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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과 에이서스

아이작의 축복

by 무이무이

레베카의 그림자 아래에서


제이콥이 태어난 날, 그의 손은 형 에이서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쌍둥이의 아버지 아이작은 제이콥의 모습에 불길한 징조로 여기며 걱정했으나, 어머니 레베카의 마음은 달랐다. 그녀는 늘 제이콥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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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네가 먼저 나와야 했단다. 하지만 형이 머리를 먼저 내밀어서 세상의 규칙이 바뀐 거야. 넌 진짜 장자다, 제이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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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어린 제이콥의 마음에 깊게 스며들었다. 그는 형을 존경하면서도, 언젠가 그 자리를 되찾고 싶다는 막연한 갈망과 질투를 동시에 품었다. 레베카는 제이콥을 늘 자신의 뜻대로 움직였다. 제이콥도 어머니의 그늘 안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가 18세가 되자, 마음 한 구석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은 단순히 어머니의 말처럼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결정의 날


아이작이 눈이 멀고, 세월의 무게에 지쳐 이제 자신의 유언을 남기려던 그날. 레베카는 제이콥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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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들 제이콥, 너는 장자의 명분을 되찾아야 해. 형 에이서스가 사냥을 떠난 틈을 타서, 그의 옷을 입고 아버지의 처소로 들어가거라. 내가 짐승의 털로 네 팔을 덮어줄 테니, 아버지는 너를 형이라고 믿으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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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은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의 눈빛에 이끌려 움직였다. 그 순간에도, 그는 아직 어머니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년이었다.



축복의 순간


제이콥은 아버지 아이작의 숙소에 들어섰다.

아이작은 세월의 무게에 시력을 잃었지만, 마음의 눈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는 이 발자취가 누구의 것인지 이미 짐작했으나, 그는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에이서스에게 말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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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에이서스야… 가까이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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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이 천천히 다가오자, 아이작은 그의 옷에서 풍겨 나오는 야생의 향기를 맡았다. 그 향기는 분명 에이서스의 것이었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어떤 미묘한 떨림—거짓된 그림자의 숨결도 함께 실려 있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아무 내색 없이 손을 들어 그의 머리에 얹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말은 깊은 예언의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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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아들의 향기는

온 우주를 스치는 들꽃의 향기 같구나.
하늘의 이슬이 너를 적시고,
땅의 풍요가 너를 감쌀 것이다.
그러나 그 풍요 속에서
네 눈은 점점 하늘 너머의 별빛을
보지 못하게 되리라.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넘쳐흐를 것이다.
민족들이 너를 섬기고
여러 백성들이 네 발 앞에 엎드리리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너의 덕과 인품 때문이 아니라,
오직 네 손에 쥔 부와 권력 때문일 것이다.

너는 형제들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형제를 위해 몸을 낮추는 법을,
희생이 무엇인지, 겸손이 어떤 힘인지
너는 배우지 못할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자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못할 것이며,
너를 높이는 자들의 아첨만이
너를 둘러싸게 되리라.

이 모든 것이
축복의 이름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축복은
네 영혼을 비워가는
빈 껍데기와 같을 것이며,
그 안에 진정한 생명과 사랑은
깃들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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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의 목소리는 떨렸다. 마치 이 모든 운명이 이미 정해진 길임을 알기에, 그 말은 축복이자 동시에 경고였고, 부와 권력이 가져올 고독의 미래를 위한 예언이었다.



제이콥의 깨달음


아이작의 말을 들으며 제이콥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는 문 밖으로 나가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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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옳지 않다. 장자의 명분…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형과 나는 동등한 존재다. 나는 그것을 훔치려 했다. 내 어머니의 그림자 아래에서 살며, 내 뜻이 아닌 어머니의 뜻을 좇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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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그늘에서 벗어나겠어. 아버지의 유산도 내 것이 아니다, 나의 모든 죄를 홀로 짊어지고 떠나야겠다. 그래야 형의 분노가 어머니에게 향하지 않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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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은 급히 집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를 붙잡는 레베카의 손길은 떨리고 있었고,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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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광야는 험하고 위험하다.

짐승과 도둑, 굶주림과 갈증이

너를 시험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너의 조부를 떠올려라,

너의 조부 아브람은

무수한 가능성의 모래를 밟고

셀 수 없는 별들의 이슬을 머리에 맞으며

우리 부족을 이끄신 분이다,

그러니 너의 발걸음을 하란으로 향하거라.

거기에는 내 오라비 레이벤이 있다.

그곳에서 네 몸을 숨기고

새 삶을 준비하거라."


제이콥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제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선택한 한 남자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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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제 나는 나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어머니의 곁을 떠났다.



에이서스의 귀환


에이서스는 그날따라 평소 즐겨 입던 두툼한 가죽옷마저 벗어두었다. 아침 햇살이 완전히 오르기 전, 그는 홀로 집을 나섰다. 여벌옷과 무거운 사냥 장비는 오늘의 길을 더디게 할 것이다. 그의 어깨에는 화살통이 아니라, 앞으로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 할 가족들의 무게가 함께 걸려 있었다.

그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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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척박한 땅에서 어머니를, 동생들을, 그리고 식솔들을 어떻게 지켜내야 할 것인가.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타인의 탐욕으로부터 그들을 어떻게 살아남게 해야 할 것인가.


산길은 점점 가팔라졌고, 숨은 거칠어졌다. 마침내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 에이서스는 멀리 흐르는 강줄기와 그 너머의 초원을 바라보았다. 미명의 별빛이 그에게 길을 밝혔고, 아침이슬은 그의 목을 적시며 그 마음을 맑게 씻어주었다.

그곳에서 그는 작은 다짐을 세웠다. 힘과 사냥만으로는 지켜낼 수 없는 것들, 칼이 아닌 마음으로 세워야 할 집과 터전에 대한 청사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맨손으로 작은 짐승 하나를 잡아 아버지를 위해 요리를 했다. 평소처럼 날카로운 화살촉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자신의 손으로만 준비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유언을, 진정한 축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숙소 문을 열자, 낯선 공기가 방 안에 감돌았다. 아이작의 숨결은 더욱 약해졌고, 방 안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이미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지…” 에이서스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미… 이미 그가 다녀간 것이군요.”

아이작의 입술은 떨렸으나, 그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힘을 모아 말했다.

“내 아들아… 제이콥이 너의 축복을 가져갔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가 가져간 것은 눈에 보이는 껍데기일 뿐이다. 나는 네게 다른 길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에이서스의 손을 붙잡으며 마지막 유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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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네 거처는 기름지고 화려한 도시가 되지 않으리라.
그곳의 물질적 풍요와 향락은 네 몫이 아니다.

너의 길은 들과 바다와 산 사이에 있으리라.
그곳은 척박하나, 그 속에서
우주의 무수한 확률이 살아 숨 쉬는 본질을 깨닫게 되리라.


너는 세상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네 원수에게도 관대함을 베풀고,
너를 해한 자에게도 아량을 잃지 말아라.
은인과 원수, 선과 악…
그 모두가 이 우주가 품은 창조의 일부임을 기억하라.


네 형제에게 머리를 숙일 줄 알며,
너보다 작은 자에게 칼끝을 겨누지 말아라.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으로 길을 열어라.


그러나 필요할 때는 생명을 위해 칼을 들어야 한다.
그 칼은 파괴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네 목숨을 지키고, 네 사람들을 지켜내라.


너의 길은 거칠고 험하겠지만,
끝내 너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척박한 길을 헤쳐 나아가다 보면,
마침내 우주의 본질과 닿게 되리라.
그때 너는 깨닫게 될 것이다.
참된 축복은 금빛 왕좌가 아니라,
그 황무지를 걸어온 너의 발자국에 있다는 것을…”


아이작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희미해졌지만, 그 마지막 울림은 에이서스의 가슴 깊이 새겨졌다. 눈물이 그의 눈가를 적셨지만, 그 눈물은 패배의 눈물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왕좌의 공허


에이서스의 후손인 이두메아 인들은 아이작의 축복의 땅인 척박한 바위산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으나, 끝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데이비드에게 그 땅을 빼앗겼다.

그 길을 통해 데이비드의 아들 솔로몬은 금과 비단, 수많은 보물을 들여와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그 왕좌는 피와 배신, 욕망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데이비드의 말년은 전쟁과 가정의 비극으로 얼룩졌고, 솔로몬의 부귀영화는 여인의 유혹에 물들어 결국 왕국을 갈라지게 했다.

화려한 금빛 성전 아래, 그들의 영광은 한순간 반짝이다가 꺼져버린 불꽃이었다.


참된 축복은 왕좌가 아니라, 그 황무지를 걸어온 발자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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