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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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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May 25. 2016

봄이 오다

내가 아빠라니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나와 아내에게 아이가 왔다. 아이는 아내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이번 주가 12주차다. 임신 초기가 끝나고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 아이 태명은 '봄'이다. 봄에 가져서이기도 하고 마음을 '보다'의 봄이기도 하다.(장인어른의 아이디어!) 오늘 찍은 초음파 사진으로 3주 전에 비해 부쩍 커진 머리와 하얗게 빛나는 척추와 갈비뼈, 빠르고 힘차게 뛰는 심장과 구색을 갖춰가는 팔다리를 보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화면으로 봄이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2016년 3월 28일 아내와 나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음을 알았다. 그날 나는 아주 가끔 있는 회식을 갔다 늦게 들어왔다. 안방에 들어가니 아내는 이불 속에 들어가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얼굴에 약간 홍조를 띤 아내가 왜 이리 늦게 왔냐며 평소보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어 간만에 회식하느라 그랬네, 그래도 나름 일찍 온거야. 라며 몇 마디 더 나누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평소에 없던 물건이 시야에 들어왔다. 화장실 입구 쪽 벽에 붙어있는 막대기. 그리고 함께 붙여놓은 포스트 잇에는 '오빠! 우리... 엄마 아빠가 될지도 모르겠어 ㅋㅋㅋ 내일 또 해봐야지'라고 적혀있었다. 그제서야 막대기를 다시 보았고 두 줄이 그어진 임신테스트기였다. 나는 놀라서 '뭐야? 어.. 어 이게 뭐야?' 하며 안방으로 향했고 아내는 빼꼼 고개를 내밀고 '왜 그걸 이제야 보는거야 ㅋㅋ 맨날 화장실부터 가더니만' 했다.

봄이가 온 걸 처음 안 날
다음 날 하나 더 했다 ㅋㅋ

지금도 그 때의 감각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실감이 나지 않으면서 기분은 좋았고, 좋은 것 같으면서도 두려웠고, 두려운 와중에 설레임이 올라왔다. 아빠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크게 공감하며 그래, 그런거야 하신다.

"그때는 눈물도 나고 참 뭐라 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 들어. 그래, 그런 거야."

평생 아빠라 부르던 사람과 아빠가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분이 그렇게 묘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바깥의 이름이었던 '아빠'가 나의 또다른 이름이 된다는 게 이상했다. 가족과 이어지면 이어질 수록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은 커져만 갔다. 엄마는 할머니, 아빠는 할아버지, 장모님은 외할머니, 장인어른은 외할아버지, 재민이는 삼촌, 영민이는 외삼촌, 아내는 엄마가 된다. 그것도 생전 처음으로... 봄이가 오면서 모두가 달라지고 있다.


아내의 배가 불러오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과 끊임없이 만날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어서 알 수 있는 것과 겪어야 와 닿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남친되기와 남편되기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알 수 없는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아빠되기'라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그리고 당분간 이 '아빠되기'를 주제로 이제까지 있던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기록하려 한다. 봄이가 겨울에 올 때까지. 그리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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