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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락우, 기억, 일출 (2)

CAN SPRING BE FAR BEHIND? 

일출을 보러 가는 길은 이 곳이 더운 나라가 맞나 싶을 만큼 상상초월 추웠다. 새벽녘 어둠과 구불구불한 숲길을 헤치고 도착한 일출 포인트에는 불탑이 있었다. 미얀마는 신분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원에서 모두 맨발 차림이어야 한다. 추운데 불탑이 있기 때문에 맨발이어야 해서, 더운 나라에서 나의 겨울날 지병인 동창이 도질 판이었다. 


"엄마, 대만 아리산에서 일출 봤을 때가 생각 나. 너무 추웠지만 그래도 그 때는 야구 점퍼에 겨울 바지 차림이기도 했고, 노점에서 파는 뜨거운 생강차라도 있었잖아. 근데 여기는 칼바람 부는데 홀홀한 여름 바지에 맨발이야." 

"므락우 일출은 특별해. 추운 건 잠깐이니까 참아보자."


그 추위를 무릅쓰고 보는 일출이 그저 그랬다면 정말 화가 났을테지만, 그 곳에서의 일출은 기대이상이었다. 숲에 둘러싸인 므락우가 아침 안개 또는 어제의 흔적을 지우는 연기에 묻혀 있었고, 중간 중간 신기루처럼 보이는 사원과 호수가 신비함을 더 해주었다. 살면서 내가 본 중 손꼽을만큼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해가 뜨기 전이어서 푸른 어둠에 싸인 므락우.  


해가 뜨려면 멀었지만, 부지런한 므락우 사람들이 미처 지우지 못했던 어제를 태우거나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벌써 므락우 전체를 감싸고 있다.   


어제 나와 연짱이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랏세이 깐' 호수. 제법 큰 호수였구나.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이다. 각 주마다 민족이 다르고 기후도 다르다. 몇몇 주를 다녀보고 느낀 바는 해발고도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가 서늘한 주에 사는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상대적으로 무더운 낮은 지대에 위치한 주에 사는 사람들보다 부지런한 듯 보였다는 점이다. 바간이나 만달레이에 비해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티숍에 죽치고 앉아 있는 남자들이 해발고도 높은 샨 주 도시들에서는 한결 덜 보였던 것 같다. 샨 주 만큼 높은 지대는 아니지만 숲에 싸여 있어 건기에 꽤 서늘한 므락우 역시 그런 모양이다.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시간에 이미 동네를 감싼 푸른 연기가 그들의 부지런함을 말해준다. 나 같은 게으른 이는 코 골며 아직 단잠에 빠져 있을 이른 아침에 벌써 이 곳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엄마, 아직이야? 해 뜨려면 더 기다려야 돼?" 

"응, 조금만 더. 많이 추워?" 

"힝, 발 시려." 


작은 므락우에 새 아침이 오려고 한다. 


"엄마, 해가 정말 예뻐. 마음이 웅장해지는 것 같아. 춥고 발 시려운 것 참고 기다리기를 참 잘 했어." 

"아!!" 


'어떡해서든 살아내려고 혼자 발버둥치며 여기까지 왔어,' 하는 서러움은 한없이 교만하고 소모적인 자기연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늙고, 쓸모없고, 앙상하고, 불쌍한 뼈주머니만 덩그렇게 남았어,' 스스로를 유폐시킨 자기연민의 검은 탑과 "어두운 겨울 침상(DARK WINTRY BED)"을 박차고 나와, 지금껏 나를 갉아먹어왔던 자기연민과 영원히 이별하게 해주십시오. 세상에 깃드는 벅찬 새 날의 온기가 차가운 내 발과 내 손을 녹이고, 내 마음에 박혀 있던 비좁고 옹졸한 얼음 조각을 부숴 산산이 흩뜨리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새로 태어나는 해처럼 기대에 찬 하루 하루를 살게 해주십시오. 피어나는 순간 순간의 일상에 충실하고 늘 감사하기를, 염개미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주기를, 온 마음 다하여 기도합니다. 


나의 죽은 생각들을 우주 끝까지 휘몰아주세요 

마치 죽은 잎새가 새로운 탄생을 재촉하듯이! 

그리하여 이 시를 주문 삼아, 


흩뿌려주세요, 꺼지지 않은 화로에서 

재와 불씨를, 사람들 속에 내 언어들을!  

내 입술이 채 깨어나지 않은 땅에 


예언의 나팔이 되게 해주세요!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요원할까요?    (BY P. B. 셸리)


DRIVE MY DEAD THOUGHTS OVER THE UNIVERSE 

LIKE WITHERED LEAVES TO QUICKEN A NEW BIRTH! 

AND, BY THE INCANTATION OF THIS VERSE, 


SCATTER, AS FROM AN UNEXTINGUISHED HEARTH 

ASHES AND SPARKS, MY WORDS AMONG MANKIND!

BE THROUGH MY LIPS TO UNAWAKENED EARTH 


THE TRUMPET OF A PROPHECY! 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FROM 'ODE TO THE WEST WIND')


칠흙 같은 어둠과 웅크린 밤의 추위를 가르고 새 날, 새 아침, 새로운 해가 어김없이 물밀어 들어올 것을 믿는다. 건기의 마른 잎새들이 모두 떨어진 자리에 새순이 움트고, 초록 무성한 나무가 되고, 곧 울창한 숲이 될 것을 믿는다. 미얀마 사람들의 절박한 염원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서풍이 되어, 낡은 구체제를 날려보내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파괴자이자 구원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작은 글이, 19세기 혁명기를 살았던 셸리의 이 시가 미얀마 사람들의 자유와 민주를 향한 꺼지지 않는 의지에 위로와 예언이 되어주기를 마음 깊이 기도한다. 차가운 현실, 무거운 삶에 지쳐 식은땀 흘리는 내 등을 쓸어주던 우리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닮은 미얀마가 지금의 괴로운 질곡을 굳건히 버텨내기를. 가장 춥고 어둔 겨울밤은 가장 밝고 따뜻한 봄날의 약속임을 믿는다. 


사랑하는 나의 미얀마는 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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