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의 『정정하는 힘』을 읽고
2025년 15번째 읽기록
Words by Jeong-Yoon Lee
책 리뷰에 앞서서 2025 서울국제도서전에 가고 싶었는데, 현장 티켓을 구매할 수 없다는 공지를 보고 포기하게 되었다. 올해 역대급으로 인기였다는데 2026년엔 잊지 말고 제때 사전등록해서 꼭 참석해야겠다. 박찬욱 감독님의 인터뷰에서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은 국내 소설이 뭐냐는 질문에 한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콕~ 집어주셔서 아직까지 안 읽어본 나로서 당장 도서관 예약 걸어두고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아즈마 히로키의 책 '정정하는 힘'은 도서관에서 심플한 커버 디자인과 제목만 보고 빌려온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것 같은 책이다. 페이지 수도 207이라서 독서라는 행위로부터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가볍게 접근해서 읽어보기 좋다. 하루에 50페이지씩 욕심부리지 않고 읽었다. 앞서 읽었던 책과 묶어서 같이 리뷰하려고 했는데, 책의 성격이 달라서 따로 리뷰하게 되었다.
이 책은 들어가며, 나오며 부분만 읽어도 울림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좋은 질문이 되었다.
"나이 듦이란 무엇일까? 나이 든다는 것은 젊었을 때의 과오를 정정해 가는 것이다. 서른 살, 마흔 살이 되면 스무 살 때와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며, 쉰 살, 예순 살이 되면 또 달라진다. 같은 '나'를 유지하면서 예전의 과오를 조금씩 정정해 간다. 이것이 나이 듦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변해가는 것이고, 정정해 가는 것을 뜻한다. – 들어가며"
40대가 된 지금, 이 문장은 더욱 깊게 와닿았다. 20대와 30대에 내가 옳다고 믿었던 가치관이 이젠 어딘가 낡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시기엔 그 나름의 이유로 선택했고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도 행동도 수정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예전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해가며 다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더 멋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다 읽고 잠깐 머릿속을 비울 겸 유튜브에 들어가니 '찰스엔터' 브이로그가 올라와 보게 되었다. '심리적인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 또한 다이어트 정정하는 과정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난 내가 많이 먹는 줄도 몰랐어, 이게 다 보통 사람들 다 이렇게 먹는 거 아니야? 나만큼 안 먹으면 소식가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제는 내가 많이 먹는다는 걸 인지를 하고 적게 먹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단계야."
일상 속 아주 현실적인 ‘정정의 과정’이다. 어쩌면 모든 변화는 그렇게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요즘 ‘스우파3’에서 활약 중인 쿄카에 푹 빠져 있다. 블로그에도 자주 쿄카 관련 포스팅을 올리는데, 댓글에 종종 이런 말이 달린다. “일본은 싫어하지만, 쿄카는 좋아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과거에 잘못한 일이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안의 모든 개인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무작정 일본이 싫다는 댓글들을 보며 책 속에서 적절한 답을 찾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라고 서로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 시간이 결국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과거의 실수 하나로 ‘그 사람은 나빠’라고 단정하기보단, “난 널 이해하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운영하는 모든 공간도 그런 대화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책 속엔 일본 사회의 정치적 문제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아, 때때로 집중이 흐트러졌지만, ‘창조하는 사람’, ‘무언가를 꾸준히 해온 사람’이라면 분명 이 책이 주는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독자의 얼굴을 모르겠다고 했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이 책을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해온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살다 보면 반드시 오는 순간이 있다.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며, 그 말을, 그 행동을 ‘정정’하고 싶어지는 순간. 그럴 때 '정정하는 힘'은 묵묵히 곁에서 힘이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당신은 리버럴파인 줄 알았는데 실은 보수적인 면도 있었네요. 그러고 보면 과거에 당신이 했던 이런 발언이나 저런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사실 …였다'는 정정의 논리로 당신의 일관성을 재발견해 주는 사람이 가장 좋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안심하고 변화할 수 없다."
나의 일관성을 다시 읽어주는 누군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안심하고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이해가 아닌 정정을 통해, 더 깊은 연결을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문장수집】
나이 듦이란 무엇일까? 나이 든다는 것은 젊었을 때의 과오를 정정해 가는 것이다. 서른 살, 마흔 살이 되면 스무 살 때와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며, 쉰 살, 예순 살이 되면 또 달라진다. 같은 '나'를 유지하면서 예전의 과오를 조금씩 정정해 간다. 이것이 나이 듦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변해가는 것이고, 정정해 가는 것을 뜻한다.
– 들어가며
자기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좋고 나쁨을 판단해 사람을 사귀는 인간만 있다면 인생은 답답해진다. 하지만 반대로 무엇을 해도 믿어주는 사람만 주위에 있다면 성장할 수 없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중간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 p. 133
“당신은 리버럴파인 줄 알았는데 실은 보수적인 면도 있었네요. 그러고 보면 과거에 당신이 했던 이런 발언이나 저런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하고 '사실 …였다'는 정정의 논리로 당신의 일관성을 재발견해주는 사람이 가장 좋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안심하고 변화할 수 없다.
– p. 134
나는 사람과 사람은 서로를 끝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고, 자식도 부모를 이해할 수 없으며, 부부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친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결국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고독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해의 정정'뿐이다. '실은 이런 사람이었 구나' 하는 깨달음을 거듭해 가는 것뿐이다. 이것이 내 세계관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라고 서로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2장에서 논한 바흐찐의 말을 빌려 쓰자면, 대화의 공간이다.
– p. 146
정정하는 힘을 활용하려면 자신을 교환 불가능한 존재로 여기고, 고정되고 만 자기 이미지를 '사실 …였다'는 논리로 정정해 주는 유연한 사람을 주변에 모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작은 조직이나 모임을 만들어 '친밀한 공공권'을 만들면 이를 실현할 수 있다.
– p. 154
독자의 얼굴을 모르겠다고 했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이 책을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해온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나오며
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