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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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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Oct 26. 2018

포도 먹는 아침

서우의 목소리가 잠을 깨운다.

"아빠! 밖에 가자!"

"끄응..."

"아빠! 밖에!"

"끄아암..."

"아빠아아아아! 바께에에에에!"

"그래... 기지개 좀 켜고 가자. 끄아아악~"


밖에 나온 서우는 거실에 늘어져 있는 물건을 보고 우와~ 소리를 내며 감탄한다.

어제 갖고 놀던 것인데 새로 보는 것처럼 좋아한다.

사진 앨범이든, 장난감이든 앉아서 잠시 뒤적거리다가

옆에 쓰러져 누워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말없이 냉장고를 가리키는 단호한 검지 손가락.


아침에 먹는 메뉴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얼마 전까지 생식을 나와 같이 먹더니

잣에 호두, 말린 사과로 갈아타고

요새는 포도로 종목을 바꿨다.

"포도. 포도 먹을래."

"그래, 아빠가 씻어줄게."


시원한 포도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물에 씻는다.

과일이 그려진 노란색 접시에 포도를 올리고 작은 그릇을 하나 더 챙긴다.

거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포도를 한알씩 떼기 시작한다.

함께 챙긴 작은 그릇에 알맹이를 쏙 빼고, 손가락에 힘을 줘서 포도 과즙을 낸다.

한 알, 두 알 늘어가면 서우가 숫자를 센다.

"한 개. 두 개다. 다섯 개~ 우와."

"세 개~"

"세 개~ 우와."

"네 개~"

"네 개~"

"이제 다섯 개~"

"이제 다섯 개! (손가락을 쭉 펴 보이며) 다섯 개~!!"


알맹이를 숟가락에 담아 입에 대어 주니 호로록 먹는다.

알맹이가 사라지자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는 포도즙을 후루룩 원샷.

"캬~"

나도 먹고 싶다 포도즙.

하지만 원샷할 만큼 양이 모이려면 최소 다섯 알은 모아야 한다.

나도 한 입 하려면 열 알은 모아야 하는데 나도 못 기다리고 서우도 못 기다린다.

그냥 틈틈이 내 껀 내가 먹는다.


포도는 아무래도 껍질을 쪽쪽 빨아먹을 때 나오는 과즙이 핵심인 것 같다.

알맹이는 꿀꺽 삼켜서 넘기고 껍질을 알뜰히 먹고 뱉다 보면 리듬이 생겨 기계처럼 먹게 된다.

한 때 과육을 씹어먹으며 씨도 와그작와그작 먹기도 했는데

씨가 이에 한 번 끼고 나서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한창 내 껄 먹느라 서우 챙겨주는 걸 깜빡했는데

기계처럼 움직이는 내 손과 입을 보던 아들이 스스로 포도알을 떼서 입에 넣고는 껍질을 뱉는다.

"씨 뱉었어요."

씨도 알아서 뱉고... 우리 아들 장하다 ㅠㅠ

그리고 포도 한 알을 떼어 내 입에 넣어주고는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끄덕끄덕하는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이마에 뽀뽀한다.

옆에 나란히 앉은 서우를 들어 무릎에 앉히고 포도알과 과즙 모으기에 열중한다.

반복되는 손놀림과 뚝뚝 떨어지는 백색의 과즙과 후르릅 꿀꺽 소리가 쌓일수록

비어 가는 포도송이에 한 알, 두 알 달콤한 추억이 송알송알 맺힌다.


참 좋은 아침이다.

포도 한 송이, 추억 한 송이 배부르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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