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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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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10. 2019

월요일 점심 풍경

요즘 아내와 아들이 매주 월요일 회사로 찾아온다.

점심을 함께 먹고 아내와 아들은 다시 집으로, 나는 회사로 돌아간다.

이직과 이사 후 집과 회사가 가까워져서 가능해진 새로운 풍경이다. 


처음에는 이벤트처럼 진행된 감이 없지 않은데

이제는 월요일이면 두 식구를 어디로 데리고 가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재미,

잘 먹고 난 뒤 만족스러운 재미가 있다.


오늘도 아내와 아들이 회사로 점심을 먹으러 왔다.

버스 뒷문에서 안아올린 아들이 히히 웃는다.

"아빠, 서우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지~"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게 무색하게

서우는 이모가 사탕 주는 식당으로 가자고 한다.

식당에 도착해 옆자리에 앉은 서우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빠 뭔가 예쁜데?"

"예뻐?" (가르마가 잘 타졌나 생각)

"응. 쫌 예뻐." 


수줍게 웃는 아들의 미소에

어깨가 간지럽다.

나 왜 설레지? ㅋ


오늘따라 유난히 꼭 붙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는 아들의 부드럽고 탱글탱글한 살결이 좋다.

치덕치덕 만지는대로 바뀌지만 달라붙지 않는 찰흙같다.


마침내 밥을 거의 다 먹고 과연 오늘도 알바 이모가 사탕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식구들끼리 소근거리고 있는데,

아뿔싸. 오늘은 잊었나보다.


"아빠가 가서 얘기해줄까?"

"응. 서우도 가서 얘기할게."

척척척, 이모에게 향하는 아들의 팔이 씩씩하다.


"저기, 아이가 저번에 사탕 받은 걸 기억해서요."

"아~ 네네. ㅎㅎ 귀여워"

서우는 두 손을 모으고 이모를 빤히 본다.


막대사탕이 가득 든 봉지를 보여주는 넉넉한 이모와

넉넉한 달콤함이 부담스러운 부모 사이에서

서우는 3개를 집더니 보라색 1개, 오렌지색 1개로 정리하고 2개만 집는다.


하나 더 가져가라는 이모의 말에

엄마 아빠는 초조하고

서우는 깔끔하게 인사하고 나선다.


보라색 사탕 껍질을 먼저 까더니 입에 쏙 넣더니

내게 내민다.

"아빠도 한번 먹어봐."


보라색 사탕을 입에 넣고 있으니

오렌지색 사탕 껍질을 벗기고 나서

입에 쏙 넣는다.


"아빠 그거 줘봐."

"이거? 그럼 아빠 꺼는?"

"일단 줘봐."


입에 넣었던 사탕을 주니

자기 입에 다시 넣고 빨아보고

오렌지색 사탕을 다시 빨아보더니 씨익 웃는다.


몇 번을 내 입과 아들 입으로 사탕 2개가 번갈아 드나드는데

회의 시간이 임박해 초조한 아빠와 달리

오늘따라 업히지 않고 걸어가겠다는 아들의 시간은 느긋하기만 하다.

단 것의 힘을 실감한다.


회의 시간과 가족의 배웅 사이에서 홀로 밀고 당기며 갈팡질팡하던 나를

아내가 밀어준다.

밀어주는 힘에 아들에게 인사를 한다.


"서우야, 아빠가 이제 회의 시간이 있어서 회사 바로 들어가봐야해.

엄마랑 같이 손잡고 천천히 잘 가.

버스도 잘 타고."

"응 잘 가."


만났을 때와 식당에서 살갑던 아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사탕에 집중한다.

아쉬움에 뺨을 어루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지만

단 것의 힘은 강하다.


빨리 걷다 뛰다 회사에 가까이 가서야 뒤를 돌아본다.

보이지 않는 아내와 아들에게 손을 흔들고 

주머니에 들어있는 사탕 껍질을 만지작거리며

사무실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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