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처음이지? 어서 와 ^^
가을이 왔다. 누구도 가을이 아니라 할 만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밤이다. 이렇게까지 하루 만에 올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완연하다. 여름용 셔츠를 입고 나서는 출근길에 팔뚝에 사르르 냉기가 돌면서 잠이 깼고,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본 하늘에서 여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깊고 푸른 하늘에 짙고 하얀 구름이 시원했다. 말끔하고 산뜻한 기운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돌아보면 하루 만에 가을이 온 것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인가 문득 매미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압도적 성량을 가진 솔로 보컬의 샤우팅은 속이 뚫리는 맛은 있었지만,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질러대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쉬웠다. 그에 반해 울림이 있는 매력적인 음색의 중창단은 화끈한 맛은 없지만, 듣다 보면 언제고 스르르 눈을 감고 금빛 달빛이 내리는 밀밭을 거니는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분명 낮은 여전히 더웠는데 풀벌레는 어떻게 가을이 올 줄 알고 노래하기 시작했을까. 풀벌레 소리를 듣던 저녁, 집에 들어서는 내 등은 땀으로 젖었었는데. 아니면, 풀벌레가 가을을 불러온 것일까.
성큼 다가온 가을은 곧 잎을 물들일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 듯 드센 기세로 푸르렀던 잎이 스르르 빳빳이 쳐들었던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물들이면, 수백, 수천, 수만 잎이 붉게 노랗게 얼굴을 물들이면 산도 물들 것이다. 물들어가는 가지 아래 여름날 있는 힘껏 달려온 생명의 결실이 툭툭 떨어지고 사람과 동물과 식물 모두 기쁜 마음으로 거두어가고. 가만히 있어도 나오던 땀은 이제 몸을 움직여 청해야 나올 것이고, 홑겹으로 입던 옷에 외투를 덧입기 시작할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간 더위를 잊고, 다가올 추위를 상상하며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이 오래오래 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을은 금세 떠날 것이다. 항상 같으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10월에 태어나 가을의 기운을 받은 나는 그래서 가을이 늘 아쉽고 설렌다. 풍덩 뛰어들어 유유히 유영하고 싶은 하늘이 언제나 깊고 푸르게 있었으면, 울긋불긋 아름다운 산과 들을 언제고 거닐 수 있었으면, 시원하고 산뜻한 공기를 매일같이 폐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면.
봄이가 엄마 뱃속에서 느끼는 가을은 어떨까? 아빠가 느끼는 아쉬움과 설렘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아들내미와 함께 산으로, 들로 다니며 느끼는 가을은 어떤 것일까? 깊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울긋불긋 단풍잎을 집어 드는, 풀벌레 소리에 스르르 잠드는 아들을 보는 건 어떤 것일까?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가을을 함께 보내는 아빠와 엄마와 아들이 그리는 그림은 어떤 것일까? 너무나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봄이와 가을이 만나는 그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