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지아빠 Aug 15. 2020

나는 세상과 만나고 사랑해야 한다.

[독서] 537. 호밀밭의 파수꾼, 샐린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속마음이었다. 말만 하면 부정적이고, 속이 꼬여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하고 대화는 가능한 것일까? 그를 대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곧 그를 떠나 버린다. 이런 패턴이 소설 내내 반복된다. 이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해 보였다. 


'누가 잘 못 된 것일까? 주인공? 아니면 나?'


16세 주인공과 나 사이엔 어떤 장벽이 있는 것일까? 지금 중2 학생들의 생각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꿈은 무한하고 죽어라 공부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로 어른들이 자신들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실제로 청소년들의 꿈을 빌미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끔찍한 어둠의 터널 속에 밀어 버린 건 아닐까? 그 끝이 대학이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면 취업이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터널 말이다.  


'주인공은 과연 낙제를 한 것일까?'


책 초반에 주인공은 영어를 제외한 과목을 모두 낙제하여 퇴학을 당하게 된다. 세번째 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한 그는 더이상 갈 곳이 없다. 그리고 무작정 떠난다. 그는 낙제를 한 것이다. 

아니 이 사회가 그를 낙제시킨 것이다. 사회는 개인들에게 상당한 폭력을 많이 휘두른다. 그런 사회의 이면을 맨 몸으로 겪는 주인공이 느낄 사회적 반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80년 광주에 살았다는 이유로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된 한 사람이 사회적 두려움과 반감을 갖는다고 우리는 잘 못 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세상과 만나고 사랑해야 한다.'


16세 청년의 나흘 간 겪는 수 많은 경험들. 기숙사 친구, 호텔의 벨보이, 창녀, 술집 바텐더, 친구, 여자친구, 택시기사...... 그 어떤 사람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는 그는 결국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을 찾아간다. 여동생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모아 놓은 돈을 오빠 손에 모두 쥐어 줄 때, 그는 결국 소리없는 오열을 터트린다.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 때, 그 사람을 통해 존재의 위안을 얻게 된다. 어쩌면 주인공은 이 순간 사회를 용서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게 호밀밭의 파수꾼이 될거야.'


이 말이 너무나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주인공의 뒤틀린 심보에 불편 했지만, 여동생에게 이 말을 전하는 순간 모든 것이 편안해 졌다. 마치 저자 샐린저가 파수꾼이 되어 주인공 콜필드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게 막아주는 것 같았다. 콜필드처럼 방황을 겪을 수 많은 16세들을 지켜줄 것 같은 믿음이 들었다.  

      


사랑이 가지는 위대한 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가장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 같다.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 결실을 맺어 끝을 맺는 소설보다 사랑이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변화하게 하는 지를 말해주는 그런 소설이 이제는 더 좋아지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내가 나를 넘어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가장 사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