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든 발이든
드디어 봄이의 태동을 손으로 느꼈다.
툭. 짧고 분명한 두드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아이와 감각으로 만났다.
그동안 아내가 여기 톡톡 한다며 내 손을 배 위로 끌어주면 잠잠해지곤 해서
귀도 대어보고 한참을 손을 올려봐도 아내의 맥이 규칙적으로 뛰는 느낌뿐이었는데.
맥박을 봄이 태동인 줄 알고 놀라면 그거 아니야라고 하는 아내가 얄미웠는데.
어? 하자 아내도 어!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모르게 손을 스르륵 뺐다.
어색한 기분. 이건 뭘까.
밤에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씻고 자리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문득 아내가 어? 지금 톡톡 한다라며 내 손을 가져가서 배 위에 올려놓는다.
배꼽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그보다 아래쪽으로 손을 둔다.
내 손을 이끄는 아내의 손이 은은하게 빛난다.
둘 다 가만히 있어본다.
가만히 손 끝에 마음을 실어본다.
잔잔한 기운이 손에 모이고 배 안쪽으로 스며드는 걸 상상한다.
머리맡 근처 책을 들어 펼친다.
"봄이야, 아빠가 시 한 편 읽어줄게."
톡톡.
"오빠, 봄이가 반응해!"
손을 대어 본다.
톡.
하이파이브다.
아... 봄이는 발로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하고 보니 처음 느낀 어색함은 나도 낯설어서 그랬던 거였다.
아빠 손길이 어색했던 봄이처럼
나도 봄이 손길이 어색했다.
그런데 한 번 주고받으니(그렇다고 믿는다) 자꾸만 만나고 손을 마주치고 싶다.
손길인지, 발길인지, 박치기인지 모를 짧고 생생하고 경이로운 움직임을 느끼고 싶다.
작고 짧은 이 움직임이 점점 크고 길어져서
마침내 기고 걷고 달리고 만들고 잡고 어루만지고 구르고 뛰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주저앉고 모로 누워 잠이 드는 걸
보아가는 시간은
무척 아름답겠다 싶다.
오늘 밤도 가만히 손을 대어 보기로 한다.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 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렘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