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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므락우, 먹어야 산다 (2)

미얀마 먹을거리, 익숙하고 낯설고 

"엄마, 그 국수 있잖아. 생선 푹 끓여서 먹는 미얀마 국수." 

"뭐, 모힝가?"  

"맞아, 모힝가. 미얀마 대표 서민 음식이라면서. 나는 안 먹었지만, 엄마는 일단 여행하면 입에 맞든 맞지 않든,  최소 몇 번이라도 그 나라 음식 먹으면서 여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니까 그거부터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네. 


첫 미얀마 여행 중 바간 숙소에서 먹은 '모힝가.' 서민 음식이자 미얀마 대표 음식이다. 원래는 이라와디 강에서 흔히 잡히는 메기를 푹 끓여서 만드는 음식인데, 내가 먹은 건 아무래도 그냥 잡 생선으로 만든 것 같았다. 오래 끓인 끝에 생선살이 다 풀어진 걸쭉한 국물이라는 점이나 비린내 같은 잡내가 별 달리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추어탕하고 비슷하기는 하다. 미얀마 대표 음식이라는 말이 괜한 것은 아닌 듯, 아침 무렵의 바간 어느 음식점, 어느 노점에서든 아저씨들이 가장 흔히 먹는 음식이 모힝가였다. 아저씨 뿐 아니라 아줌마, 언니들도 흔히 먹으니 대표 서민 음식이라고 했겠지만, 양곤은 어떤지 몰라도 다른 소도시들에서 미얀마 여인들이 남자들과 함께 매식을 하는 광경은 매우 흔한 것은 아닌 터라. 미얀마 여행을 다녀온 우리나라 아저씨들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모힝가는 어쩐지 어른 남자들의 음식인가, 싶기도 하다. 


샨 국수. '샨 카욱쉐.' 인레 숙소에서 처음 먹고, 정말 좋아하게 된 음식이다. 칼국수 면처럼 좀 굵은 쌀면이어서, 식감은 밀가루 면이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쌀면하고 약간 다르다. 이후 같은 숙소에서 묵은 다른 여행자가 내게 이런 국수가 맛있다니 너는 입맛이 싸구려구나, 라고 혹평을 한 적 있었다. 숙소 무료 조식으로 나온 국수이니 뭐 얼마나 정성 들여 만들었겠나. 그 사람 말대로 내 입맛이 싸구려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여러 곳에서 먹어본 것보다 무료 조식 샨 국수가 더 맛있었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는 국물에 들어간 배추 때문이다. 국수를 만든 이가 의도를 하였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배추 덕분에 국물이 시원하고 칼칼해서 내 입에는 좋았다. 처음 먹은 국수가 이러하여서, 나는 샨 국수 국물에는 당연히 배추가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이후 국물에 배추를 넣어 만든 샨 국수를 더는 본 적이 없었다. 


샨 주 다른 동네인 껄로(KALAW)에서 먹은 샨 카욱쉐. 국물이 전혀 시원하지 않아서 좀 슬펐다. 작은 종지에 나온 건 데친 고수. 미얀마 사람들의 고수 사랑은 엄청나서 '고수는 먹지 않아요(난난빙 마테바네)' 라고 하면 음식에 함께 넣지는 않지만, 작은 그릇에 잘게 썬 고수를 꼭 함께 내준다. 연짱이는 그럴 때마다 끼룩끼룩, 웃으면서, 먹는 중간에 마음이 바뀔 것처럼 생겼나 봐, 엄마가, 라고 첨언을. 예의바른 사람들이어서라고 하자, 어린이. 


역시 샨 카욱쉐. 국물이 느끼해 보이지만, 정말 느끼하였다. 꽤 비싼 샨 카욱쉐여서 결과적으로 좀 슬펐다. 


'샨 똑.' '카욱쉐 똑' 이라고도 부르며, 맛은 더도 덜도 아닌 새콤달콤한 우리나라 비빔국수. 미얀마어로 '똑'은 무침을 의미한다. 왼쪽 접시에 들어있는 음식이 김치로 보인다면, 얼추 맞다. 샨 주에서는 우리나라 식 김치와 꽤 유사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샨 친.' '친 빠' 라고도 한다. 위 사진 왼쪽 접시에 든 것과 동일한 음식이다. 샨 주 껄로 시장에서 만났는데, 첫 눈에 김치구나, 알아보았다. 배추김치는 아니고, 줄기가 약간 질긴 갓김치 정도의 식감이며, 맛은 우리 식 김치보다 조금 단 편이다. 이 먼 나라에서 교포가 만든 것도 아닌 현지인이 만들고 현지인이 소비하는 김치를 내가 만나게 될 줄은. 참 세상은 넓은 것 같으면서 좁고, 깃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향유되는 셀 수 없이 다양한 문화도 한꺼풀 들춰보면 비슷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들도 하 많구나, 싶었다. 


샨 주 껄로 숙소에서 아침으로 먹은 '뻬뾱.' 첫 미얀마 여행 첫 도시 양곤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일찍 숙소 창문 너머로 누군가 "뻬뾰옥, 뻬뾰옥"하고 다니는 거다. 그 발음이 재미있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뭔가 하고 얼른 나가봤더니, 머리에 플라스틱 통을 이고 다니던 아주머니가 나를 돌아보더니, "뻬뾱?" 한다. 아주머니의 해맑은 표정과 귀여운 미얀마어 발음이 여전히 눈과 귀에 선하다. 숙소 골목의 언니, 아줌마들이 플라스틱 통 안의 내용물을 구입해 가는 것을 열과 성을 다하여 구경하면서, 나는 '뻬뾱'이 무엇인지 첫 미얀마 여행 두번째 날 알게 되었다. 


뻬뾱은 싹을 틔운 병아리콩을 삶은 것이다. 나는 원래 콩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미얀마 음식 TOP 5안에 꼭 꼽는 음식이다. 우리는 밥 위에 콩을 놔서 콩밥을 해 먹는데, 미얀마에서는 밥 따로, 콩 따로 조리해서 함께 놔 먹는다. 뻬뾱과 함께 먹는 밥은 일반미나 쌀알 길쭉한 안남미 아니고 우리가 흔히 아는 찰진 밥. 보통 흑미하고 섞여 있다. 참 맛있는 건강식이다. 


뻬뾱을 놔 먹는 밥에 미얀마 사람들은 소금 간을 해서 먹는다. 찰밥이네, 하며 뭣 모르고 신나게 한 숟가락 뚝, 떠넣었다가 밥이 너무 짜서 깜짝 놀랐었다. 심한 경우, 소금이 자근, 씹히기도 하는데, 삔우린 숙소에서 아침으로 먹은 것이 그러하였다. 숙소 주인 아저씨께 '한국 사람은 밥에 간을 해서 먹지 않아요, 너무 짜요,' 말씀드리니 바로 소금 간하지 않은 밥으로 바꿔주셨다. 늘 그런 것은 아닌데, 밥에 소금 외 기름을 질퍽하게 뿌리는 경우도 있었다. 똑같이 쌀이 주식인 문화권이어도 콩밥을 먹는 방식은 이토록이나 다르다는 게 매우 신선하였다. 


우리나라 청국장처럼 오래 발효시키지는 않지만, 뻬뾱과 마찬가지로 조금 싹틔운 콩을 삶은 후 약간 발효시켜 꾸덕하게 말려서 판다. 이걸 어떻게 먹는지 매우 궁금하였는데, 내게 이 음식의 정체를 설명을 해줄 수 있을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여적 궁금함을 풀지 못하였다. 


"와, 연짱이, 이리 와 봐. 이거 삶은 무청 아니야?" 

"삶은 무청이면 시래기 말하는 거야, 엄마? 무슨 미얀마에서 시래기를 먹겠어. 우리나라야?" 

"앗, 혹시 집주인이 우리나라 교포이신가? 어, 집에서 오빠 나온다. 오빠한테 한 번 물어보자. 오빠, 이거 먹는 거예요? 사람이 먹는 거예요? 가축한테 먹이는 거예요?" 

"#$#%$^&^*@^&$%*&^" 

"엄마, 생각을 해 봐. 가축이 먹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정성들여 말리겠어?" 


삶은 무청을 말리는 것으로 보인다면, 맞다.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본 줄 알았다. 샨 주 시뽀 일반 가정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말리고 있었는데, 모양을 보고는 긴가민가하였다가 삶는 냄새를 맡고 무청인 것을 알았다. 와, 시래기라니. 다른 더운 나라에서는 본 적도 없는 음식 재료여서, 이걸 발견하던 때 나는 좀 흥분 상태였다. 마침 삶은 무청을 널으려고 나오는 청년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먹는 것인지 물어보았지만, 영어 울렁증이 있는 오빠여서 역시 실패하였다. 손짓 발짓으로 사람이 먹으려고 말린다는 정도만. 이것의 미얀마 이름은 모르지만, 나중에 듣기로는 우리가 시래기를 먹는 방식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낭창한 대나무로 엮은 소쿠리도 비슷하고. 


"엄마, 샨 주는 무슨 우리나라야? 갓김치하고 청국장 만들 것 같은 발효콩도 놀라운데, 시래기까지 있어!" 


그러니까. 


샨 주의 도시들은 주변 지역인 만달레이나 바간보다 해발고도가 높아서, 아침, 저녁에는 긴 팔 후드 점퍼가 간절할 만큼 꽤 서늘한 편이다. 먹을거리는 해당 지역의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운 나라들도 우리처럼 제철과일이나 제철채소가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샨 주의 말린 무청 역시 우리가 시래기를 겨우내 두고 먹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물이 들어 있는 이를테면, 물동이이다. 물을 담은 채 오랜동안 이곳을 지켜왔던 탓에 지저분해 보이지만, 늘 신선하고 깨끗한 물이 들어 있다. 십 년을 하루 같이 이 길을 지나다닌 동네 사람이든, 나와 연짱이 같은 이방인에게든, 이 길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마른 목을 축일 수 있다. 이런 물동이는 미얀마 작은 동네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동네마다 놓여 있는 이와 같은 물동이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아주 예전에 잃어버린 작은 커뮤니티의 미덕이구나, 싶어 마음 찡하였었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 몇 모금의 인심은 서로를 모르는 폐쇄적인 대도시에서는 이제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바간 어느 사원에서 만난 물동이. 


"크리스마스 모자를 쓰고 있어. 이 물동이는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야, 엄마." 

"그럼 시원한 물이 선물인 건가?" 


착한 아이만 받을 수 있는 것이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목 마른 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니 참 종교 사원에 놓인 물동이답다. 


우기 여름에도 서늘하던 샨 주 이곳 저곳도, 레이묘 강물 반짝이던 라카인 므락우도 한없이 그립기만 하다. 목 마른 누구에게나 물을 나눠주던 따뜻한 미얀마에게 안온함과 평안의 복이 깃들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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