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입문
밤늦게 벵갈로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자 특유의 후덥지근한 냄새가 나를 덥쳤다. 길이 고르지 않은 탓에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도중에 몇 번이나 충격으로 덜컹거렸다. 폐고무를 섞어서 만드는 인도의 도로는 쉽게 유실된다. 그렇게 파괴된 도로의 흔적이 엉덩이로 고스란히 전달되었지만 그것마저 설레였다. 내가 인도에 와있다니. 인도야말로 모든 여행자의 로망이 아닌가. 한 시간 쯤 달려 숙소에 도착한 후 여장을 풀고 이내 잠들었다. 두 번의 환승이 피곤했던 탓인지 세상 모르게 잤다. 다음 날 일어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장실가기. 좁은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 인크레더블 인디아에 대한 환상을 그렸다. 오늘부터 드디어 진짜 인도의 모습을 만난다! 어떤 인도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므흣한 마음으로 볼일을 끝낸 찰나 당황스러움이 엄습했다. 책에서 읽고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휴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이란. 석달의 여행기간동안 인도의 문화를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화를 따르리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찌할 것인가. 나는 손으로 해결할 용기를 내지 못했고 차라리 샤워를 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인도의 화장실에서는 휴지 대신 왼손을 이용한다. 그냥 손으로만 닦는 것은 아니다. 물이 가득 담겨진 통이나 작은 수도꼭지가 있어서 이걸 이용하면 된다. 이를테면 수동비데.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대신 빨리 적응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수월했고 여행자가 이용하는 숙소나 식당의 화장실은 늘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다. 어떤 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이 나라의 사람들이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지구환경을 생각했을 때는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내가 지구에 큰 보탬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했다.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왼손을 사용하는 법을 익히는 동시에 오른손을 사용하는 법도 익혔다. 성스러운 오른손으로는 밥을 먹는다. 어느 식당을 가건 워싱룸이라고 해서 손을 씻는 공간이 따로 있거나 식당 한 구석에 세면대가 있다. 밥을 먹기 전에는 손을 먼저 씻는다. 현지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숟가락이 자신의 손보다 깨끗할리 없다고 말한다. 여행자가 많은 도시에서는 숟가락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숟가락이 조잡하게 만들어졌다. 인도 역시 쌀을 많이 먹지만 우리나라의 쌀과 달리 쌀이 날아다닌다. 손으로 이 쌀밥을 먹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엄지손가락이 특히 중요한데 엄지손가락은 손가락들 위에서 날아다니는 쌀을 한데 뭉치는 역할을 한다. 뭉쳐진 쌀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 것도 엄지손가락의 일이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인도기차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하루동안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고나서야 어설프게나마 쌀을 흘리지 않고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되었다. 내가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 점점 능숙해질수록 그들의 미소도 깊어졌다.
인도에서 처음만난 이미지 중 하나는 남자들이 소변보는 것을 특별하게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낯설기도 하고, 남성이 소변보는 모습을 보는 자체가 나에겐 위협적이기도 한 일이라 힘들었지만 차차 적응이 되었다. 길을 가다보면 남자들이 소변을 볼 수 있도록 간이화장실이 설치된 곳도 종종 보인다. 다소 비위생적인데 여간 비위가 좋지 않고서는 사용이 어렵다. 장거리 버스를 타고 내린 터미널에서 마주한 화장실의 광경은 좀 충격이었다. 사각형의 빈 건물 안 한켠에 양 옆으로만 낮은 칸막이가 있다. 벽을 보고 볼 일은 본다면 뒷사람은 나의 엉덩이를 보게 될 것이고 반대로 벽을 등져서 볼일을 본다면 나는 뒷사람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다행히 내가 들어갔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고 노상보다는 나을 것 같아 이 화장실을 이용했다. 급한데 무슨. 인도 여행자라면 꼭 한번쯤은 이용하게 되는 기차 화장실 역시 시설이 낙후되었는데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면 달리는 기찻길 밑으로 용변이 바로 떨어지는 구조다. 물론 이 기차화장실 안에도 수동비데는 있다. 꼭 이런 화장실만 있는 것은 아닌다. 인도 여행을 하다보면 다양한 화장실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중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기가 민망할 정도로 화려하고 깨끗한 화장실도 있다. 도시일수록 화장실이 좀 더 잘 보급되어있고 시골로 갈수록 열악하다. 장거리버스나 기차를 타기 전에 맥도날드나 인도의 커피체인점 카페커이데이를 만나면 급하지 않아도 꼭 화장실에 들렀다.
인도의 화장실은 왜 이러할까? 인도 사람들 대부분이 믿는 힌두교에서는 사람의 용변을 불결한 것으로 여긴다. 아주 오래전부터 불결한 것을 집 안에 두지 않기 위해 실내화장실을 만들지 않았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시골에서는 주로 숲이나 기찻길을 화장실로 이용한다. 길을 걷다 뜬금없이 마주치는 노상화장실을 생각하면 그들이 화장실에 대한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대로 된 폐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옛날 어느 즈음에는 오히려 이런 방법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이들의 종교와 오랫동안 쌓아온 문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의 공중보건과 관련해서 인도의 큰 고민거리인 것은 사실이다. 용변에 의한 상하수도 시설의 오염은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쥐약이다. 심각한 경우 사망에까지 이르게되는데 매년 5만명의 아이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죽는다. 인적이 드문 숲이나 들판으로 화장실을 찾아 나서는 여성들은 성폭력피해의 대상이된다. 최근 인도에서는 공중보건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방지를 위해 화장실보급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배설물이 불결하다고 여기는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인도에서 이 운동은 힘겹게 진행되고 있다.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것은 인도가 제일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하지만 넉넉지 않은 가난한 나라의 사정도 외면할 수 없다. 사람들의 용변을 치우는 일은 카스트의 가장 낮은 계급이 불가촉천민이 도맡아 하는데, 계급과 일에 대해 엄격한 인도의 구조에도 균열이 필요하다. 어렵고 더디더라도 인도의 화장실 문화는 차차 나아질 것이다. 인도의 모디총리는 그 의지를 적극 보여주고 있다.
고백하자면 도장깨기처럼 더 높은 난이도의 화장실을 만날 때마다 인도에 여행 온 것을 후회했다. 상황마다 나의 대처능력이 빛을 발휘했고 두달간의 여행을 별 탈 없이 잘 마칠 수 있었다. 인도여행을 하고난 후부터 각 나라의 화장실에도 관심이 생겨 어디를 여행하든 화장실을 유심히 살핀다. 나는 화장실문화를 수집하는 버릇이 생겼고 세상에는 별별 화장실이 다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각각의 사람들이 만들어 온 문화 안에서 화장실도 태어나고 변화했다. 인도의 화장실도 지금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이런 인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밥을 먹고 손으로 뒤처리를 하는 문화가 인도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한다. 인도 화장실 사진 한 장만으로 인도와 인도사람들과 인도의 문화를 폄훼하고 혐오한다. 빠르고 쉽게 다른 문화를 판단하는 섣부름 앞에서 설득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그들은 다른 것을 보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사람들이 믿는 종교와 문화, 그리고 빈곤이라는 사정까지 헤아릴 마음이 없다면 인도 여행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여행은 열려있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준다. 혹시 여행자들의 로망, 인도로 떠나고 싶다면 열려있는 마음을 준비물로 가져가길. 상상 그 이상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인크레더블 인디아. 인도 사람들도 이미 인도를 다녀온 여행자들도 인도를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