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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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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Jun 24. 2019

무지개 고양이

자리에 누워 뒤척이며

"자는 거 안 좋아 ㅠ"

찡찡거리는 아들.


이미 이를 닦으며 동영상도 보고 (자기를 찍은 동영상)

책도 읽고 공놀이도 했다.

더 이상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불쑥 서우가 꺼낸 한 마디.

"옛날 이야기 해줘!"


이름은 옛날 이야기지만

옛날부터 이어져오지 않은

즉석에서 뽑아낸 따끈따끈한

즉흥 옛날 이야기 시작!


옛날 옛날에 무지개 고양이가 살았어요.

서우는 무슨 색 고양이 봤었지?

검은 색도 보고, 갈색도 보고, 갈색이랑 흰색 줄무늬도 보고 그랬지?

근데 이 고양이는 무지개 색이에요.

귀는 빨갛고 코는 주황색이고 눈은 노란색이야.

발은 초록색이고, 배는 파란색이고, 등은 남색이고, 꼬리는 보라색이야.

(서우 : 우와~ 박수 짝짝)

이 고양이는 엄청 커다래요.

서우보다 더 커요. 아빠보다도 더 커요.

호랑이만 해요. 에버랜드 가서 봤었지? 호랑이 엄청 크잖아.

근데 그만큼 큰 거야.

(서우 : ...)


자니?

물어봐도 대답이 없어 얼굴을 보니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다.

어둠 속에 까맣게 빛나는 눈.

잠들 기색이 안 보인다...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다른 옛날 얘기!"

옛날 옛날에~


2가지 정도 이야기를 더 해주었으나 잠드는 건 실패.

결국엔 엄마가 투입되어서 재웠다.

엄마가 나와서 하는 말이

"무지개 고양이가 뭐야? 갑자기 무지개 고양이 얘기해서 당황했네."

"어? 그거 내가 말해준 건데."

"그래? 무지개 고양이가 자기한테 와서 토닥토닥해주고 갔다 그러던데?"

아.!


서우를 토닥거려준 무지개 고양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털이 짧았을까, 길었을까.

줄무늬가 있었을까, 면으로 색이 되어 있었을까.

두 발로 서서 토닥거렸을까, 네발로 와서 꾹꾹 식빵을 구웠을까.

서우에게 내일 물어보면 대답해줄까, 아니면 꿈속 묻어두고 어느 날 문득 무지개 고양이를 타고 놀았다 할까.


아이에게 들려주는 단어 하나, 말 한마디가

나도 모르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창조된다.

기쁘고 놀라운 한편 두렵고 쫄린다.

모진 말 한마디, 떼 부리는 걸 못 받고 그만하라고 윽박지르던 여러 순간들이

서우의 내면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밖으로 나타날까.

속에서는 어떻게 인식되어 있는 걸까.


무지개 고양이야.

나 아빠 노릇 잘하고 있는 거니?

나도 와서 토닥토닥해주렴.

꾸욱 꾹 일곱 가지 맛이 나는 두툼한 식빵 좀 구워주렴.

무지개보다 영롱한 우리 아들 마음 배불리 먹여주게.

무지개처럼 잡히지 않는 아들 사랑하는 마음 좀 다잡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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