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용서하세요...

용서가 먼저냐, 감사가 먼저냐 라는 문제

by 안토












내 편이 없다는 것이 적이 많다는 의미인 걸까요?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용서할 사람과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이다, 용서를 하면 정신적 평화는 물론 신체적 건강도 얻을 수 있다, 용서를 함으로써 삶에 감사하게 된다, 머리로 충분히 이해하고 그러한 삶을 살고 싶어, 적지 않은 날을 용서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만, 참,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잊었다고 믿었던 당시의 온전한 분노와 원망들이 생생하게 튀어나오면서, 또 그럴 때마다 그런 나 자신까지 미워지게 되면서 괴로움만 커질 때가 많았습니다. 감사는 언감생심이고, 용서나 과연 할 수 있을까 늘 의구심만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작년 무렵, <오두막>이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연쇄살인마에게 막내딸을 잃은 한 가장이 신을 원망하며 살아가다 어느 날 정체불명의 ‘파파’에게 오두막으로 초대를 받게 되고, 꿈만 같은 여정을 통해 진정한 용서를 하게 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줄거리로, 매 장면과 대화 모두가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였습니다.

“그자가 한 짓을 봐주란 게 아닐세. 나를 믿고 옳은 일을 하란 걸세. 최선이 뭔지 깨우치고. 용서한다고 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네. 그저 그의 목덜미를 놓아주라는 거지.“

“당연하지. 한 번에 다 풀리진 않네. 천 번을 되풀이해도 쉬워질까 말까 해.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함으로 인해 계속 자신을 옭아매고 있잖아.”

진정한 용서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마주하고 보듬어 결국은 놓아주는 것이라는 진리를 영화는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용서’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용서’라는 뜻을 설명해주니, 에스키모 말로 ‘이쑤 마기주 중 나이 너미크(Issu Magigou jung nai nermilk)’라고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그 뜻은 ‘더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단어만 없을 뿐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에스키모인들은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일어난 일 그것도 상처가 되는 일을 아예 없었던 일처럼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여기서 말하는 ‘더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는, 물리적으로 기억에서 완전히 지운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듬음으로써, 당시의 분노와 고통의 감정들을 담담히 바라보고 나아가 놓아주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헤아려봅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용서할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슬쩍 들여 보기만 하는데도, 미움과 원망부터 우수수 쏟아져나옵니다. 그럴 때면 억지로라도 젖먹던 힘을 다해 감사할 일을 떠올립니다. 오늘 하루의 무사함과 보통의 소중함, 날씨 좋음까지 사실은 조금도 당연하지 않은데도 당연하다 경시했던 그 모두가,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나를 어렵게 설득합니다. 처음은 힘이 들지만, 이렇게 감사할 일을 떠올리다 보면 마치 물들 듯이 조금씩 마음이 말랑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용서하는 일이 살짝은 편해집니다. '가족이 아프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얼마 손해 좀 보면 어때.' 이렇게요. 언제나 여러 감정이 끼어들어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점점 늘여가다 보면 용서든 감사든 비슷한 것이 되어가리라 믿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버겁기만 했던 고난과 역경들이 다 무용은 아니었나 봅니다. 용서와 감사가 순서나 인과 관계로 맺어있는 서로 다른 덕목이 아니라, 그저 다른 모습만 한 같은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어떤 갖춰야 하는 도덕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행동을 하려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처럼, 용서와 감사가 참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그 일이 나를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붙잡고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간절히 놓아버리고 싶은데, 제가 참 너무도 오래 붙잡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 소원을 이렇게 빌어봅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가 아니라

새해에는 용서한 일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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