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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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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미 Sep 08. 2016

좋은 것과 싫은 것

임신 27주 차가 되었다. 아내의 배는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있다. 8개월부터 더 커진다는데 저기서 얼마나 더 커질는지 가늠이 안된다. 그만큼 아내의 걸음은 느려졌다. 밥을 같은 양을 먹어도 위장이 눌려서 그런지 쉽게 배불러한다. 소화가 되지 않는 게 힘든 모양이다. 좀 앉아있노라면 등이 아프다고 해서 꾹꾹 눌러준다. 아프면서 시원하다는 말에 좋으면서도 안쓰럽기도 하다.


엄마의 몸이 변하는 것처럼 봄이도 변하고 있다. 태동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활발하고 한 번에 움직이는 시간도 늘었다. 배 한쪽만 느껴지던 것이 이제는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아랫배를 동시에 친다. 머리를 비비는지, 손으로 미는지, 발로 차는지 여기 손을 대고 있으면 저쪽에서 살 떨리는 게 보이고 그렇다. 툭툭 거리던 태동은 팍! 하기도 하고 꾸욱 문대기도 하고 탕타탕 빠르게 치기도 한다. 배에 손을 대는 재미가 있다. 


태동의 종류가 다양해진 것에 더해 요즘 봄이는 특정 상황에서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판타스틱 듀오'를 보면 잠잠하던 녀석이 갑자기 요동을 친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 슬슬 움직이다가 쿵쿵거린다. 아내 말로는 요리할 때 유독 활발해진다고 한다. 다 씻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할라치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봄이는 음악을 즐기며 요리를 좋아하는 올빼미족인가 보다. 묘하게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속성이 다 있다. 


막상 그런 패턴을 연결시키니 은근한 바람이 생긴다. 

- 음악을 좋아하면 좋겠다. 자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면 좋겠다. 

- 요리를 좋아하면 좋겠다. 배 채우는 걸 넘어서 맛과 향과 빛과 소리를 주고받는 것을 즐기면 좋겠다.

- 밤을 좋아하면 좋겠다. 그날 하루 일어난 일을 가만히 돌아볼 줄 아는 고요함과,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며 인생살이를 이야기하는 기쁨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사실은 아이는 모든 자극에 반응하는데 그 반응과 음악프로, 요리프로, 밤 시간을 연결한 건 나의 선호일 것이다. 은연중에 아이는 아빠나 엄마의 행동에 반응해서 본인의 호불호를 선택해나갈 것이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고, 유아기에는 필수적인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본인의 좋은 것과 싫은 것을 찾아나가면 좋겠다. 


음악을 싫어해도, 요리하는 걸 질색해도, 밤에는 무조건 일찍 자야 한다 해도 좋다. 좋고 싫은 것을 타인의 기대에 맞춰 정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며 자라면 좋겠다. 자유롭게 세상과 만나고, 경험하고, 선택해나가는 걸 좋아하면 좋겠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그런 아이를 존중해주는 아빠가 되면 정말 좋겠다.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 아빠가 되면 정말 정말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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