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정도 잘 사귀고 있었던 남자친구는 어느 날 유학을 결심한다.
시차만 9시간이 나는 나라.
지금이야 보이스톡이든 DM이든 각종 연락수단 매체가 많지만 막 스마트폰이 보급되던 시기라서 연락수단도 마뜩지 않았다.
일 년에 딱 1번 봤다. 남자친구의 방학시즌.
그렇게 꾸역꾸역 2년을 더 만났다.
누가 나보고 대단하다고 그랬다.
사실 우리도 중간에 헤어지기도 하도 다시 만나기도 하고 눈앞에 없는데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정말로 이 사람이랑 끝이구나- 하고 느낀 어느 가을.
헤어진 것도 아니고, 만나는 것도 아닌 침묵의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긴 메일을 하나 써 내려갔다.
상대가 읽든 말든 상관없이 그저 이 상황과 내 마음을 결론짓기 위한 행위였다.
그렇게 길고 가느다랗게 이어지던 내 사랑은 지나가고 있었다.
이별은 참 이상하지.
나는 그 남자친구를 1년에 한 번, 고작 2-3일 정도 보는 수준이었고 우리는 매일 소통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마저도 마지막쯤엔 한 달 이상 연락이 없었다.
내 일상은 그대로였고
항상 물리적으로 혼자였던, 어제랑 똑같은 일상이 지나가고 있는 것일 뿐인데.
원래부터 흔적도 없던 그 사람의 자리가 새삼스레 느껴졌고
나의 보통날은 조금 공허했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 좋았었던 날도
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바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좋았던 날을 모두 두고서야 돌아설 수 있었네
- 브로콜리 너마저 '좋았었던 날은'
그저 보이지 않는 마음이 뭐길래
우리는 이렇게도 아프고 힘들어할까.
그런데도 다시 또 사랑을 원하게 되는 우리는
어쩌면 참 용감한 걸지도.