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있었던 오묘한 기억에 관한 기록이다.
저녁을 먹고 산 마르코 광장의 조용한 카페를 찾고 있었다. 호젓이 홀로 차를 마시면, 지금 쓰고 있는 곡의 마지막 소절이 생각날 것만 같았다.
걱정한 대로 플로리안과 광장의 많은 카페들은 각기 투어리스트들로 붐볐다. 한동안 마땅한 곳을 정하지 못해 서성이다 마치 예정이라도 한 듯, 멀리 어렴풋이 불빛이 보이는 종탑으로 향했다.
광장 입구 산 마르코 성당 건너편에 세워진 종탑은 노을 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채 늦은 밤의 타종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탑은 관람 시간이 끝난 듯, 텅 비어 있다. 경비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허락도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마지막 층에서 내려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원형의 텅 빈 공간이 나타난다. 사방으로 개방된 베란다를 통해 들어온 신선한 밤공기에 옅은 자몽 향이 실려있다. 공간 한 모퉁이에 하얀 천이 깔린 나무 테이블이 보인다.
달빛을 받아 더욱 하얗게 빛이 나는 테이블 위에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그리고 가칭 <별 내리는 산 마르코 광장>의 첫 소절부터 조용히 연주를 시작했다. 종탑 천정을 향해 피어오르는 도입부의 작은 선율은 점점 깊이를 더해 산 마르코 광장을 지나 멀리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는 밤바다 위로 울려 퍼진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위로 푸른 곤돌라들이 음악에 맞춰 흔들린다.
이윽고 연주의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질 바로 그 순간에, 종탑의 종이 조용히 울리기 시작했다. 난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별 내리는 산 마르코 광장>의 마지막 장이 채워져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연주가 끝이 났다. 정적의 오묘한 선율이 흐른다. 종소리마저 멈추자 달빛 아래 바이올린과 나만 남았다.
바이올린을 눕혀놓고 턱을 타고 내려오는 땀방울을 닦았다. 베란다로 다가가 종탑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검푸른 하늘 가득 별이 내려와 광장은 온통 별밭이 되어 있었다.
201912020345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