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낮의 므락우, 자전거 산책

우물 가, 새침데기 미스 므락우 

"엄마, 이 번에 미얀마 가면 자전거 탈 수 있어?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할거야?" 

"너네 엄마 새해맞이 대청소하다가 허리 작살 났잖아, 어린이. 너무 한 거 아니냐?" 

"쳇."

"먼지 없는 환경에서 살게 해주려고 무리하며 청소하다가 다친 엄마를 부양하지는 못할 망정 쳇, 이라니. 이런 배은망덕 어린이를 봤나. 동네 사람드을!" 

"쳇, 쳇, 쳇. 엄마가 무슨 심봉사야?" 


허리 아파서 복대 생활 중인 늙은 노모를 불쌍히 여겨주지는 못할 망정, 웬 행패야, 투닥거리다 무슨 상황극이 이러냐며 웃는 연짱이 때문에 상황 종료. 키 작고 팔 짧은 엄마 대신 닿지 않는 곳 구석 구석 쌓인 먼지를 털어주고, 다친 허리 때문에 경련이 일어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물러주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부축하여 병원을 오간 건 모두 연짱이였으니, 심봉사 부양한 심청이 맞네. 


"그래, 자전거 타자. 엄마가 복대 두 개 두르면 돼." 

"야호!"  


아이가 처음 자전거 타기를 익힌 것은 첫 미얀마 여행 중일 때였다. 샨 주 인레 체류 중이었는데, '마잉따욱' 이라는 수상 마을을 가려면 자전거는 선택 아닌 필수여서 전 날 갓 익힌 자전거를 타고 인레에서 마잉따욱을 다녀왔다. 사고는 다음 날 인레 동네 한 바퀴를 하다가 일어났다. 유독 잔돌이 많은 모래길 위를 달리던 중 아이가 잡은 핸들이 삐끗, 틀리면서 넘어졌는데, 거친 길바닥에 몸을 온통 쓸리는 바람에 찰과상이 심해서 아이의 긴 팔 윗옷과 칠부 바지는 구멍이 났고, 쓸린 상처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아이는 자전거 안장에서 일직선으로 튕겨져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빨래감처럼 바닥에 널부러졌다. 그 모습이 마치 TV에서 생중계된 로켓 발사 장면의 슬로우 모션 녹화본 같다고 느껴진 순간, 시야는 까맣게 암전되고, 무대 위 스팟라이트를 혼자 받는 배우가 된 것 같은 비현실적인 감각이 나를 꽉, 묶었다. 코 앞에 다친 아이를 두고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암전과 스팟라이트를 깬 것은 어디선가 뛰어 온 미얀마 사람들이었다. 아마도 주변 밭에서 일을 하던 가족이었을 것이다. 아주머니는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연짱이를 일으켜 세운 뒤 목에 걸고 있던 수건으로 흙과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주셨고, 아들로 보이는 이는 엉망인 자전거를 이리 저리 손 보고 어느 결엔가 빠져 버린 체인을 고쳐서 조심스럽게 내 옆에 세워주었으며, 아저씨는 얼빠진 내게 손짓, 발짓으로 달구지에 자전거를 싣고 숙소까지 데려다 주시겠다고. 십 여 년 전 당시에도 인레는 '미얀마 국민 코스'라고 불리는 관광지 중 한 곳이어서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 요금이나 되바라진 상술, 선의를 가장한 댓가 요구가 비교적 흔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순수한 선의는 꽤 이례적이었다. 나는 원래 여행에서 만났든, 일상에서든 사람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지만, 단 한 올 사심 없는 그들은 결국 인간을 믿지 않는 나를 울게 하였다. 그 때 연짱이는 중 1이었다. 


다 커버린 연짱이는 여전히 자전거 타는 것에 진심이다. 므락우 구석구석을 누빌 기대에 아이는 출발, 을 외치며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분명 출발은 함께 하였는데, 금세 아이는 점 만큼 작아지더니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고, 나는 문득, 무서워졌다. 미얀마 첫 여행 때처럼 어딘가에 자전거와 함께 엎드러져 피 흘리며 울고 있을까봐. 연짱아, 부르는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렸다. 


"엄마, 엄마, 엄마, 빨리 와 봐."  

"너 어디 있는데. 어, 염소가 길을 막고 있는데 괜찮을까? 좀 무서운데." 

"어휴, 엄마, 염소들이 엄마를 무서워 해야지. 그리고 염소 있는 쪽 아니고 위쪽이야. 빨리 와."  


누군가의 허름한 창고. 아낙은 무언가를 엮고, 염소는 풀을 뜯고, 호수는 아침 햇빛에 반짝였다. 아름드리 큰 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은 연을 띄우고, 조곤조곤 소꼽놀이를 하고, 바람만 솨아, 소리를 내며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갔다. 


더 예쁠 것도 더 특별할 것도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미동 없이 잔잔한 호수에 고여 있었다. 꾸미지도, 더하거나 빼지도 않은 누군가의 담담한 진심을 형상화할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이곳을, 므락우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오전 볕 내리는 므락우 일상 풍경 속에 내 아이가 같은 색으로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어 있었다. 내 성정처럼 자주 파닥이고 늘 요동치는 일 없이 내 아이의 전 생애는 안온하고 평화롭기를 마음 깊이 기도하였다. 


캄보디아와 미얀마 몇몇 관광지에서 아이들이나 아낙들은 사진을 찍히면 당당히 돈을 요구하였다. 관광객들이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다 쉽게 찍고 싶은 마음에 자신들이 원하는 포즈를 취하게 하고 푼돈을 쥐어준 것이 이를테면 일종의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관광객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작은 돈은 아주 간단하고 저항감 없이 그들을 길들였다. 나처럼 인물 사진을 찍고 싶어하지 않는 이에게까지 다가와 피사체가 되어줄테니 돈을 내라고 강요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 므락우에서는 이상한 아줌니가 놀이에 참견을 하며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형아들은 바람 부는 타이밍에 딱 맞춰 연을 띄우는 게 훨씬 중요하고, 조무래기 동생들은 돌맹이 놀이에 진심일 뿐이다. 


"얘들아, 아줌마도 연 잘 날린다. 한 번 볼래?" 


엄격한 형아들은 모르는 아줌니에게 절대 연을 주지 않는다. 


연 날리기에 실패한 형아들은 재빨리 퇴장하였다. 히힛, 그래도 즐겁다. 


"엄마, 이 동네 아이들은 매일 저런 풍경을 보면서 자랐을 것 아니야. 와, 바간에서 유적이 옆 집인 아이들도 부러웠는데, 이 아이들도 부러워." 

"그냥 숨 쉬고 물 마시는 것처럼 매일 보면서 살아서 무감각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경주 사는 사람들도 매일 보는 게 8세기 유적 다보탑, 석가탑, 목탑이고, 집 앞이어서 놀았던 데가 왕릉이고, 그게 일상이어서 그러려니 한다던데. 저 형아들도 내려다 보이는 호수가 예뻐서가 아니라 이 언덕이 바람이 가장 잘 부는 데여서 여기서 연을 날리는 거잖아. 하지만 다른 도시로 가게 되거나 영구적으로 이 동네를 떠나게 되면, 반짝이던 아침 호수, 연 날리던 언덕,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소중한 줄 모르고 놀던 큰 나무 그늘이 어느 날 문득, 그리워지겠지. 그런 사람들 중에 시인이나 작가가 나올 확률도 더 높고."  

"어, 그럼 저 아이들 중에 미래의 시인이나 작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오! 사인이라도 미리 받아놔야 하나?" 


하지만 먹고 사는 게 너무 팍팍하고 힘겨워 강팍해진 마음에 그런 그리움과 자각의 순간들은 너무 찰나이거나 혹은 너무 늦게 찾아올지도 몰라, 하는 말은 어린 연짱이 앞에서 꿀꺽, 삼켜졌다. 


"그럴 지도 모르지. 저 아이들 중에 미래의 유명 작가나 유명 화가가 꼭 있으면 좋겠다." 


조무래기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언덕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 계속 자전거를 타고 가니 마을이 나왔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집들이며, 대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며 정겹고 정갈하기 그지 없었다. 대문 사이로 슬쩍 보이는 살림살이는 손때 묻었으나 깨끗하였다. 참 한없이 예쁜 동네였다. 


"엄마, 이 동네 사람들은 깔끔하고 부지런한가 봐. 울타리 보여? 기울어지거나 부서진 데가 단 한 군데도 없고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 한 조각 안 보여." 

"그만큼 사는 데 여유가 있나 보다. 친족 마을 사람들은 생계가 힘겨우니까 환경에 신경을 쓸 여유도 마음도 없잖아." 

"그럼 쓰레기 함부로 버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데? 이 동네 사람들이 불꽃 축제 보러 놀러 나온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부유하겠어? 그냥 이 동네 사람들이 깔끔한 거라고, 이건." 


아마도 엮어 세운지 꽤 오래 되었을 대나무 울타리들. 관리가 참 잘 되어서 동네를 돌아다니는 내내 쓰러지거나 기울어진 울타리 하나 못 보았다. 


오른쪽은 동네 공동 우물 입구. 우물 입구라 물이 고여 있을 뿐, 미얀마 다른 곳에서는 종종 보였던 쓰레기와 함께 고여 썪고 있는 작은 웅덩이 하나 없는 동네였다. 우리나라에서 우물은 연짱이처럼 어린 세대는 물론 나이 든 내 세대에게도 마치 유형문화재처럼 느껴질 만큼 옛 것이다. 몇 십 년 전 수몰 되어 없어진 우리 할머니 친정 동네 어귀의 우물터를 나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어두운 우물 속은 돌벽에 짙은 이끼까지 자라나 무서우면서도 신비로운 이미지로 내게 각인되어 있다. 깊고 푸른 어둠 속으로 나무 두레박이 퉁, 떨어질 때 들리는 차갑고 맑은 물소리는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이어서, 어떡해서든 우물 안을 들여다 보려다 어른들에게 눈물 쏙, 빠지도록 혼나고는 했었다. 그만큼 내 기억 속 우물은 철저히 어른의 영역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우물의 영역에 속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슬프게도 그런 나를 우물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더는 볼 수 없는 우물을 미얀마에서 만나다니, 벅차도록 반가워 가슴이 뛰었다. 


미스 므락우를 만난 곳도 이 동네 우물가였다. 위 아래 잘잘한 무늬가 들어간 초록색 론지를 맵시나게 차려 입고 얼굴에 타나카를 곱게 바른 언니가 주석 물동이를 들고 사뿐사뿐 걸어가길래 어딜 가나 싶어 봤더니 우물이었다. 


"어린이, 이리 와 봐. 세상에, 동네에 우물이 다 있네. 우물 처음 보는 거지? 근데 우물에 덮개가 없어도 괜찮나? 우물 안은 보통 너무 깊어서 작은 아이들한테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우물 돌벽도 어른 가슴 높이 정도로 꽤 높고 꼭 덮개가 있어야 하는데."  

"이 우물은 덮개도 없고, 돌벽도 아주 낮아, 엄마.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엄마가 알기로는 그래. 아이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술 취한 어른에게도 깊은 우물은 위험해. 그러니 아이들은 우물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어른들한테 들키면 엄청 혼나지." 


나와 연짱이가 떠들고 있는 중에도 미스 므락우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주석 물동이에 채워넣고 있었다. 물동이가 작아서인지 여러 번 우물을 오가며 물을 길어 날랐는데, 그 많은 물을 길면서도 고운 입성에 물 한 번 튀는 법 없던 아주 물긷기 선수였다.  


"엄마, 저 언니 초록색 론지도 예쁘고, 새침한 표정 정말 귀엽다. " 

"그러게.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한 번 물어볼까?" 

"엄마는 내 사진 말고 남의 사진 거의 안 찍잖아. 언니가 그렇게 예뻐?" 

"어, 물도 너무 잘 긷고 진짜 예뻐." 


미스 므락우 언니, 물 정말 잘 긷네요. 너무 예뻐요.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손짓 발짓 불쌍한 표정 모두 동원하였는데도, 미스 므락우는 새침하게 웃으며 획,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래도 물 긷는 뒷 모습은 사진 찍도록 두어서 뒷 모습만 겨우 한 장. 새침하기로는 나도 어디 가서 지지 않는데. 새침데기 미스 므락우. 나와 연짱이가 물맛이 어떤지 매우 궁금해하였더니, 주석 물동이에 물을 길어 담던 플라스틱 용기는 두고 갔다. 우리나라 우물은 나무로 만든 큰 두레박이 우물 입구에 걸려 있는데, 므락우에서는 모두들 플라스틱 개인 두레박을 지참하고 와서 물을 긷는다.   


내가 알고 있는 우물과 많이 다른 므락우 우물. 우물 안은 당연히 깊을 것이라는 내 상식을 깬 형태여서 한 번 놀랐고, 미지근하고 찝찌름한 물맛에 두 번 놀랐다. 우리나라 우물물은 당연히 지하수이기 때문에, 매우 차갑고 물맛이 단 게 특징인데, 므락우 우물물은 마치 그리 깊지 않은 강물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미얀마 전역에서 므락우만 그러한지, 지하수의 개념이 우리나라와 달라서인지, 혹은 토질의 차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미스 므락우가 다시 돌아와 한 번 더 우물물을 길어가기를 기다렸지만, 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잊고 있었던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거의 4시간 가까이 자전거를 탔으니 이제 그만 봐 줘, 연짱이를 달래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떤 점심을 먹었더라? 

이전 06화 친족 마을 투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