식수대를 따뜻한 봄날이나 더운 여름날 봤더라면 아고, 예쁜 아가들, 하며 웃었을테지만, 지금 같은 한겨울에 만나는 어린이들의 맨발 맨손은 아무리 동상이어도 마음 아팠다.
맨손 맨발의 아가들. 거기다 또 쪼그려 앉아 있어 왜. 쯧.
염개미는 저개발 국가 어린이를 1:1 후원하고 있다. 7살 때부터 후원하던 미얀마 '아웅'이가 커서 학교를 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아이티 '레베카'를 후원하고 있는데, 해마다 조금씩 커가는 아가들 보는 기쁨이 참 크다.
혼인만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역시 때가 있다. 더구나 저개발 국가처럼 교육의 기회 자체가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 수도 있는 곳에서라면, 당연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혹은 마음 속에 피어난 배움에 대한 열망이 생활에 찌들어 꺼지지 전에, 하루라도 빨리 교육열에 불붙여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배움은 배우고 싶은 마음이 절실할 때가 적기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나마 교육의 기회가 흔하고 쉽게 주어지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얘기인거다. 세상 모든 저개발 국가 아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어 최소한 그 부모세대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점심을 먹고 다시 메인거리로 돌아와 한참을 걷다가 연짱이의 우치 원픽 퐁첵집으로 향하였다.
연짱이 선정 우치 퐁첵 맛집.
안타깝게도 겨울에는 로디를 팔지 않지만, 퐁첵만으로도 충분한 집이다. 비싼 퐁첵 체인점 '퐁츠카르니아' 보다 훨씬 맛있고 달지 않고 식감 훌륭한 퐁첵을 만들어 판다. 폴란드 다른 도시들 다니면서 이 집 만큼 맛있는 퐁첵을 파는 집은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했다.
오늘은 언니가 있구먼. 아메리카노 달라고 하면 내 입에 에스프레소보다 아주 약간 연한 사약 한 사발을 준다. 하지만 가격대비 이만한 퐁첵과 커피집도 없지 싶다. 아, 지금 연짱이가 한 마디 첨언을 한다.
"이 퐁첵집의 치명적인 단점은 절대 따뜻한 것을 팔지 않는다는 거야. 어쩌면 이 집에서 퐁첵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닌지도 몰라. 아, 아니면 내가 퐁첵을 갓 만들어낸 시간을 피해 간 거였나? 아무튼 그래도 다시 우치 가면 나는 무조건 이 퐁첵집에서만 퐁첵 먹을거야. 최고 맛있었어."
흐리고 점점이 약한 비 내리는 추운 우치가 슬펐다. 정 들자 이별이다.
가는비에 젖은 우치 메인거리. 깔끔한 우치라 음울하지는 않았다.
비내리고 흐린 우치 메인거리. 저물고 있다. 우치의 거의 모든 볼거리는 메인거리 상에 모여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우치는 마누팍투라보다 피오트르코프스카(PIOTRKOWSKA).
어느 새 오후 4시. 동유럽 겨울의 짧은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었다. 아쉽지만 우츠 마지막 날을 그만 접기로 하였다. 마누팍투라 INFO 아저씨에게 그 동안 고마웠노라, 인사를 하고 싶었던 마음 착한 연짱이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마누팍투라에 들렀다 가자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번에는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부재 중이었다. 아쉬워하는 연짱이를 위해 서서 기다렸지만, 아저씨가 언제 돌아올 지 알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숙소 가는 트램을 타러 발길을 돌렸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요.
우치는 이 번 여행 첫 도시이면서 4년 만에 대해본 동유럽 여행 첫 도시여서 어리바리하기도 했고, 여행 계획 막바지에 넣은 도시였던 터라 그만큼 준비도 어설퍼서, 약간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그단스크와 함께 다녀온 후 여운이 가장 많이 남은 도시였다. 우치 체류 마지막 날이 하필 토요일인데다 여행시기까지 한겨울이어서 대부분의 볼거리들을 놓친 것이 안타까웠지만, 연짱이와 비 내리는 메인거리를 산책하고 동상들을 만난 것으로 만족한다.
폴란드 첫 도시로 우치를 택한 건 이 번 여행 중 최고 최선의 선택이었다. 우울한 겨울 동유럽 폴란드의 어두운 면이 아닌 폴란드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밝은 면을 우리에게 보여준 우치여서, 이후 도시들에 대한 기대로 마음 부풀게 해주었으니. 연짱이는 이 도시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여 다음 번 폴란드 오면 한 번 더 들르고 싶다고. 한 번 더 들르게 될런지 알 수는 없지만, 여유롭고 깨끗하고 활기찬 사람들이 사는 우치가 나도 참 좋았다. 크라쿠프처럼 볼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매우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도시 우치가 이 모습 그대로
유지되길 바란다.
피부에 들러붙지 않는 여름 패브릭처럼 찹찹한 단정함으로 기억되는 참 좋은 곳. 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