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먹을거리, 익숙하고 낯설고
어제의 식당에 들어서니, 어제의 식당 소년이 인사를 하였다. 우리가 주문한 밥을 기다리는 동안, 소년과 몇몇 사람들은 식당의 넓은 통로에 탁자와 의자를 들여놓느라 분주하였다.
"엄마, 저녁 때 이 식당에서 잔치 같은 걸 하려나 봐."
눈치도 빠른 연짱이. 어디서든 안 굶겠어요.
"이 식당은 므락우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기는 한데, 메뉴가 너무 제한적이야. 국수는 싫고, 먹을만한 건 볶음밥 뿐인 건가? 볶음밥 기름 때문에 얼굴이 엉망진창이잖아."
불쌍한 놈. 산해진미가 다 무슨 소용이겠나. 연짱이는 먹을거리에 관한 한 절대 모험을 하지 않는 쫄보여서, 어느 나라를 가든 익숙한 먹을거리를 선호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안 먹는 국수는 여기서도 싫고, 고수, 레몬그라스 포함 향신료 들어간 음식은 질색이고, 결국 남는 건 볶음밥 뿐. 사실 볶음밥도 오로지 김치볶음밥, 그것도 할머니 정여사 님 표 김치 들어간 볶음밥만 먹는 아이여서, 여행 중 먹는 볶음밥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참 처절하게 여행한다, 연짱이.
내가 먹은 닭고기 커리. 미얀마에서 말하는 커리는 우리가 흔히 알 듯 커민이나 강황이 들어간 음식이라기보다 그저 간간한 반찬을 의미한다. 닭고기 커리는 우리나라 닭볶음탕보다 훨씬 기름을 많이 사용하지만, 맛은 비슷하다. 감자를 넣고 좀 더 얼큰하게 만들었다면 완벽한 닭볶음탕이었을 것이다. 미얀마 여행 중 감자 커리(감자볶음), 미얀마 물냉이 볶음(FRIED WATER CRESS)과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반찬이다. 미얀마는 밥 인심이 매우 후해서, 특히 우리나라 가정식 백반 같은 미얀마 정식의 경우, 밥그릇이 비면 식당 주인분이 밥을 계속 리필해준다. 처음에는 몰라서 주는 대로 먹다가 머슴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 힘이 들어서 소화제를 두 알이나 먹어야 했다.
연짱이가 먹은 채소볶음밥. 연짱이는 국수류를 안 먹는 아이여서, 더운 나라를 여행하면 먹음새에 많은 제약이 있다. 거의 볶음밥으로 연명하다가 집에 돌아오곤 하는데, 미얀마에는 정말 감사하게도 정식이라는 메뉴가 있다. 미얀마 정식은 우리나라 가정식 백반하고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아쉽게도 나와 연짱이가 점심을 먹은 식당에는 미얀마 정식 메뉴가 없었다.
아, 미얀마 정식이 언급되었으므로, 정식 메뉴와 함께 미얀마 먹을거리에 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해보면.
첫 번째 미얀마 여행 중 바간에서 먹은 미얀마 정식. 미얀마 정식은 우리나라 가정식 백반하고 똑같이 밥, 국, 반찬으로 구성된 한 상 차림이며, 반찬은 식당과 주인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비교적 익숙한 반찬들이어서 입이 짧은 연짱이는 더운 나라 중 미얀마 여행을 매우 선호한다. 가운데 반찬은 멸치볶음과 매우 흡사하고, 왼쪽 붉은색 반찬은 굵게 빻은 고추, 말린 새우 등을 함께 볶은 것으로 '발렌차웅쪼' 라고 부른다. 칼칼하고 간간해서 기름기 많은 다른 반찬 위에 조금씩 올려서 먹는 용도로 괜찮았다. 대부분의 반찬이 채소를 볶거나 간간하게 무친 것이어서 향신료에 약한 연짱이 입맛에도 비교적 무난하였다.
밥과 국. 처음 국을 보았을 때, 아욱 된장국인 줄 알고 매우 놀랐었다. 하지만 맛은 좀 달라서 낯선 냄새가 나는 아욱국 정도랄까. 미얀마는 밥 인심이 어마무시 후해서, 밥그릇이 바닥을 보이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식당 주인분이 번개처럼 와서 수북이 리필해준다.
이 번 여행 중 샨 주 시뽀(띠보 HSIPAW)에서 먹은 미얀마 정식. 왼쪽 유리그릇에 담긴 반찬들은 건어물을 매콤하게 볶은 것이다. '응아차웃쪼' 라고 쓰고 밥도둑이라고 부른다. 스텐레스 그릇에 담긴 것은 밥이다. 언뜻 봐도 많아 보였는데, 뚜껑 열어보고 또 놀랐다. 5, 6인 식구가 먹을 만큼의 양이었다. 밥을 한 그릇만 먹고 나오는 내게 식당 주인분은 밥이 맛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정말 죄인된 기분이었다.
"엄마, 이 채소 무침 정말 맛있어. 화천에서 할머니가 무쳐주신 채소 무침하고 맛이 거의 같아. 빻은 마늘도 들어 있고 간 땅콩이 버무려져 있어서 들기름으로 무친 것 같은 고소한 맛도 나."
연짱이는 '샤우띠 똑'이라 부르는 미얀마 식 채소무침을 무려 세 번이나 리필하여 먹었다. 그리고 주인분의 따뜻하고 사랑 넘치는 눈길을 받으며 식당을 나왔다. 미얀마 여행 내내 식당 주인분들에게 사랑받는 연짱이가 나는 매우 부러웠었다.
밥과 함께 먹는 채소를 참 좋아하는 나지만, 가운데 접시 위 왼쪽 잎채소는 약재 아닌가, 싶은 맛이었다. 매우 쓰다. 더위 먹고 입맛을 잃었을 때 한 두 줄기는 집 나간 입맛을 돌아오게 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먹기 힘들 정도로 쓰고 생소한 맛이다. 보라색 채소는 가지다. 나는 우리나라 식 오동포동한 가지를 참 좋아하는데, 더운 나라의 동그란 가지는 우리나라 가지에 비해 아린 맛이 좀 더 강하다. 그래도 여려서 생으로 먹을만하다. 오른쪽 녹색 껍질 채소는 덜 익은 망고를 썰어 놓은 것이다. 생 고구마, 혹은 모과 과육 같은 단단한 식감이며, 익지 않은 망고는 전혀 달지 않고 오히려 새콤하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익지 않은 파란 망고를 고춧가루를 섞은 소금에 찍어 먹는다. 이상할 것 같지만 맛 들면 꽤 중독성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미얀마 물냉이 볶음(FRIED WATERCRESS). 미나리과 식물로 미얀마 미나리 혹은 물냉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WATERCRESS' 라고 부르는데, 내 눈에는 유채(CANOLA)에 좀 더 가까웠던 기억이다. 태국에 공심채볶음(FRIED MORNING GLORY)이 있다면, 미얀마에는 물냉이(유채)볶음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웍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과 이 채소를 넣고 볶은 뒤 미얀마 식 간장으로 간을 하여 낸다. 내 입에는 유채 나물볶음에 더 가까웠던 물냉이 볶음을 처음 먹었을 때, 국간장으로 간을 한 건가, 싶은 맛이어서 미얀마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급등하였었다. 그 후 미얀마 몇몇 주를 다니면서 음식을 먹어보고, 미얀마 식 채소볶음은 우리나라 국간장이나 된장, 액젓처럼 발효시킨 소스로 간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미얀마 발효 액젓은 '응아삐'라고 부른다. 집밥을 할 때, 국이나 찌개에 국간장 외 액젓을 소량 넣으면 감칠맛이 휙, 올라오는데,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응아삐이다. 베트남에는 '느억맘'이, 태국에는 '남쁠라'가, 미얀마에는 응아삐가 있다.
다른 식당에서 먹은 미얀마 물냉이 볶음. 확실히 생김도 미나리보다는 유채에 가깝다. 역시 밥 두 그릇을 부르는 먹을거리.
감자 커리. 미얀마에서 커리는 반찬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미얀마에서도 나와 연짱이가 가장 좋아하였던 반찬이며, 일반적으로 호불호도 실패도 없는 반찬.
오이 샐러드. 오이를 국간장 혹은 연한 액젓에 무친 맛이며, 역시 밥 반찬인데, 이 식당에서 만든 오이 샐러드는 맛있었지만 우리 입맛에 조금 짯다. 우리집 음식은 간이 대체로 슴슴한 편이고, 입맛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라 그런지도.
파란 토마토 샐러드. 미얀마 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호불호가 없는 음식 중 하나라고 하였지만, 나와 연짱이 입이 별났었는지 별 달리 맛있었던 기억이 없다. 덜 익어 단단한 파란 토마토를 땅콩 소스에 버무린 음식이어서 밥 반찬으로도 나쁘지 않았지만, 맥주 안주로 더 잘 어울린다.
알감자 구이. 미얀마는 옥수수도 참 맛있지만 감자도 그만큼 맛있다. 역시 구황작물, 이라며 집에서도 구황작물을 잘 먹는 연짱이가 매우 좋아한 메뉴이기도 하다.
미얀마 맥주. 이 번 여행 마지막 도시였던 삔우린(PYIN OO LWIN) 숙소에서 여행 마지막 날 마셨다. 나는 어디에서 마시든 맥주는 생맥주를 선호하는데, 미얀마 맥주는 병맥주도 맛있었다. 국영기업에서 생산하는 맥주로 세계 맥주 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을 정도로 풍미가 좋다.
삔우린은 도시 자체보다 묵었던 숙소와 숙소 직원 언니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직원 언니들이 나와 연짱이를 참 좋아하였고, 특히 주방 직원 언니들은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음식을 잘 하던지, 미얀마에서 먹은 물냉이 볶음 중 가장 맛있는 물냉이 볶음을 이 숙소 식당에서 먹었다. 그러하니 맛집 순례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와 연짱이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숙소에서 매 번 저녁을 먹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였다. 밥을 다 먹고나서 맥주를 달라고 하였더니, 부지런한 주방 언니들은 갓 볶은 땅콩을 내주었다. 따뜻한 땅콩을 나는 숙소 식당에서 생전 처음 먹어보았다. 벌써 시집들 갔겠지, 묻는 내게 연짱이는 그렇겠지, 답을 하고는 말이 없다. 사연이 없는 아이를 찾는 게 더 쉽다고 하였던 숙소 주인 아저씨의 말이 가슬가슬하게 귀에 밟혔던 기억 때문이겠지. 미얀마를 다녀올 때마다 겪는, 결코 익숙해지지도 익숙해질 수도 없는 무력감이 참 서글프다.
"근데 엄마, 뭘 먹을 때마다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맛집을 찾아다닌 적도 없는데, 먹을거리 사진이 꽤 되네? 삼시세끼 다 먹고 다녔다는 게 더 신기한데?"
사진을 들여다보던 연짱이가 한 마디 거든다. 하루 몇 만보씩 너를 걷게 만든 악덕 엄마였지만, 너 밥은 안 굶겼으니까, 대답하는 나를 보며 연짱이 주둥이가 뾰족,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먹을거리 기록은 둘로 나누어야 하려나 보다. 미얀마 먹을거리 또 뭐가 있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