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몫, 봄이의 몫
복강경 수술 이후 아내는 잘 회복했다. 상처도 나름 잘 아물었다. 퇴원 후 한동안 일어나고 누울 때 수술 부위를 따가워하던 아내는 열심히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흡사 피자 먹을 때 곁들이는 치즈가루 같았던 뿌리는 마*카솔은 하루 이틀 지나며 집안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내는 이내 예전처럼 돌아눕고 웅크리고 배를 접고 피게 되었다. 급박하고 쫄깃했던 순간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일상은 빠르고 무심히 흘렀다.
5월 25일, 수술 후 경과 및 봄이를 보러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면담했다. 아이는 건강했다. 심장도 잘 뛰고 머리도 크고 팔다리는 길쭉했다. 초음파로 한 번 보고 나서 자리에 앉자 선생님은 기형아 검사 절차를 말씀하기 시작했다. 정밀초음파 검사와 혈액검사 등을 통해 기형아일 확률을 볼 것이니 안내에 따라 이동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 기형아라고 나온다면?
"선생님, 그런데 기형아 검사를 하면 그 다음은요?"
"2차 검사가 또 있고 이걸 통해서 어지간한 건 다 판별합니다. 그런데 의심이 가는 게 보이면 추가로 양수검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의 확실하게 알게 되요."
"그러면 기형아라는 걸 알게 되면 그 다음은요? 뱃속에 있을 때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요. 다른 조치를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선택이라면, 낳을지 말지요?"
"그렇죠."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저런 흐름이었다. 선생님은 시종일관 성의있게 답해주었다. 그러다 내 다음 질문-아내와 병원에 오기 전 충분히 이야기했던 바로 그 질문-에 약간 격앙되었다.
"만약 기형아 검사, 양수 검사를 해서 아이가 기형이라는 걸 알아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그냥 검사 안해도 되지 않나요? 저희는 어쨌든 낳을 거라서요."
"물론 저희는 검사를 권하는 입장이고 꼭 하셔야 한다는 것도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기형인 걸 알고도 낳는 게 정말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하고 같이 살 때는 모르지만 나중에 부모가 죽으면 그 애는 어떻게 합니까?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저도 교회를 다니지만 이 부분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딸도 얼마 전 아이를 가졌어요. 기형아 검사를 했는데 목 둘레가 두꺼워서 양수 검사 했어요.
안 해도 되요. 다만 불안한 걸 미리 알고 대비하느냐, 모르면서 낳을 때까지 불안해할거냐. 본인의 선택이에요."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보았다. 사실 임신 초기부터 기형아 검사를 할 것인지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기형아 검사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생명을 두고 지우느니 마느니 얘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닐까. 그래도 미리 알면 마음의 준비, 물질적 준비를 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뚜렷한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치열한 고민 끝에 우리는 검사를 받지 않는 것으로 결심했다. 기형아라면 낳지 않을 것인가? 이게 핵심 질문이었고 우리는 '낳는다'였다. 그래서 이날 병원에 가면 기형아검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선생님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시나리오도 짰다. 시나리오대로 얘기도 했고 답도 예상된 답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의 답을 듣고 나니 진료받기 전 고민하고 선택했던 것이 무색하게 마음이 마구 흔들렸다. 전문가 입장에서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해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기형아일 확률은 거의 없는데 의사가 시키는대로 할까. 우리는 일단 진료실 안에서 간호사가 안내하는대로 검사서류에 인적사항 등을 적고 접수대로 향했다. 그러다 접수대 옆 의자에 앉았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내가 내 의견을 물었다. 사실 나는 선생님과 면담 후 거의 검사를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런데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안해도 되지 않을까였다. 아내는 내가 다시 말하자 본인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아내가 그렇게 하자고 하니 오히려 더 불안해진 나는 계속 물었다. '정말 안해도 되겠어? 괜찮겠어? 불안하지 않겠어?'
아내에게 묻는다기보다 스스로 묻고 있었다. 이 선택이 잘하는 것인지 몰랐고 두려웠다. 아내는 기형아를 낳고 키운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 같다고 했다. 이런 부분에서는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현실감각이 있다는 걸 알기에 더욱 찜짐했다. 나중에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이런 건 생각도 못했다'라고 현실을 외면하며 도망갈지도 모른다. 검사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하자고 하고 계속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해도 될까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탁, 일어나 접수대로 향했다. 간호사에게 오늘 검사하기로 이야기했는데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간호사는 의사선생님에게 전화로 확인하더니 진료비와 초음파검사비만 결제했다. 이렇게 기형아 검사는 하지 않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한국 병원의 진료 체계에서 의사가 권유한 것과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네네 몇 번 하다보면 검사하고 수술한다. 굉장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처럼 일사천리로 시스템이 돌아간다. 그 검사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지, 검사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물어볼 시간과 공간은 별로 없다.(다만, 우리와 상담한 선생님은 정말 친절한 분이었다. 우리 바로 앞 진료는 거의 4-50분이나 걸렸다. 아마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실 것이다.) 게다가 전문가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나의 선택이 비합리적이고 무지한 처사로 느껴진다. 모두가 이 검사를 한다는 것이 기준이 되어 하지 않는 게 이상하거나 무책임하거나 고집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바깥의 시선은 둘째치고, 내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그렇다.
그런데 정말 안해도 될 것 같다. 봄이가 기형이 있든 없든 우리와 만나 이 세상에 왔다. 세상에 온 이상 생명의 선택권은 봄이에게 있다. 불가항력의 일을 제외한다면 죽고 사는 문제는 봄이가 선택할 일이다. 물론 기형이 없기를 바란다. 선생님 말씀대로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는 것은 엄청난 고통일 수도 있다. 몰라서 이러는 걸수도 있다. 그게 가장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했다. 잘못되기를 걱정하는 것보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심으려 한다. 그렇게 봄이와 만나가려 한다.
(*) 봄이야, 뱃속에 있는 너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무서운 얘기해서 미안해. 아빠가 아빠를 처음 해보니까 여러 가지가 참 어렵다 ㅠㅠ 니가 오고 나서야 아빠가 됐으니까 네 나이하고 내 아빠나이가 같은 셈이더라. 우리 함께 서로 대화하고 배우며 커나가자. 너는 아이로, 나는 아빠로. 언제나 고마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