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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1), 공장의 도시

마누팍투라(MANUFAKTURA) 그리고 약국박물관 가는 길 1

우치는 염개미가 처음 폴란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계획서 1안에는 없는 도시였다. 여행동선을 짜고 여행자료를 모으면서, 입국 도시 바르샤바에서 두 번 째 여행 도시 크라쿠프까지 기차로 7시간이나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우치를 여행 동선에 넣은 이유였다. 여행 초반부터 이동하다 지칠까봐 걱정이 되어 두 도시 사이 중간 기착지 정도로 출국 일주일 전 여행 계획에 넣은 곳이 우치였다. 


출발 전 급히 알아본 바, 우치는 바르샤바, 크라쿠프에 이어 폴란드 제 3의 도시로 일종의 행정도시처럼 필요에 의해 일부러 만들어진 규모 큰 도시라고. 우치는 폴란드 역사 속에서는 신생도시로 분류되고 있고 -- 폴란드 사람들의 입장에서나 신생도시이지 생긴 지 거의 200년 가까이 된 도시였다.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를 신생도시라고 부르는 폴란드의 패기가 멋있었다 -- 예전에는 텍스타일(섬유방직)산업으로, 지금은 영화산업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은 윤택해 보였다. 우리처럼 일부러 우치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아마도 손에 꼽을 터이겠지만, 우리나라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이 꽤 많이 사는 동네라고.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우치를 대표하는 마누팍투라(MANUFAKTURA)는 19세기에는 섬유 방직공장이었으나, 섬유 방직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그 어마어마한 부지는 21세기 현재 이를테면 종합 쇼핑 컴플렉스가 되었다. 


연짱이와 마누팍투라에 가보기로 하였다. 호기롭게 숙소를 나선 것까지는 좋았는데 열쇠가 맞지 않아 문을 못 잠그는 난감한 상황이 생겼다. 나도 연짱이도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마침 댁에 들어가시려던 옆집 할머니께서 등장하셔서 우리 열쇠를 받아드시고는 이리저리 돌려보시더니 결국 문을 잠궈주셨다. 


"인 줘 봐, 그 열쇠. 답답하게 그걸 그렇게 못 잠그나 사람들이 . . . 아니, 이게 왜 이래."  

"할머니, 괜찮아요, 저희가 할게요." 

"뭘 너희가 해. 내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데 문 잠그는 건 눈감고도 하지, 내가.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 . . 해서 . . . 이 쪽으로 . . . 거 봐 잠겼고만."   


서로 할머니는 폴란드 말을 나와 연짱이는 우리나라 말을 하였지만, 무슨 말인지 우리도 할머니도 다 알아들어서 할머니도 우리도 같이 빵, 터졌다. 너무 너무 재미있고 감사하였다. 다음 날 집 나서는 길에 창문 블라인드 걷으시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와 연짱이가 크게 손을 흔들자 같이 손 흔들어주시고, 함박 웃어주셨다. 이 번 폴란드 여행 중 가장 유쾌한 이웃이었다. 


"마누팍투라는 몇 번 째 역에서 내려야 하지?" 

"엄마, 여기 아저씨가 내릴 때 되면 알려주시겠다는데. 러시아어, 독어까지는 하시는데 영어만 못하신대." 

"엥? 폴란드 말 같은데 연짱이는 그걸 알아들었어?" 

"응, 눈치로 다 알아들었어." 


러시아어, 독어까지는 하는데 영어만 못하신다는 할아버지와 트램 내 승객들이 말과 손짓, 눈빛으로 도와주어서 무사히 마누팍투라에서 내릴 수 있었다. 고맙고 신기한 동승객들이었다. 


폴란드 본격 여행 첫 도시 우치의 첫 방문지 마누팍투라에 도착하였다. 


우치 마누팍투라. 꽤 쌀쌀한 겨울날 푸른 잔디를 심고 분수를 가동시키는 마누팍투라의 패기. 


마누팍투라에는 쇼핑몰부터 음식점, 스포츠 짐, 오락시설, 박물관이 각각의 건물 형태로 들어서 있었고, 부지 마당 한 켠에는 작은 스케이트장도 있었다. 며칠 우치 날씨가 온화하였는지 처음에는 알록달록 예뻤을 얼음장식은 안타깝게도 녹아 깨져 있었다. 칼바람 부는 혹독한 날은 아니었어도 제법 추운 날이었는데 분수를 가동시키고 있었으며, 우리나라 겨울날 흔히 보이는 누렇게 죽은 잔디가 아닌 푸른 잔디밭이 거짓말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놀랐다. 추운 나라 식물들은 한겨울 웬만한 추위는 끄덕없이 견디나 보다, 그랬다. 


우리나라 만큼은 아니지만 폴란드 여느 도시 구시가나 번화가에도 서울 도심에서처럼 스타벅스가 꼭꼭 입점해 있었다. 20세기 후반 이후 개인직업군이 증가하고, 그에 따른 단기임대업의 필요라는 시대의 흐름과 요구를 하워드 슐츠 만큼 잘 이해한 이가 있을까. 하지만 브랜드를 입고 먹고 타는 것이 21세기 주요 소비패턴으로 자리잡으면서, 스타벅스가 브랜드 마시기의 대표 주자가 되리라는 것은 그 조차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브랜드를 마시든 공정커피를 소비하든, 21세기의 모든 소비행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선택의 주체인 개인은 바쁜 도시 생활 속에서 향수만 남은 북적이는 가족공동체 대신 같은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에서 일종의 소속감과 동료의식 그리고 위안을 찾는다. 그렇게 21세기의 브랜드 소비문화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으로 자리잡으며 날마다 공고해지고, 그래서 스타벅스는 오늘도 철옹성이다. 


우치 오면서 궁금해하였던 약국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사실 폴란드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우치에도 유대인 게토 관련 장소가 있다는 것을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우치에는 당시 폴란드 곳곳의 강제수용소로 유대인들을 보낸 곳으로 악명 높았던 라데가스트 역(RADEGAST STATION)이 있다. 하지만 여행 초반임을 핑계삼아 무겁고 암울하고 아픈 역사는 크라쿠프로 잠시 미뤄두기로 하였다. 


약국박물관은 우치 메인거리 피오트르코프스카(PIOTRKOWSKA) 초입에 위치해 있고, 마누팍투라에서 메인거리까지는 도보로 충분히 갈 만한 거리여서 구글맵을 켜고 피오트르코프스카(PIOTRKOWSKA)로 향하였다. 피오트르코프스카 거리 들어서기 전 약국박물관 앞에는 자유광장(LIBERTY SQUARE)이 있고, 그곳에 길치 염개미가 랜드마크로 삼기 적절해 보이는 동상이 있다. 


자유광장에 세워져 있는 타데우쉬 코스치우쉬코(TADEUSZ KOSCIUSZKO) 동상. 


자유광장에 있는 동상이라서 1920년대 폴란드 독립과 관련이 있는 인물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는데, 틀렸다. 1794년 러시아군을 상대로 한 라츠우비체(RACŁWICE) 전투에서 농민군을 승리로 이끈 폴란드 최고 혁명가라고. 재미있는 것이 이 혁명가는 미국독립전쟁과도 큰 관련이 있었다. 사라토가, 티콘더로가 전투에서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승리하는 데 꽤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동학운동도 첫 시작은 농민봉기였지 않나. 우리 녹두장군 님도 생각나고, 다른 나라의 투쟁을 지원했다는 점에서는 좀 멀긴 하지만 체 게바라도 생각나고. 


폴란드는 '유독' 외세에 의한 부침을 많이 겪은 국가라고 알고 가서 그랬는지, 겨우 한 달 동안이지만 이 나라 여행을 하면서, 나는 폴란드와 폴란드 사람들에게 뭔가 감정이입을 많이 하면서 다녔던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대부분의 중부유럽이나 발칸국가들 사정이야 중세 말 이후부터 죽 거의 비슷했겠지만, '유독 부침이 많은' 폴란드라며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아마도 '저항'과 '재건' 이라는 내 나름의 키워드로 폴란드를 해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 개의 단어를 품은 이 나라. 내 나라가 품은 것과 같은 키워드를 품은 이 나라가 내 심금줄 한 가닥을 툭, 건드린 듯 싶었다. 폴란드가 다른 동유럽 국가들 다 제치고 그 지역 맹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행 내내 하였다. 


우치 메인거리 피오트르코프스카는 왼쪽 정교성당(ORTHODOX CHURCH)인 노란 건물과 오른 쪽 옆 약국박물관 사잇길로 가면 바로 나온다. 정교성당 건물에 우치민속박물관도 있다. 


사진 속 오른쪽 건물 한 켠에 약국박물관이 깃들어 있다. 


매우 유럽다운 정취를 가졌으며 세계에서 가장 긴 상업거리(4.2KM)로 손꼽힌다는 우치 메인거리 피오트르코프스카(PIOTRKOWSKA). 전형적인 유럽 정취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추운 날씨에도 걷는 것이 나쁘지 않을 만한 거리였다. 하지만 내내 걷기에는 좀 긴 거리여서 다음 날 끝에서 끝까지 걷느라 꽤 힘들었다. 


날이 흐려서 잘 안 보이지만 우치에서 유명한 점등원 동상. 

'메리 포핀즈' 를 본 사람은 점등원이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지 알 것이다. 우치의 이 점등원 동상은 우치 전기 가로등 설치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 9월 세워졌다고. 지금 점등원 동상이 있는 이 자리에서 낡은 가스등 대신 전기 가로등이 최초로 밝혀졌다는데, 그렇게 안 보이지만 이 오빠 무게가 어마어마하시다. 조금 늦었지만 해피 뉴이어, 무게 1톤 넘는 점등원 오빠. 


우치가 텍스타일 산업으로 잘 나가던 시절의 세 공장주들. 유대계 독지가이자 기업가인 이즈라엘 포즈난스키(ISRAEL POZNANSKI). 헨릭 그로만(HENRYK GROHMAN). 그리고 기업가이자 예술후원가 카롤 스헤블레르(KAROL SCHEIBLER).  


"엄마, 약국박물관 보러 온 것 아니었어? 이 거리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다시 돌아나오는 시간까지 생각해야 돼." 


연짱이는 여행 내내 길찾기는 물론 거리와 소요시간까지 함께 일깨워주는 성실한 네비게이터였다. 쌀쌀한 날씨의 우치 메인거리는 매우 운치있었지만, 원래의 목적지는 약국박물관이었으므로, 더 많은 운치는 다음 날로 미루고 약국박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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