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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소설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끝까지 못 읽을 걸 알면서도)

by 앤트윤antyoon

텍스트로 익히는 새로운 표현

Words by Jeong-Yoon Lee


열아홉 번째 독서를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 딱히 다음 책을 정해둔 건 아니었지만, 이언 매큐언의 속죄가 읽고 싶어졌다. 빌릴 때부터 알았다. 아마 이 책은 끝까지 다 읽지 못하겠구나. 그 생각이 든 건, 아마도 책의 두께감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점점 두꺼운 책이 주는 압박감에, 읽기 전부터 겁을 먹고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읽는 데까지는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어딜 가든 책을 들고 다녔다. 외출할 때 책을 함께하는 건 큰 장점이다. 나는 주로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이동하기 때문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편이다. 30분에서 1시간가량 일찍 도착할 때도 있고, 상대가 늦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가방 속에 책이 있다는 건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그 시간만큼 독서할 여유가 주어지는 셈이니까. 오히려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약속 장소 근처의 카페를 미리 검색하고, 일부러 1~2시간 먼저 도착해 책을 읽는 시간으로 채우기도 한다.


어차피 완독은 못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름 묵직한 속죄를 들고 다니며 틈틈이 읽었다. 하루는 독서만을 위해 카페를 찾기도 했다. 늘 ‘성장’, ‘통찰력’ 같은 키워드의 책만 읽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니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소설책도 가끔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아는 표현조차 영화 속 대사로나 책 속 문장으로 마주하면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글로 된 언어는 이상하게도 더 세련되고, 다르게 와닿는다. 그래서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마음에 남는 문장을 적어두곤 했다.


PC 카톡이 아니면 폰으로 대화하는 것도 귀찮아진 지 오래지만, 이상하게 손글씨를 쓰는 건 덜 귀찮다. 오히려 카페에서 노트에 글을 적고 있으면 작가가 된 기분이 든다. 내 삶을 잠시 멈추고 평온을 찾기에는 독서만 한 게 없다.


나는 종종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게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책조차 읽지 못할 만큼 마음이 조급하다는 신호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춰야 한다. 수면은 잘 취하고 있는지, 운동은 하고 있는지, 식사는 잘 챙기고 있는지 하나씩 점검하다 보면, 역시나 일상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순간임을 알게 된다.


책 읽을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면, 멈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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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이정윤

사진.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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