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벨로 마켓에 가려다가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아무 데나 들어가 브런치를 여유롭게 먹고 공항에 가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기 대신 거리의 풍경을 보며 마지막 유럽의 모습을 두 눈 가득 담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걷는 시간이 길어지자 엄마는 짜증스레 그냥 맥도널드나 가자고 짜증을 했고, 나는 유럽에서의 마지막 식사인데 어떻게 맥도널드에 갈 수 있냐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다행히 곧바로 분위기도 음식도 훌륭한 브런치 카페를 찾아 들어갔지만, 나는 기어이 한 마디를 하고 말았다.
"엄마는 나랑 40일을 여행했는데도, 아직도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
엄마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식사를 했다. 그런데 왜 눈물을 흘리는 거지? 뭐지? 내가 또 무슨 심한 말을 했나? 별 말 안 했는데, 뭐지?
왜 우는 거냐는 두 번째 물음에, "왜 네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나니?"라고 되묻는 엄마였다.
참 가슴 아픈 말이었다. 40일 여행의 끝이 이런 거구나.
고생했어, 덕분에 좋은 구경 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는데. 내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난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40일이라는 시간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엄마랑 좋은 추억 쌓겠다고 큰 맘먹고 떠나온 여행이었다. 물론 울고 싸우던 시간보다는 웃고 즐거워했던 시간이 더 많았지만, 끝이 이런 거라면 그동안의 모든 시간이 좋게 기억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여행 오지 말걸. 그랬으면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나를, 그저 말 잘 듣고 착한 딸로만 여겼을 텐데.
괜히 여행한답시고, 엄마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되었을 내 못난 모습을 보여줘 버렸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는 서운하고 미운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브런치 카페를 나와서부터 비행기에 탄지 수 시간이 흘렀을 때까지도, 우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 말을 섞지 않은 적은 없었다. 부다페스트에서도, 프라하에서도, 어쨌든 자연스레 말을 섞고 화해를 했었는데, 이번엔 뭐지?
불안감이 급습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불안감이었다.
'엄마가 날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이제 엄마랑 예전처럼 지내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내가 엄마 손을 몇 번 놓는 일이 있더라도 엄마는 항상 내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원초적인 믿음을 흔드는 그런 불안감.
그 불안감과 이번 여행에 대한 후회로 공항에 도착해서도, 비행기를 타서도 내내 울기만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한 생각을 떨쳐내려고 기내 영화를 봤다.
보는 둥 마는 둥, 영화 한 편을 다 보고는 어느새 옆에서 곤히 잠든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잠든 엄마의 얼굴을 보니 또 이유 모를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미운 감정은 아까 수도 없이 쏟아낸 눈물에 다 씻겨 내려갔는지, 이제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만, 안쓰러운 마음만 남아 그냥 엄마를 꼭 안고는 또 막 울었다.
잠에서 깬 엄마도 나를 꼭 안아줬고,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암묵적으로 화해했다. 서로에게 기대어 같은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인천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비록 화해는 했지만 어색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내게, 엄마가 먼저 "고생했다" 고 말을 건넸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
머뭇거리던 나는 엄마에게 시간을 되돌려도 나랑 또 여행 올 거냐고, 이번에 여행 온 거 후회하지 않냐고 물었다. 런던에서 한국에 올 때까지 속으로 수십 번 되뇌던 물음이었다.
당연히 후회 안 한다는, 다시 선택해도 나랑 여행했을 거라는 엄마의 대답을 듣고서야, 안도감에 벅차올라 또 엉엉 울고 말았다. 엄마의 대답이 그 반대였다면, 나는 이번 여행을 엄청 후회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