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그녀
제이콥은 광야로 나왔다.
그곳에는 길도 없고, 물도 없고, 풀 한 포기 없었다.
사방은 모래뿐이었다.
태양은 용광로에서 쇳물을 쏟아붓듯 내리쬐었고,
바람은 모래를 실어 피부를 할퀴었다.
입술은 갈라지고, 목구멍은 달라붙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배고픔은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까마귀와 독수리가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며 맴도는 듯했다.
발밑의 모래가 사라지며
땅이 맨발의 제이콥을 삼킬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는 어머니 레베카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하란으로 가거라… 레이벤이 널 도와줄 것이다.”
제이콥은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거친 돌에 몸을 기대다
그냥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했고,
모래는 차갑게 그의 몸을 덮었다.
그때 그는 꿈을 꾸었다.
하늘과 땅을 잇는 한 줄기 광선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단순한 빛줄기가 아니었다.
두 줄기가 서로 얽히며 소용돌이쳤다.
이중나선으로 이루어진 사다리였다.
빛의 존재들이 한쪽에서는 내려오고
한쪽에서는 올라가며 끊임없이 순환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우주가 숨 쉬듯, 생명과 죽음, 시작과 끝이
한 줄기로 이어져 있었다.
그 순간, 제이콥은 깨달았다.
조부 아브라함이 별을 바라보며 받았던 그 약속.
.
.
“밤하늘의 별을 세어보라, 셀 수 없을 것이다.
발밑의 모래를 세어보라, 셀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혈통의 번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인간과 우주, 과거와 미래가
하나의 의식으로 이어져 있다는 선언이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작은 한 점일 뿐이다.
끝없는 고통과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들이
긴 인고의 시간 끝에
드넓은 사막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장자의 명분은 권력도, 부도 아니었다.
우주의 초의식과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장자의 명분이었다.
광야의 모래는 형체가 없었고,
바람에 따라 모양을 바꾸며 끝없이 흩어졌다.
셀 수 없는 별처럼, 셀 수 없는 의식처럼.
그 속에서 제이콥은 우주와 이어져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우주는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그의 가슴을 다시 불태웠다.
살아야 한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새벽의 찬 공기가 폐 속으로 밀려왔다.
제이콥은 몸을 일으켰다.
하란으로, 레이벤에게,
어머니의 눈물과 조부의 별빛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 멀리 아지랑이 속에서
한 여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빛에 흔들리는 신기루 같았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평생
그 여인을 향해 걸어왔던 것 같았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제이콥의 무릎이 꺾였다.
몸은 모래 속으로 파묻혔다.
눈꺼풀이 천천히 닫혔다.
깊고 고요한 어둠이 그를 삼켰다.
쓰러진 제이콥을 향해 급히 달려온 여인은
레이벤의 둘째 딸, 레이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